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책거리 특별전-조선 선비의 서재에서 현대인의 서재로 장소: 경기도박물관 기간: 2012.3.21.~6.10
전통을 잇다: 현대 한국미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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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선비들은 동물성의 몸을 중화시키고 식물성이 되고자 열망했다. 산수와 사군자, 수석에 대한 애호란 결국 그런 자연이 되고자 한 것이다. 식물은 부동과 정지의 생명체로서 늘 그 자리에서 멈춰있다. 동물성의 육체를 지닌 것들과 대비되는 그 정적과 자활적인 생애는 사뭇 경이롭다. 동물성의 육체가 지닌 치욕의 상처가 식물성에게는 잘 보이지 않기에 더욱 그렇다.
김광문은 기물 사이에 화분을 배치하거나 마른 풀을 듬성듬성 놓아둔 풍경을 그렸다. 조선시대 책거리그림과 함께 동시대 작가들이 그 책거리를 차용해서 이룬 또 다른 책거리그림을 한자리에 모은 전시다. 선으로 이루어진 이 평면화 된 김광문의 <신책가도>는 아득한 시간의 더께를 뒤집어 쓴 기물과 식물을 보여준다.
김광문 <신책가도>, 116.7x91cm, 혼합재료, 2011
색채가 얹혀진 그림들의 뒤쪽으로는 가는 선으로만 이루어진 옛책거리 그림이 가득차있다. 조선시대 그려진 책거리를 뒤로 하고 오늘날 책거리그림이 올려진 형국이다. 식물이 담긴 화분이 우선적으로 눈에 띈다. 차분하고 고요하다. 우리네 삶의 언저리에서 화분들은 늘상 그렇게 고요하게 자리한다. 그것들은 평범하고 지루한 일상에 경이로운 순간을 잠시 안겨준다. 도시 속에 자리한 가축화된 자연이지만, 누군가 돌보지 않아도 제 힘껏 뿌리를 내리고 수직으로 오르는 생의 절정을 경이롭게 안긴다.
원근법이 지워진 평면적인 세계에 오랜 시간에 씻겨 말간, 퇴락한 색조가 흡착되어 있는 화면이다. 순간 조선시대 책가도나 기명절지화를 연상시킨다. 학문을 숭상하고 예술을 즐기던 선비들의 고아한 취향을 담아 학문하는 이들의 방을 장식하던 책가도는 늘상 생의 근거리에 책을 위치하고자 하는 마음의 바람이었다. 그 욕망을 환영적으로 둘러친 것이 책가도병풍이다.
정조는 왕위에 오른 후 바쁜 정사로 인해 책을 가까이 할 수 없음을 안타깝게 여겨 책거리 병풍을 펴놓고 스스로를 경계했다고 한다. 책가를 배경으로 책, 문방구류, 장식품 등 다양한 기물을 그린 일종의 정물화인 책가도는 흥미로운 구성과 차분한 색조, 핍진한 묘사에서 매력적이다. 김광문은 옛책가도에서 풍겨나오는 은은하고 빛바랜 듯한 색채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김광문 <신책가도>, 91x72.5cm, 혼합재료, 2011
그는 우리 옛이미지들을 감각적으로 차용해 그 오래되고 퇴락한 것들이 발산하는 매혹적인 색채와 닳고 문드러진 부위가 주는 아련한 상처의 흔적, 소멸하기 직전의 것들이 지닌 경이로운 시간의 퇴적 등을 촘촘히 쌓아올렸다. 화면은 더없이 은은하고 고요하다. 생각해보면 이 단순함과 고요함, 그리고 탈속과 담백함, 자연주의야말로 한국 전통회화의 미의식의 본질에 다름아니다. 더불어 학문을 숭상하고 예술을 즐기던 선비들의 고아한 취향과도 상통한다. 작가가 우리 옛그림에서 깨달은 것도 바로 그런 것이었으리라!
글: 박영택 교수(경기대학교,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