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 모성 Motherhood 장 소 :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기 간 : 2012.5.11-2012.7.31
여성의 삶으로서의 ‘어머니’라는 말과 ‘대자연 Mother Nature’이라는 말은 마치 ‘의무’와 ‘권리’처럼 다른 느낌을 준다. 생명을 만들어내는 어머니의 몸은 때로는 노동의 질곡에서 허우적거리기도 하고, 만물의 근원으로 떠받들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기획전시관과 근현대미술전시관에서 열리고 있는 특별기획전 『모성 Motherhood』은 한국 전통유물과 근현대작품, 아시아 각국의 현대작품에서 다루어진 어머니 도상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대표적인 모자상, 여러 종교에서 보여지는 신격화된 어머니, 생명의 시원이자 창조의 원천, 풍요로움, 자애로움, 영원한 안식처, 고향과 동일한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모성을 보여주는 다양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삼불제석(三佛帝釋), 작가미상, 20세기 초, 종이에 채색, 80X47cm, 목아박물관 소장
삼불제석은 불교와 전통 삼신신앙이 결합된 형태로, 인간의 재복, 수명, 잉태를 관장한다.
운수암 관음변상탱화, 신겸, 1790년대, 비단에 금니, 61x41cm, 월정사 성보박물관 소장
<가족도> 배운성, 1930년대, 캔버스에 유채, 140x200cm, 전창곤 소장
<성모자상> 장우성, 1960년, 종이에 채색, 130x40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외래종교인 카톨릭의 성모자를 전통 한복을 입은 모습으로 표현하여 한국의 정서가 융합된
자애로운 모성애를 표현한 작품이다.
옛 문헌에서 어머님에 대한 공경과 은혜를 가르치는 내용이나 자식을 양육에 대한 기록과, 배냇저고리나 포대기 등 옛날의 육아용품도 몇 점 전시되어 있다.
불설대보부모은중경(佛說大報父母恩重經)> 중 불설대보부모은중경(佛說大報父母恩重經)> 중
<회건취습은 回乾就濕恩> <인고토감은 咽苦吐甘恩>
자식을 마른자리에 뉘이고 기르신 은혜 단 것은 자식에게 먹이고 쓴 것은 자신이 삼키신 은혜
부모은중경』은 부모의 은혜를 기리는 경전으로 불교의 교리보다 유교의 근본인 효를 강조하는 내용이다.
본 전시에서는 용주사 본의 변상도 판화를 볼 수 있다.
두렁치마, 20세기, 면, 길이 37.5cm
백자 육각 소병, 19세기, 높이 14cm
백자 병으로 제기의 일종이다. 젖을 앓는 부인이 그 젖을 짜내,
한 쌍의 병에 담아 서낭당에 올리고 기원을 했다고 전해진다.
전시의 뒷부분에서는 현대 아시아의 다양한 역사적 배경에서 짓밟히거나 왜곡된 모성을 보여주는 작품과 함께, 계급이나 제국주의, 혹은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의 강조를 위해 어머니와 아이의 모습이 극단적으로 표현된 예도 볼 수 있다.
<빈 젖> 강요배, 1992, 캔버스에 유채, 116.7x72.2cm, 작가소장
<임신한 여인> 서대승, 2002년, 디지털 잉크젯 프린트, 각각 150x120cm, 작가소장
어쨌거나 한국미술의 관점에서 하이라이트는 역시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소장 김홍도의 <행려풍속도병> 중의 <매해파행도(賣醢婆行圖)>. 이 그림을 제대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치 있는 발걸음이라 생각했다.
<매해파행도> 김홍도, 18세기, 비단에 채색, 37.4 X 71.5 cm,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소장
'해(醢)'는 젓갈을, '파(婆)'는 할머니 혹은 여인네를 의미하므로, 제목 그대로 젓갈을 팔러 가는 여인네들을 그린 그림이다. 7명의 여인들이 광주리나 동이를 이고 장터를 향한 바쁜 걸음을 하고 있다. 그 중에는 아기를 업은 여인이 보인다. 아기를 업지 않은 여인네들도 아마 누군가의 어미일 것이다.
이 작품 상단에 적힌 표암 강세황의 제발(題跋)은 다음과 같다.
余曾居海畔慣見 賣醢婆行徑
負孩戴筐 十數爲群 海天初旭 鷗鷺爭飛 一段荒寒風物 又在筆墨之外
方在滾滾城塵中 閱此 尤令人有歸歟之思
요약하자면, 자신이 바닷가에 살 때 젓갈을 팔러가는 여인들의 모습을 본 적이 있다는 것, 아이를 업고 광주리를 이고 무리지어 가는 새벽의 황량한 풍경에 대해 말하고 고향에 돌아가고 싶다는 것이다.
그러나 표암이 돌아가고 싶은 것은 그 고즈넉한 풍경 속이지 고단한 그들의 삶은 아니었을 것이다. 젖먹이 아이를 업고 머리 위에는 무거운 짐을 이고 살림을 이끌어 하루하루 먹고 살아야 하는 이들에게는 이것이 거룩한 모성이라고 떠받들여진다해도 하나 기쁘지 않을 테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