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진민욱展 장소: 갤러리 담 기간: 2012.4.4~4.13
전통을 잇다: 현대 한국미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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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민욱은 이대에서 동양화를 전공하고 중국 북경중앙미술학원에서 수학했다. 그곳에서 전통 공필채색화를 체득하고 돌아왔다.
한 몸에 머리가 여러 개 달린 개의 모습이 그려져있다. 비단에 배채기법으로 정교하게 묘사한 채색화다. 사실적인 그림이면서도 어딘지 환상적이고 초현실적이기도 하다. 이 그림은 구체적인 대상을 무척이나 낯설고 당혹스러운 상황을 안긴다. 한 몸에서 여러 개의 다른 머리가 붙어있고 서로가 서로에 맞물려있으면서 엉켜있다. 기형적이고 왜곡된 상이다. 친숙하고 아는 대상이지만 불현듯 낯설고 기이하게 다가오는 것, 이른바 ‘언캐니’하고 환상적이다.
<경계>, 비단에 채색, 90X129cm, 2012
사실 미술은 있을 수 있는 상황, 가능성을 다룬다는 점에서 애초에 환상이다. 진민욱의 그림 또한 비현실적인 상상/환상의 장면을 마치 현실적인 것 인냥 뒤섞어 놓은 것이다. 작가에게 있어 환상적인 화면을 구성하는 개의 형상은 일종의 상징들인 셈이다. 자연물을 빌어 자신의 내면을 대리하고 투사한다는 것은 동양미술에서 오랜 전통이었다.
전민욱에게 머리가 여러 개인 개는 복수적이고 혼재된 자아상을 암시한다. 생각해보면 개는 네 다리로 서있으면서 늘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혀를 내밀고 불안과 경계의 눈빛을 감추지 않는다. 나아가 작가에 의해 탄생한 이 다두견은 여러 개의 머리를 한 몸에 지닌 체 그 불안과 경계를 더욱 고조시키는 형국을 연출한다. 작가에 의하면 이 다두견은 ‘방향상실, 삶의 목적을 상실한 무기력증’도 표현한단다. 동시에 이 동물은 신화 속에서도 빈번하게 등장하는 의미 있는 상징체들이다.
<꿈과 현실의 경계를 위한 초고> , 비단 위에 석채,분채,먹 , 25.5x24cm , 2012
이렇듯 진민욱은 동물과 자연의 기이한 결합과 배치를 통해 “자신의 고립, 열등감, 자아분열 등의 체험을 극복하는 내적 성찰”을 치유하려고 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특별히 개는 자신과 동일시되는 존재로 다가온다. 나, 즉 자아는 결국 타자들과의 접촉과 만남으로 인해 생성되는 개념이다. 결국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는 것은 결국 자신(자성)과 대타성의 관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얘기다. 결국 나란 존재하지 않는다. 자아는 부재하고 그 자리에 자아/타자간의 지속적인 관계, 갈등이 있다.
<꿈과 현실의 경계> , 비단에 채색 , 87X51cm , 2011
<꿈과 현실의 경계>, 비단 위에 석채, 118x141cmx4ea, 2011-2012
<꿈과 현실의 경계를 위한 초고>, 비단 위에 석채,분채,먹 , 35x30.5cm , 2012
작가는 특별히 이 존재를 선과 악, 죽음과 삶, 시간과 공간, 현실과 환상을 가로지르는 경계에 선 상징물로 이해하고 있다. 오래전부터 이 생명체는 그런 상징적 언어의 관계망 속에서 무수하게 재현되어 왔다. 전통적인 도상을 빌어 오늘날 자신의 일상에서 연유하는 감정을 발화하는 선에서 새롭게 재현, 배치하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색채 구사 또한 고대 동양화에서 색채란 것이 그 상징적 도상과 마찬가지고 눈에 비친 색의 단순한 재현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상징성을 갖춘 것이기에 작가 역시도 일상에서 받은 영감을 최대한 시각화하려는 맥락에서 색채를 구사하고 있다. 근자에 보기 드문 정통 채색화다.
글: 박영택 교수(경기대학교,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