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오명희 개인전-생의 작은 노래(A little Song of Life) 장소: 조선일보미술관 기간: 2012.3.6~ 3.17
전통을 잇다: 현대 한국미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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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인들은 화조이미지를 빌어 음양의 조화, 사랑과 행복을 찬미했다. 나뭇가지에 앉은 한 쌍의 새와 활짝 핀 매화나 도화는 지상에서 본 이상형이자 지극한 열락이 구현된 풍경으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산수화가 상징하는 유토피아와 동일한 맥락에서 화조화도 그려진 셈이다. 민화에서 엿보는 화조화는 부부금슬과 부귀영화를 의미하는데 이처럼 인간적인 생의 욕망과 간절한 희구가 그림 속에 오롯이 스며들어 있는 것이 우리네 전통회화다. 그런데 그런 삶의 욕망에 대한 진솔한 이미지화는 역설적으로 현실계에서 그 욕망이 실현되기 어렵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유한하고 남루한 생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오래살고 변치 않는 사랑을 꿈꾸고 늘상 부귀영화를 누리며 행복하고자 다짐했던 것이다. 어쩌면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이루기 어려운 그 욕망을 이미지의 힘을 빌어 눈앞에 구현하고 소원하게 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화조화는 일종의 주술적인 이미지이자 기복신앙적인 도상에 해당한다.
그러나 근대 이후 미술은 이제 그런 도상과 주술성에서 풀려나 순수한 미나 장식, 관념으로 몸을 바꾸었다. 현대미술이라 불리는 것들이 그런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미술은 한 개인이 꿈꾸는 유토피아나 인간적인 생의 욕망을 투영하고 반사한다. 오명희의 그림도 그런 맥락에서 자리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오명희, 인생의 작은 노래, 162-390cm, 캔버스에 아크릴, 2012
오명희는 캔버스에 아크릴로 나뭇가지와 새, 꽃을 그렸다. 새는 매우 정치하게 묘사했고 꽃의 형상은 얇은 자개를 오려 부착했다. 꽃의 아름다움과 매혹을 자개라는 재료의 물성으로 극대화하고 있다. 자개의 물성은 배경을 조금은 뒤로 하고 앞으로 돌출하면서 화면을 이중적인 구조로 만드는 편이다. 전통적인 채색화와는 재료가 다르지만 여전히 소재나 구성에 있어서는 매우 유사한 느낌을 주는 한편 조선시대 민화, 자개장, 그리고 일본미술에서 엿보는 장식성도 혼재되어 있다. 외형적으로는 더없이 아름답고 화려하지만 그 이면에는 어딘지 쓸쓸하고 덧없는 비애감 같은 것이 스며들어있다.
꽃이나 새는 일시적이고 찰나적인 존재들이다. 봄날, 그토록 화려하게 핀 꽃들은 며칠이 지나면 이내 저버리고 새 역시 나뭇가지에 잠시 앉아있다 순식간에 날아가 버린다. 사람들은 그 모습에서 유한한 목숨과 덧없는 생과 모든 것이 무로 돌아가 버리는 극단적인 허무감을 보았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저 화려함 속에 잠긴 것은 정작 고독과 쓸쓸함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꽃에 바람이란 말도 있잖아 안녕만이 인생이다.”라는 일본의 노래가사도 떠오른다. 다소 과잉된 장식과 묘사가 아쉬움을 주지만 회조화의 전통이 오늘날 어떤 얼굴로 재현되고 있는 지를 볼 수 있는 기회이다.
글: 박영택 교수(경기대학교,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