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한국을 바라본 시선展 장소: 동강사진박물관
전통을 잇다: 현대 한국미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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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명심, 남원실상사, 1984
강원도 영월에 갔다. 단종의 비애를 공유하는 시간이자 비경을 접하는 놀라움의 시간이었다. 아름다운 공간이다. 높은 산과 줄을 이어 흐르는 강을 수시로 접하면서 부지런히 다녀 장릉과 청령포, 법흥사, 솔고개의 소나무, 꼭두바위 등을 보았다. 영월은 경치가 아름답기도 하지만 이런저런 박물관들이 많이 들어선 곳이기도 하다. 없는 것보다야 있는 것이 낫고 적은 것보다 많이 있으면 더욱 좋겠지만 과연 박물관이 공간만 있다고 되거나 수적으로 많다고 해서 되느냐 하면 결코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아쉬움이 있었다. 영월군청 바로 옆에 위치한 영월 사진박물관은 그런 면에서 비교적 의미 있는 박물관이다.
매년 7월이면 동강사진축제가 열리는 곳이고 한국 사진계의 초창기 중요작품들이 수집된 곳이기도 하다. 마침 이곳에서 <한국을 바라본 시선, 1950-1980년대> 전이 열리고 있었다. (임응식을 비롯해 이해선, 이형록, 김한용, 한영수, 정범태, 최민식, 주명덕, 홍순태, 육명심, 김기찬, 김수남 등 모두 12명의 작가들의 소장품이 전시되고 있었다. 여러 곳에서 빈번하게 보았던 사진들이지만 여전히 애틋하고 감동적인 사진들이다. 지난 시간대의 한국 사회의 한 모습들이 가감없이 박혀있다. 어렵고 궁핍했던 시절을 살아냈던 우리 선조들, 부모님세대의 모습이 적나라하다. 어딘가에는 내 어린 시절의 공간도 부감되어 다가온다. 이런 사진이 한국사진이고 한국적인 사진일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삶의 현장에서 그것을 기억하고 수집했다.
그중에서 나는 육명심의 이 한 장의 사진이 눈에 박혔다. 그의 다른 사진도 여전히 좋지만 남원 실상사에서 찍은 이 사진이 더없이 흥미롭다. 오래된 석장승을 배경으로 젊은 스님이 둘러서서 카메라를 보고 있다. 유명한 실상사 장승이다. 꽤 이전에 육명심은 남한 곳곳에 위치한 오래된 장승을 찾아 이를 사진으로 기록해두었었다. 그것이 한 권의 책으로도 나왔는데 아마도 장승을 찍던 차에 마침 지나는 스님을 둘러 세워서 기념촬영을 한 듯도 하다. 성하의 날씨와 녹음이 우거진 커다란 나무, 그 나무 그늘에 적셔진 스님의 빡빡 깍은 머리, 그리고 그들의 빛나는 눈매가 돌장승의 왕방울 눈과 합쳐져서 다가온다. 몇 만볼트로 빛난다. 이 땅에 자리한 토속문화(샤머니즘)과 불교문화, 그리고 젊은 스님들이 거대한 나무와 함께 동반자로 직립해있다. 이런 존재가 있어 우리의 역사와 문화가 가능하고 그 얼이 또 가능하다. 육명심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눈빛, 정신을 찾아 나선 것이다. 나도 저런 눈빛으로 이 여름을 견디고 싶은 것이다.
글: 박영택 교수(경기대학교,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