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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대의 눈으로 보면 보이는 것-<길상>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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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명 : 길상 장 소 : 국립중앙박물관 기 간 : 2012.7.24 ~ 9.23

제비들이 복사꽃 가지와 수양버드 가지가 엉켜있는 사이로 날고 있는 그림. 음식을 담아 먹는 도자기에 화려하게 그려져 있는 박쥐.
미술사 책에는 이런 버드나무에 제비나 백자 속의 박쥐에 대해 좀처럼 속 시원히 말해주는 경우가 드물다. 그래서 ‘왜 그렸는가’ ‘무슨 의미인가’라는 물음이 계속 남게 되는데 이게 바로 오늘날 ‘고미술, 한국미술은 어렵다’는 인상을 심어주는 장본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명문 원와당(銘文 圓瓦當) 漢 국립중앙박물관
장락미앙(長樂未央), 부귀만세(富貴萬歲) 연수장구(延壽長久
)

사실 학문으로서의 미술사는 이 부분을 간과해 왔다. 근대 미술사는 주로 작자인 개인과 양식문제에 매달려 왔는데 거기에서 ‘왜’나 ‘무엇’이란 문제는 이름 없는 장인들이 발휘하는 공예나 장식 세계에 속한다고 치부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근래 들어, 개인의 자각에 근거한 근대적 해석만이 타당한가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는 연구도 등장하고 있다.   


청화백자 복자문 접시(靑華白磁福字文楪匙) 명 만력(萬曆 1573-1620) 각 지름 13.3cm 국립중앙박물관
소나무의 구불구불한 줄기로 복(福)자를 나타낸 접시

길상 전시는 동아시아문화권의 중심인 중국에서 옛 미술품들이 담긴 이들 문제, 즉 ‘무엇을 위해 만들었고 왜 그렇게 장식했는가‘를 종합적으로 설명해보자는 전시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개인이나 양식에 초점을 맞춘 근대적 시각을 버리고 그 물건을 쓰고 사용했고 걸어두었던 사람들이 거기에 무엇을 느끼고 즐겼는가를 당시의 시각으로 들여다보자는 것이다. 


분채 편복문 반(粉彩蝙蝠文盤) 淸 19세기 지름 29.8cm 국립고궁박물관
박쥐 복 자는 복(fu)과 음이 같아 복을 상징한다. 그릇 가운데 다섯 마리의 박쥐가 수(壽) 자를 둘러싸고 있는 것은 오복과 장수를 함께 누린다는 오복봉수(五福奉壽)를 나타낸 것이다.

물건에 장식이 새겨진 것은 고대부터이다. 그러나 이들 장식 문양이 상징 체계를 갖춘 길상 이미지로 정착한 송나라 때부터라고 할 수 있다. 송나라는 사회와 경제면에서 그 이전의 세계와는 분명히 한 선을 끗는 새로운 사회였다. 오래된 귀족 사회는 전란을 통해 거의 완전히 붕괴되었고 그 대신 관료를 중심으로 한 문인 사회가 등장했으며 또 경제의 발전의 일환으로 일반 서민사회가 정착하기 시작한 것이다. 


소신(蕭晨) <신선도(神仙圖)> 淸 1688년 비단채색 147.0x96.0cm 화정박물관
복을 관장하는 목성(木星)과 출세를 담당하는 관성(官星) 그리고 장수를 주관하는 남극도인(南極道人)이 아이들과 함께 그려져 있다. 관성은 조복 차림으로 허리에 관대를 두른 것이 보통이다.  

귀족 대신해 사회의 주역이 된 이들은 현세의 행복이 언제까지나 계속되길 바랐다. 이들은 고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장수(壽)와 다복(多福)에 대한 기원(祈願)에 더해 관료로서의 출세(綠)를 꿈꿨다. 이래서 확립된 것이 복록수(福祿壽)에 대한 희구였다. 이들을 나타내기 위해 여러 길상 이미지가 동원되었는데 이는 명청대의 사치스럽기 그지없는 궁정 문화 속에서 회화, 도자기, 일상용기 등 다양한 방면으로 퍼져나갔다.


이육(李育) <도류사연도(桃柳賜宴圖)> 청 1889년 지본채색 102.2x47.0cm 서강대박물관
제목만 봐서는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없는 그림이다. 중국에서 중요한 과거시험이 열리는 때는 복사꽃피고 버드나무의 새싹이 돋는 때라고 한다. 과거 합격자에게는 황제가 연회를 배출어주는게 보통인데 제비(燕→宴)가 버드나무 가지 사이를 날아다니는 모습은 바로 이를 나타낸 그림이다. 

복록수를 나타내는 길상 이미지는 크게 세 가지로 구성된다. 하나는 고대부터 전해내려온 상서로운 장식 문양이며 둘째는 여러 동식물에 담긴 상징적 뜻과 의미이다. 그리고 중요한게 세 번째인데 이는 해음(諧音)에 따라 차용해온 이미지들이다.


심남빈(沈南蘋) <화조도(花鳥圖)> 淸 1731년 견본채색 160.9x70.4cm 국립중앙박물관
그림속의 백두조와 장춘화, 복숭아 나무 등은 모두 장수를 상징하며 원앙은 부부 금슬을 나타낸다.

해음이란 발음이 같거나 비슷하다는 의미이다. 박쥐의 복(蝠, fu)은 행복의 복(福, fu)과 발음이 같다. 거미는 중국에서 지주(蜘蛛) 또는 희주(蟢蛛)라고 하는데 그 중의 희(蟢,zie) 자는 기쁠 희(喜, xie) 자와 발음이 같아 기쁜 일, 기쁜 소식을 뜻하게 됐다. 그런데 이 해음의 경우는 시대가 흐르면서 서로 맺어진 고리가 잊혀 지면서 의미를 알 수 없게 된 게 생겨났다.

 
비단욱(費丹旭) <기명절지도(器皿折枝圖)> 淸 1839년 견본채색 105.0x43.0cm 화정박물관
신년 초에 황실에 그려 바치는 그림으로 일년 동안 평안을 축원하는 내용들이 담겼다. 매화꽃잎은 5개로 오복을 의미하고 붉은 열매가 있는 천죽(天竹)의 죽자는 축(祝, zhu)와 발음이 같다.
또 큰 귤(大橘, daji)는 대길(大吉, daji)와 발음이 같다.

근대 이전의 한국 미술은 그 상징체계가 중국과 같다는 점에서 이번에 소개된 길상이미지는 한국미술의 해석에도 고스란히 적용이 가능하다. 따라서 조선시대 자료를 나란히 소개했더라면 하면 아쉬움이 남는 전시이다.
사족을 하나 더 붙이지자면 똑같은 컨셉에, 전시 구성도 다를 바 없는 전시가 1998년 도쿄국립박물관에서 ‘길상-중국 미술에 담긴 의미’라는 제목으로 열렸었다. 이제야 재탕 전시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글/사진 스마트K
업데이트 2024.11.19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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