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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적조한 여백의 풍경- 강승희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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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명: 강승희 展 장소: 노암갤러리 기간: 2012.5.9~5.15

전통을 잇다: 현대 한국미술
한국미술에 담긴 다양한 미적 가치와 사상, 기법, 표현방식 등을 전제로 새로운 작업을 시도하는 현대미술의 현장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강승희 <새벽 2803> Dry point, 50x80cm, 2008

모든 풍경은 결국 그 풍경을 본 이의 마음과 사유에 의해 번안되고 해석되고 걸러진 것들이다.
그와 무관한 풍경은 부재하다. 동판화가 강승희가 그려낸, 찍어낸 풍경은 풍경을 빌어 자신의 마음과 정신의 한 자락을 펼쳐놓는 것이다.


<새벽, 백두산-21207 Day Break-21207>, 드라이포인트, 50×80cm, 2012

그는 금속판위에 직접 제작한 특수한 니들(송곳, 칼)로 선을 파고 새기고 점, 구멍을 만들어 놓았다. 단호하고 견고한 금속의 납작한 평면에 상처를 입혀서 만든 구멍, 깊이에 물감과 압력, 시간과 여러 효과를 부여해 이미지를 만들었다. 금속판에 마음과 정신을 새기고 자신만이 접한 자연의 감흥, 분위기를 올려놓고자 한다.


<새벽-21220 Day Break-21220>, 드라이포인트, 50×80cm, 2012


<새벽-21205 Day Break-21205>, 드라이포인트, 50×80cm, 2012

대화 중에 그는 수많은 여행을 통해 자연의 맛을 찾아다닌다고 말했다. 나는 이 말이 흥미로웠다. “자연의 맛”이라! 우리는 맛이나 멋이니 하는 말로 아름다움을 칭했다. 그것은 단지 시각상의 세계, 감각적 층위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동양에서 예술은 맛, 멋이었다. 이 총체적인 것을 지시하는 단어는 온 몸으로 관여하고 깨달은 경지를 칭한다. 그것은 자연의 이치를 비로소 궁구하고 인간 존재의 궁극적 한계를 깨닫는 일이며 그로인해 이상적인 생애를 도모하고 그 자연과 조화로운 생의 길을 살피는 일이기도 하였다. 그것을 형상화한 것이 바로 앞서 언급한 인물산수화였다. 그 그림은 단지 풍경화도 아니고 자연을 재현한 것도 더더욱 아니다.


<새벽-2896>, 드라이 포인트, 50×80cm, 2008


<새벽-2891>, 드라이 포인트, 50×80cm, 2008

자연에서 깨달은 정신의 경지를 한 화면에 응축시켜 놓은 것이고 그곳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하는 지를 부려놓은 것이다. 그러니 그것은 다분히 종교적이고 수신적인 그림인 셈이다. 더불어 자연의 그윽한 운치가 가득 그려져 있다. 고요한 자연 속에서 식물처럼 좌정하면서 주변 풍경에 눈길을 주는 가하면 흐르는 물을 관수하고 청음하면서 고독하게, 모든 인위를 지우고 있다. 아마도 강승희는 나이가 들면서 전통산수화의 세계에 더욱 깊이 공명하고 있는 것 같다. 혹은 그의 심성이나 정서 자체가 한국인의 이 심상적 기억으로 유전되는 형질 속에서 강하게 배태되었음을 확인하는 일이기도 하다.


<새벽-21205 Day Break-21205>, 드라이포인트, 50×80cm, 2012

그는 우리 자연을 찾아 헤맨다. 무엇이라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맛’이 있는 풍경을 찾아 떠난다. 흡사 수묵화처럼 짙은 검은 색채의 번짐과 응고, 여백처럼 비워진 공간, 간결한 구성. 몇 그루의 하얀 측백나무와 덩어리로 자리한 산과 섬, 검으면서도 푸르스름한 색상으로 얼룩진 구름의 자취, 판위에 바람처럼 남겨진 스크래치 등이 어우러져 어딘지 정적이고 고독한 자연풍경을 함축적으로 안긴다.


<새벽-21206 Day Break-21206>, 드라이포인트, 60×90cm, 2012


<새벽-2893>, 드라이 포인트, 60×30cm, 2008

부식동판화기법으로 ‘동양화처럼 그린다’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기존 동판화의 기법적 한계나 상투형에서 벗어나 표현과 기법의 또 다른 가능성과 효과를 공략하면서 이를 자신의 정서를 표현해내는 쪽으로 추려내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해 보인다. 그러다보니 결과적으로 수묵화와 유사해졌던 것 같다.
결국 작가는 자신의 “뼛속 깊이 간직하고 있는 감수성”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아니 오히려 자신만의 감수성이나 기질, 취향을 솔직하고 적극적으로 발설하는 것이 다름아닌 미술일 것이다. 좋은 그림은 결코 그 작가를 넘어서지 않는다.
글: 박영택 교수(경기대학교, 미술평론가)

편집 스마트K
업데이트 2024.10.31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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