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손장섭 展 장소: 관훈갤러리 기간: 2012.4.11~5.1
전통을 잇다: 현대 한국미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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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의미의 산수화가에게는 산, 나무, 바위, 물과 같은 자연의 요소들이 단순히 자연 그 자체가 아니라, 인간의 모습이기도 했다. 또한 우리 조상은 해와 나무를 삶의 근원으로 생각했다. 나무는 땅에서 음기를 빨아올리고 하늘에서 양기를 빨아들이며 사는 존재다. 나무를 통해 천지가 교감하며 삶의 원동력을 생성해간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무는 하늘의 소리와 땅의 소리를 듣고 전하는 신령스러운 존재다. 그것은 하늘과 땅의 매개다.
<노파는 가고 봄은 다시 왔네>, 130X130cm, 아크릴채색, 2008
손장섭이 캔버스에 유화의 중후한 색감과 필치로 그린 나무 역시 단지 우리들 시선 앞에 서 있는 일상적인 나무를 그린 것이 아니라 실은 그 나무를 통해 나무와 함께 했던 사람들과 그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세계를 다시 보려는 시각의 구현이다. 그가 그린 이 땅의 큰 나무들은, 우리들의 삶 깊이 감춰진 속살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작가는 나무를 통해 우리네 삶과 역사를 보았다.
<땅끝에서>, 캔버스에 아크릴채색, 200×300cm, 2010
수백년을 살아오는 동안 나무가 간직한 이력과 상처, 애환은 곧 나무와 함께 살아왔던 우리 삶의 아픔이고 역사이며 세월의 풍상을 고스란히 드러낸 채 의연히 서 있는 나무는 저마다 깊은 표정을 지닌 우리의 초상이자 진실에 다름 아니다. 해서 작가는 전국 곳곳을 다니면서 마을마다 존재하는 신령한 나무를 찾아 그렸다. 큰 나무를 찾아나서는 일은 이 땅의 자연에 묻혀 있는 사람들의 생애를 만나는 일이며, 특정한 공간의 역사적 체험을 접하며, 아울러 나무를 키워낸 산하의 강인한 땅의 힘을 찾아내는 일이기도 하다.
<봄을 기리는 산>, 53X73cm, 아크릴채색, 2008
<법성포구>, 100X200cm, 아크릴채색, 2009
작가가 그린 이 거대한 나무는 우리의 슬프고 험난했던 역사의 뒤안길을 말없이 지켜보고 살아왔던 증인이고 목격자이다. 그는 그 나무의 생애와 생명력, 역사성 까지도 형상화시키고자 한다. 그가 그리는 나무는 일상의 나무가 아니라 우리의 역사적인 삶을 상징하는 오늘의 살아있는 기념비적인 나무의 초상인 셈이다. 그의 나무그림에는 뜨거운 기운, 범접치 못할 신비스로운 파장마저 감지된다.
<우리가 보고 의식한 것들>, 캔버스에 아크릴채색, 200×300cm, 2011
손장섭은 우리 국토를 그릴 때, 이 땅의 자연, 나무을 그릴 때 그의 진가를 발휘한다. 가라앉은 색채와 톤, 부드러운 질감으로 감싸고 문질러대는 붓질로 떠내는 풍경은 단순한 경관에 머물지 않는다. 영산이나 신목이든 혹은 평범한 포구나 시골길이든 그의 손과 눈이 가 닿아 길어 올린 풍경은 더없이 '짠'한 감정을 건드린다. 삶의 애환과 역사가 묻어있으며 정령적으로 되살아나는 우리 자연의 진실된 모습이고 나무의 모습이다.
글: 박영택 교수(경기대학교,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