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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명: 흙벽의 이미지-하종현展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전시기간 : 2012.06.15 - 2012.08.12

전통을 잇다: 현대 한국미술
한국미술에 담긴 다양한 미적 가치와 사상, 기법, 표현방식 등을 전제로 새로운 작업을 시도하는 현대미술의 현장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하종현, 접합84-23(부분), 마포에 유채,1984

1970년대에 들어와 이른바 ‘단색화’라는 집단적인 미술운동이 있었다. 이 땅에 60년대에 추상화가 보편화되기 시작했고 그것이 일정한 시간이 지나 70년대를 거치면서 한국적인 추상화의 한 성격, 특징이 만들어지는데 이를 일컬어 단색주의, 혹은 한국적 미니멀리즘 등 여러 용어로 불리다가 최근에 단색화로 통일한 듯 하다. 쉽게 말해 상당히 금욕적인 단일한 색채 하나를 주어진 화면에 납작하게 도포하는 일인데 그 물감과 붓질이 특정 형상을 재현하거나 연상하는 대신 다만 물감의 질료적 상황, 붓질의 흔적만을 시선에 안기는 그림이라고 말해볼 수 있을 것 같다.


하종현, 접합 7, 1982, 마포에 유채, 120x220cmx3pcs, 국립현대미술관

단색화를 추구했던 많은 작가들은 일정한 공유성을 보여주는데 우선 당시 미국에서 수입된 현대미술과의 형식성 유사성을 기본으로 해서 회화의 평면성을 강조하고 이미지를 배제하며 단색을 사용하되 그 색채와 그로인해 형성된 화면이 한국의 전통적인 이미지나 색감, 미의식을 부단히 연상시켜주는 쪽으로 만들어 나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백자의 표면이나 먹의 번짐, 토담 벽 등을 상기시키는 작업들이 선보였다. 당시 단색화의 대표작가인 하종현의 회고전이 지금 열리고 있다.


하종현, 접합 92-45, 1992, 마포에 유채, 194x260cm, 작가 소장

초기작에서 근작에 이르는 여러 작업을 보았는데 그중 1984년에 제작한 <접합>연작이 단연 눈에 다가왔다. 커다란 화면에는 단일한 색채의 물감이 마치 흙처럼 칠해져있다. 어떠한 이미지도 없이 그저 물감이 발린 흔적만이 침묵처럼 놓여져 있다. 유심히 표면을 들여다보면 안료를 칠하고 걷어 내거나 안료가 지나간 흔적 등이 남아있다. 우연적이고 자연스러운 상처들이며 입체감 있는 미세한 기복들과 재료의 물질적 조직이 드러나는 화면이다. 그것이 그림이 된 것이다.

하종현은 마포로 화면을 만들어 그 위가 아니라 뒤에서 안료를 밀어내 앞면으로 누출시켰다. 화면 뒤에서 물감을 칠하고 문질러서 앞으로 밀어내는 이 작업은 순간 왕골로 짠 돗자리나 흙벽처럼 다가온다. 그런 착시가 자연스레 일어난다. 물론 그렇게 보기위해서는 돗자리나 흙벽에 대한 시각적 경험이 자리해야 하고 그에 대한 친근한 추억이나 그런 색감, 느낌이 무의식 속에 자리하고 있어야 한다. 이는 당연히 한국인이라면 가능할 것이고 특히 시골에서 태어나 자란 이들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것이리라.



하종현, 접합 97-040(B), 1997, 마포에 유채, 194x260cm, 작가 소장


경남 산청에서 태어나 자란 하종현에게 새끼줄로 얽은 대나무 의 양쪽에서 짚을 넣어 반죽한 누런 진흙, 그 황토를 툭툭 처넣어 바른 흙벽의 추억은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리라. 오랜 세월이 지나 서구현대미술의 추상화 어법을 익힌 그가 결국 도달한 곳이 그 흙벽이란 사실은 무척 흥미롭다. 몰론 이 작업은 흙벽 자체를 재현하거나 묘사한 것이 아니라 그 분위기만을 추상화로 떠낸 것이다. 그러나 이 화면 앞에 서 있노라면 더없이 무심하고 자연스러우며 소박한 몸짓으로 이겨 바른 흙벽의 느낌이 생생하게 되살아나고 포근하고 부드러운 흙색에 마냥 적셔 들어가는 느낌이 든다. 연보를 보니 그가 49세에 그린 그림이다. 그 나이는 되어야 비로소 한 개인의 무의식과 경험, 살아 온 생애와 체득한 조형적 안목이 종합되어 무엇인가가 나오는 것 같다. 나는 그 그림 하나가 그의 정점이라고 생각한다.
글: 박영택 교수(경기대학교, 미술평론가)

 

편집 스마트K
업데이트 2024.11.16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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