전시명: 흙벽의 이미지-여름생색전 장소: 공아트스페이스 전시기간 : 2012.07.04 - 2012.07.17
전통을 잇다: 현대 한국미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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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와 장마비가 오락가락하는 7월의 날이다. 생각해보면 7월은 결코 만만한 달이 아니다. 연신 무더위와 싸우다가 이내 거친 비속에서 흔들리기도 하는 것이다. 찌는 듯한 더위에는 그늘만한 것이 없다. 그늘은 에어컨이나 선풍기 바람과는 차원이 다른 선선함을 안긴다. 그것은 강짜로 짜낸 기계적 냉랭함이 아니다. 피부위에서 더없는 시원함과 청량함을 안기되 결코 냉기를 전달하며 몸으로 파고 들지는 않는다. 그러니 냉방병이란 애초에 없다.
박지은, Human performance-growing 20, 116×232cm, Mother of pearl & mixed media on the Aluminum, 2012
이 도시 안에서 쾌적한 시원함을 안기는 나무 그늘의 바람 혹은 자연이 안기는 그 바람을 상기해본다. 그를 대신해 손에 잡힌 작은 부채를 흔들어본다. 작고 연약한 종이부채가 흔들리면서 작은 바람을 파문처럼 안긴다. 그것은 공기를 흔들어 사건을 발생시킨다. 고요하며 시계視界에 잡히지 않는 공허 같은 나를 둘러싼 공간에서 모종의 파장이 일어나고 시원함이 생겨 내 얼굴에 와 닿는다. 피막 같은 종이 하나가 이토록 커다란 울림을 준다. 이 작은 접이식 종이 부채 하나로 7월의 여름날이 문득 견딜만해지는 것이다.
권선, About shatter_원굉이 사안을 만났을 때, 244×244cm, 판넬에 혼합매체, 2012
송유정, 여름-특히, 132×195cm, 실, 한지에 채색, 2012
옛선비들이 애용했던 부채 하나에는 이토록 많은 의미가 깃들어있다. 그것은 일상에서 쓰여지는 도구이지만 동시에 접었다 펼치는 화첩에 해당하고 일종의 들고 다니는 전시장이자 바람을 일으키고 얼굴을 가리고 시선을 집중시키며 또 다른 시작과 끝을 알리는 칸으로 작동하기도 한다. 하여간 여러모로 쓰이는 흥미로운 도구이다. 그런 전통적인 부채를 소재로 한 작업을 선보인 전시가 열렸다. 부채표 동화제약이 주관한 공모전 에 선정된 작품들이다. 그 유명한 부채표 활명수를 만든 회사이니 당연히 부채를 특화해서 이를 주제로 한 공모전을 기획한 것 같다. 저마다 다른 작업을 하는 작가들이 부채라는 테마를 갖고 고심한 흔적들이 펼쳐져있다. 사실 이런 기획전은 재미있을 수도 있지만 실패할 확률도 높다. 작가들은 저마다 해온 작업의 관성에 의해 부채이미지나 바람이란 물리적 흔적을 끼워넣는 식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나는 이런 시도는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다수 작가들은 우리의 부채를 이해하는 시각이 협소하거나 단지 소재로만 차용하는 편이었다. 그러나 이런 시도를 통해 향후 소중한 문화유산이자 선인들이 삶의 지혜와 예술을 접하던 태도, 그 놀라운 심미관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조금은 따르지 않을까?
글: 박영택 교수(경기대학교,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