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 여흥과 유풍-작은 주병전 장 소 : 호텔프리마 미술관 기 간 : 2012. 4. 20 ~ 2012. 8. 30
제 아무리 반기고 반기던 비였건만 추적거리는 비에 역시 생각이 술로 내달리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세차면 세찬대로 오락가락하면 오락가락하는 대로 다 제멋이라고 한다.
이처럼 술꾼들의 반려는 아주 많다. 친구가 있고 날씨가 있고 근사한 주점도 또 모처럼 맛보는 가효(佳肴)도 있다. 그 중에서도 친구와 분위기는 으뜸이 아닐 수 없다. 이들만 있으면 찌그러진 양푼도 이빨 빠진 술잔도 무슨 상관이랴. 이런 호기로운 자리에는 콸콸 따르면서 情도 그득그득한 탁주가 제격이다.
헌데 주법에는 혼자 마시는 독작(獨酌)도 있다. 이태백이 아니니 달하고 너풀거릴 수는 없을 것. 그저 상 위의 정종을 쫄쫄 따르면서 술잔도 들여다보고 술병도 지켜볼 뿐이지.
독작도 어엿하게 대접받는 일본에서 조선의 한 뼘 크기의 병은 그런 적료(寂廖)에 정말 딱 들어맞는 짝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전직(前職)은 부엌데기. 장물 병, 기름 병, 촛병이었다고 한다.(일설에는 기름병은 냄새가 배 쓸 수 없다고 한다)
작은 주병(酒甁)만 모은 이 전시에는 청자에서 분청사기 그리고 백자까지 그저 한 홉이나 들어갈 병이 93개나 소개되고 있다. 일본에서 주로 수집한 것이라 한다. 360일 술과 살았다는 이태백의 부인이라면 응당 외면했을 장관이다. 병병의 서로 다른 경치에 눈을 빼앗기지 않을 주객이 이 세상에 또 있을까.
술병에 그려진 문양 그리고 그 문양이 보여주는 경치를 짐짓 옛 시인들의 유명 시구에 빗대어 홀로 술잔을 기울이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이쯤하면 술은 어지간히 되었을 터. 경치 구경 한번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