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 호생관 최북 장 소 : 국립전주박물관 기 간 : 2012년 5월8일~6월17일
역사상 인물 가운데 이름이나 명성에 비해 실체가 불분명한 경우가 더러 있다. 조선시대 후기의 화가 최북은 바로 한국 미술에서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18세기 중후반을 배경으로 현재 심사정, 표암 강세황, 단원 김홍도 등 여러 유명 화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활동했다. 뿐만 아니라 숱한 기행으로 미술사에 그만큼 일화가 풍부한 화가도 드물다.
최북은 메추라기를 잘 그려 최메추리라는 별호가 있었다.
<메추라기(鶉圖)> 견본채색 24.0x18.3cm 고려대 박물관
그림 솜씨도 뛰어나 산수에서 사군자, 화조영모화까지 잘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의 내력이나 전기 등에 대한 일은 매우 영세하다. 생몰년이 알려진 것도 근래의 일이다.
순무와 무청은 당시 어떤 길상 의미가 담겼던 듯하나 지금은 전하지 않는다.
<배추와 무(蔬菜圖)> 지본담채 21.5x30.5cm 국립중앙박물관
더욱이 북(北)자를 둘로 나눠 칠칠(七七)로 불렀다는데 더없이 친근감을 느끼면서도 그의 그림에 대한 이해는 막연히 ‘호방하고 머뭇거리는 데가 없다’는 인상적 감상이 전부였다. 전주박물관이 마련한 이 기획은 그런 허를 찌른 전시라 할 수 있다.
전하는 것 중 호방한 산수는 일부이다. 이는 강세황의 집을 그린 전형적인 남종화이다.
<산향재도(山響齋圖)> 지본담채 29.0x53.5cm 국립중앙박물관
더욱이 올해는 부제, 최북 탄생 300주년에 해당하는 해이다. 그는 겨우 20년 전에 비로소 생몰연대가 확인되었는데 1712년에 중인으로 태어나 1786년 무렵에 죽었다고 전한다.
화가의 자화상이 아닐까 추측되는 그림이다.
<북창시유량풍지(北窓時有凉風至)> 지본채색 24.2x32.3cm 국립중앙박물관
그동안 한국미술사 위에서 이름만 무성했지 한 번도 제대로 된 실체를 조명할 기회가 없었던 大회고전이란 점에서 여러모로 의미가 깊은 전시이다. 또 그런 만큼 몇 가지는 눈여겨 볼 대목도 있다.
이 역시 화가 본인을 그린 그림이 아닌가 추정된다.
<수하인물도(樹下人物圖)> 지본담채 24.2x32.3cm 국립중앙박물관
우선 숫자이다. 세상에 100여점이 전한다는 그의 작품 가운데 58점이 한데 모였다. 이만한 작품수라면 향후 최북 연구의 새로운 전개가 가능하다고 할 만한 양이다. 물론 여기에는 박물관 창고에 묻혀 있던 것, 또 무명씨가 묶은 글씨 첩의 앞뒤 장에 붙어 있던 그림도 찾아냈다.
오오카 슌보쿠 『화사회요(畵事會要)』의 일부
화제에는 ‘조선 화원 거기재(居其齋)의 필, 관연 무진년 여름에 내조(來朝)하다’로 되어 있다.
둘째는 통신사를 따라 일본에 갔던 최북의 활동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자료의 소개이다. 최북은 1748년 통신사를 따라 일본에 갔다. 당시 기록의 공식 수행화원은 이성린(李聖麟). 최북은 개인적으로 수행한 별화사였다고 한다. 이때 오사카의 화가 오오카 슌보쿠(大岡春卜)을 만났는데 그는 나중에 『화사회요(畵事會要)』라는 화보집을 만들었다. 여기에 최북이 그려준 그림이 판화로 실려 있는데 바로 그 원본인 듯한 그림도 이번에 발굴됐다.
일본 화보의 원본으로 보이는 그림이다. 화제는 ‘무진중하 거기재사(戊辰仲夏 居其齋寫)’이다
<산수도(山水圖)> 1748년 지본수묵 61.5x37.0cm 국립중앙박물관
세 번째는 그의 다양한 면모의 재발견이다. 그에게는 여러 일화가 있다. 우선 천하 명인(名人)이라면 마땅히 천하 명산에서 죽어야 한다고 금강산 구룡연에 뛰어든 일화가 있다. 또 남의 집 문지기가 대접해준답시고 ‘최직장 오셨다’고 하자 ‘내가 언제 직장 벼슬을 했냐, 이왕 높여줄려면 정승이라고 해라’고 소리쳤다는 일화도 있다. 이런 일화에 상상이 더해지면서 그의 그림은 대체로 호방하다고 불리웠다. 그러나 실제 펼쳐놓은 그림들을 보면 다양하다. 그는 직업 화가답게 여러 방면의 주문 내용을 소화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탁영(濯纓) 서첩의 앞뒤 장에 붙어 있는 그림이다.
<산수도> 1749년 지본수묵 49.8x78.5cm 국립중앙박물관
마지막으로 꼼꼼히 볼 것은 그에 관련된 문헌, 인장 자료이다. 알려진 남공철의 기록(『금릉집(金陵集)』)과 조희룡의 기록(『호산외사(壺山外史)』) 외에 일본에 간 내용을 입증하는 이현환 의 『섬와잡저(蟾窩雜著)』가 새로 소개되고 있다. 또 그의 시가 실린 시집도 직접 보여준다. 그 중 한 수를 보면, 역시 최북이란 생각이 들 정도이다. <오입쟁이>란 제목의 시는 시회(詩會)자리에서 점잔빼며 양반 놀이를 하는 중인 무리에게 성깔대로 한 방을 먹이는 내용이다.
冶游郞 이유랑
白馬橋頭立 微風落柳花 백마교두립 미풍낙유화
揚鞭東陌上 何處是娼家 양편동맥상 하처시창가
백마다리 앞에 서니
산들 바람에 버들꽃 떨어지네
채찍 들어 동편 길 올라서니
어드메뇨 창녀집이
그외 도록에 수록한 인장자료 역시 이후의 연구에 디딤돌이 될 만한 내용이다. 기획 면에서는 단연 상반기 최고 주목의 전시라 해도 그다지 틀리지 않다는 생각이다.(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