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철로 그린 사군자-한국화가 조환 장소: 동산방 화랑 기간: 2012.6.13.~6.22
전통을 잇다: 현대 한국미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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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환
조환은 철조각을 용접해서 사군자를 만들었다. 그것은 벽에 걸린 조각, 부조이자 그림이기도 하다. 철판을 뜨거운 불로 오려내고 용접해서 성형한 사군자다. 오브제작업인데 벽에 걸리면서 그림자를 동반하고 그것이 이내 먹처럼 벽에 번지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작가는 한지나 먹의 유연하고 부드럽고 말랑거리는 재료를 벗어나 단호하고 강하면서 불멸성을 자랑하는 철판으로 사군자를 새긴 것이다. 근자에 이런 식으로 사군자, 민화, 산수화를 패러디하거나 이질적인 재료를 가지고 주물러대는 무수한 작업들이 번성한다. 새삼스럽지 않다. 유희와 재미가 넘실거리고 위트와 유머도 들락거린다. 사군자를 빌어 전통에 대한 인식을 드러내는가 하면 기존의 전통이라 여겨지는 이미지들을 색다르게 연출해 기존의 관념에 딴지를 건다. 이렇게 여러 측면에서 조선시대 이미지들은 환생하거나 다시 죽는다.
과연 이러한 작업들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점은 오늘날 동양화, 한국 현대회화에서 매우 문제적이다. 이 땅에 유교가 들어온 이래 사군자는 사대부 지식인들의 자화상이었다. 사군자 그림은 동북아시아 지식인들의 그림 가운데 상징성을 지닌 절정의 예술인데 그것은 성리학적 우주관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당시 지식인들의 최고의 덕목으로 여겼던 충절을 바탕 삼으면서 매화를 인자함(仁)에, 국화를 의로움(義)에 그리고 난초를 예(禮)로, 대나무를 슬기로움(智)에 자리 매김 했는데 이 모두가 철학의 깊이와 생활의 진리를 거기에 두고 싶어 했던 지식인들의 희망이 남긴 상징의 체계화이다.
그러니까 예술을 앞세워 자연과 인간의 일체화를 꾀한 것은 동북아시아 예술의 남다른 부분이었던 것이다. 아울러 묵필(墨筆)만으로 이루어져 사대부들이 별도의 수련 없이 글을 쓰던 용필법으로 곧 그림으로 옮길 수 있다는 기법상의 특징과 함께 뛰어난 상징성으로 문인들이 주관적 심회를 가탁(假託)하여 표출해내기에 적합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 문인들의 사군자는 20세기 들어와 퇴락했다. 군자를 지향하던 사대부계급이 붕괴되었고 유교적 이념, 성리학적 세계관도 망실되었기 때문이다. 일제식민지시대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사군자는 회화부문으로 편입되었고 이후 해체의 길을 걸었다. 서예를 하는 이들의 여가로, 부채그림의 장식으로, 일반인들의 취미활동으로 그렇게 도태되고 변질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군자는 여전히, 너무 많이 그려진다. 껍데기로만 남는 사군자는 그 본래의 의의를 잃어버린 상태에서 습관적이고 동어반복적인, 형식적인 그림의 길을 걸었다. 화석화된 전통으로. 이상한 퇴물로 그리고 기예적 수준으로 그리고 박제화 된 전통화로 말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에게 사군자는 무엇인가? 무엇이어야 하는가? 새삼 우리는 사군자나 산수가 왜 그려졌는지를 깨닫고 그런 그림이 궁극적으로 지향하고자 했던 본질 같은 것들을 다시 사유해 보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과연 오늘날 사군자를 끌어들인 무수한 작업들은 어떤 생각으로 그것을 차용하고 건드릴까?
글: 박영택 교수(경기대학교,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