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임영숙展 장소: 토포하우스 기간: 2012.3.28~4.3
전통을 잇다: 현대 한국미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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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숙 <밥>, 한지에 혼합재료, 180X120cm,2009
옛 그림들은 한결같이 가장 인간적인 삶의 욕망을 순박하게 가시화한 흔적들로 촘촘하다. 인물산수화나 사군자, 민화가 모두 그렇다. 특히 민화는 오래살고 행복하고 부귀영화를 누리며 많은 자손을 거느리고자 하는 그 순연한 욕망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다. 따라서 전통시대의 이미지란 궁극적으로 현실계에 유토피아를 가설해보이고자 한 적극적인 시각적 연출이고 그것들로 삶의 모든 공간을 가득 채우고자 했던 절실한 행동의 결과였다.
<밥>, 한지에 혼합재료, 91×72.7cm, 2009
동시대 미술이 그와 같은 주술성에서 떠난 지 이미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그 주술에의 염원과 희구는 한국 현대미술 속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는 인상을 보여주고 있는데, 박생광의 채색화를 거쳐 최근 상당수 작가들이 민화를 차용하거나 번안해 내는 일련의 작업들을 선보인다. 임영숙은 목단과 밥을 소재로 그 민화의 한 편린을 안기는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밥>, 한지에 혼합재료, 91×72.7cm, 2009
삶은 결국 먹고 사는 일이다. 우리는 따뜻한 밥 한 그릇에서 생을 만나고 다음 생으로 이어지는 길고 긴 길을 본다. 한자 기(氣)는 따뜻한 밥에서 나는 모락거리는 김을 상형한 문자이다. 농경 문화권에서 생명을 가능하게 하며 저마다의 정기를 보존 하게 하는 핵심적 존재는 쌀이고 또한 그것이 바로 기였다. 결국 생명이 밥이었다. 삶을 삶이게 하는 생명의 근원적 자리가 다름 아닌 한 그릇 밥인 것이다.
<밥>, 한지에 혼합재료, 92.5×184.5cm, 2009
<밥>, 한지에 혼합재료, 157.5×126cm, 2009
우리는 매일 한 끼에서 다음 한 끼가 고비인 그런 삶을 헤쳐 나간다.
그리고 사람들은 저마다, 밥 한 그릇을 먹을 때마다 그렇게 가슴 속에 보다 나은 삶의 희망과 희망을 키워나갈 것이다. 분명 그 밥으로 보다 나은 삶을 희구할 것이다. 그러니까 식탁은 사뭇 비장한 결의가 이루어지는 공간인 셈이다. 하여간 밥을 먹어야 다음 생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한 그릇 밥은 우리 앞에 내일을 여는 길이자 다음 생으로 이전되는 눈물겹고 뜨거운 통로다. 밥그릇에 담긴 수북한 밥에서 커다란 꽃이 가득 피어있다. 마치 밥이 꽃을 피워내고 있거나 꽃들이 밥을 대지 삼아 뿌리를 내리는 기세다. 밥 먹는 일이 사는 일이고 생명을 피워내는 일이자 희망을 보듬는 일이라는 것이다.
<밥>, 한지에 혼합재료, 91×72.7cm, 2009
하얀 밥그릇은 백자사발처럼 눈부시게 빛난다. 그 백설 같은 그릇 위로 봉분처럼 부풀어 오른 쌀밥이 담겨있다. 무덤의 모습이 밥과 함께 겹쳐지는 순간 삶과 죽음이 결국 하나임을 생각해본다. 밥 한 그릇 먹는 일에 생사가 달렸다. 장지에 동양화 채색물감과 먹으로 그려진 그림이고 오랜 시간 공들여 그린 그림이다. 채색화가 보여주는 깊이 있는 색감과 정치한 묘사 아래 기념비적인 밥이 마냥 환하게 부풀어 오른다. 덩달아 꽃들도 그 안에서 치열하게 피어난다. 민화작가는 자잘한 밥알을 하나씩 세어가면서 그렸는데 그 밥알 하나하나를 목구멍으로 밀어 넣으며 사는 인간의 삶, 목숨이 무엇일까를 새삼 생각해 보았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쌀밥으로 목숨을 부지하고 새로운 생을 기약하는 이들의 생의 열망도 은연중 헤아려보았으리라. 새삼 내 앞의 한 그릇 밥을 생각하게 하는 그림이다.
글: 박영택 교수(경기대학교,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