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 이스탄불의 황제들 장 소 :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 기 간 : 2012년 5월1일~9월2일
1453년은 세종이 승하하고 맏아들 문종이 제위에 오른 지 3년이 되는 해이다. 이때 저 멀리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콘스탄티노플에서는 세계사를 바꾸는 결정적 사건이 일어났다.
<쌍둥이 여신> 높이 17cm BC 6000년경 신석기시대에 만들어진 여신조각
청동으로 만들어진 작은 사슴조각 BC 3000년경, 높이 46.5cm
당시 콘스탄티노플은 동로마 제국의 수도. 천년을 이어져 내려온 이 제국의 수도는 이 해에 중앙아시아의 새로운 강자인 오스만 터키에 함락됐다. 배가 산을 넘었다고 하는 극적인 콘스탄티노플 함락은 시오노 나나미의 소설로도 유명하다.
BC 14세기경 만들어진 탑모양의 토기, 높이 12cm
히타이트 제국의 바라캅 왕의 모습이 새겨진 건물 하단의 부조, 높이 135cm
함락이후 이탈리아 본토로 탈출한 학자들에 의해 르네상스가 시작됐다. 또 중동을 거치는 아시아産 향신료무역이 차단되며 새 루트를 찾기 위해 대서양을 횡단하는 대항해, 대발견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고 한다.
고대도시 페르가몬에서 출토된 헬레니즘 시대의 부조 <전쟁에 나가는 남성> BC2세기경, 높이60cm
터키 서남부 트랄레스에서 출토된 사랑의 신 <에로스의 상> 2세기경, 폭 58cm
당구대 위의 공이 연쇄적으로 부딪치듯이 이렇게 시작된 역사는 거슬러 올라가 따지고 보면 한국의 불행한 근대와도 무관하지 않다. 이렇게 전개되는 세계사의 방아쇠를 당긴 주역인 이스탄불(콘스탄티노플의 개명)은 아이러니하게 이때부터 서양 역사에서 이름이 사라졌다. 이교도의 땅이란 이유에서였다. 이는 근대이후 서양의 시각을 계승한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동로마 시대인 5세기경에 만들어진 <복음전도사> 상, 높이 69cm
예수 그리스도를 표현한 듯한 <선한 목자>상, 6세기경 높이 87cm
이 전시는 용산시대의 국립중앙박물관이 우리 눈으로 세상을, 세계문명사를 바라보자고 한 일련의 기획중 하나이다. 그 동안의 기획전은 이름만 주최였지 실은 전시기획사 손을 빈 남의 손에 코풀기였다고 할 수 있다.
동로마제국을 멸망시킨 술탄 메흐메드 2세(재위 1444-1481)의 메달, 지금 9.2cm
오스만제국 황제의 <보석장식 투구> 16세기경, 높이 28cm
반면 이번 전시는 두 나라가 공식적으로 나서서 마련한 전시에 가깝다. 근래 들어 원자력발전소든 뭐든 터키와 한국은 경제적으로 매우 가까워졌다. 그래서 그 위에 문화적으로도 한층 깊이 서로를 이해할 필요가 생긴 것이다. 그런 점에서 터키 문화의 중심부를 ‘황제의 문화’로 소개하는 전시의 충실도는 이전의 전시가 감히 따라올 수 없을 정도 높다.
나무 등 여러 재료를 서로 맞물려서 연속무늬를 만드는 쿤데리카 기법으로 만들어진 코란함. (왼쪽 16세기 높이 71cm, 오른쪽 16-17세기 150cm)
이스탄불의 술탄 아흐메드 1세(재위 1603-1617)의 영모에서 발견된 한쌍의 촛대. 높이 89cm
그리고 하렘이란 신비스런 용어로 포장돼 있듯이 낯선 이슬람 문화의 정수인 오스만 터키 제국의 황제문화로 이어진다. 세계화에 여러 부작용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세계화가 진행되지 않았더라면 이스탄불은 여전히 하렘의 본고장이나 케밥의 고향 정도로 남아있었을 것이다.
수입된 중국자기에 각종 장식을 더해 사용해 궁중용품들
<향로> 1618년 높이 94.5cm
<청자 성수병> 14-15세기 높이20.5cm
<백자 보석장식 사발> 16세기경 높이 12cm
세계화로 멀리 이스탄불에 있는 미술애호가들도 언젠가는 이런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경주 남산에서 출토된 온화한 얼굴의 불상과 고려 시대의 비취빛 청자 그리고 개울이 발을 담그고 있는 학자를 그린 조선 시대의 그림 등등을. 그때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게 될지. 바로 이들이 느끼고 떠올릴 것들이 바로 지금 먼 이국의 이스탄불을 거쳐 간 황제 문화를 보는 우리의 시각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술술탄의 터번 장식 (좌) 길이20cm, (우) 길이 31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