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진경시대 회화대전 장 소 : 간송미술관 기 간 : 2012년 5월13일~5월28일
정선(鄭敾) <단발령망금강(斷髮嶺望金剛)> 견본담채 24.4x32.2cm
장안에서 날로 인기가 높아가는 전시가 간송 미술관의 봄가을 전시이다. 그러나 여느 미술관처럼 친절할 수 없는 여건이 있어 전시만 보고서 내용을 그대로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면 알기 쉽게 Q&A로 소개해본다면.
Q. 진경 시대란 어느 시대를 가리키나.
A. 조선시대 후기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를 가리킨다. 통치한 왕의 시대로 보면 숙종(재위 1674-1720)에서 영조(1724-1776)를 거처 정조(1776-1800)에 이르는 시대이다.
정선(鄭敾) <금강내산(金剛內山)> 견본담채 49.5x32.5cm
Q. 왜 진경 시대라고 부르는가. 역사 교과서에는 없는 이름이기도 한데.
A. 건강을 중시하는 현대를 가리켜 웰빙 시대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 시대의 문화 예술에 보이는 가장 큰 특징인 조선적 특색의 발현이란 점에 주목해 붙인 이름이다.
조영석(趙榮祏) <주려대주(駐驢待主)> 지본수묵 35.5x25.7cm
Q. 그렇다면 그 이전에는 이 시대를 뭐라고 불렀는가?
A. 알다시피 숙종에서 정조에 이르는 조선시대 후기는 문화 예술이 크게 발전한 시대였다. 그래서 교과서에서는 대개 문예부흥기라고 표현하고 있다.
김희겸(金喜謙) <산가독서(山家讀書)> 지본담채 29.5x37.2cm
Q. 진경 이란 무슨 뜻인가?
A. 진경은 한자로 쓰면 眞景, 진짜 경치를 말한다. 이전까지 중국에서 정형화된 산수를 그리다가 이 시대가 되면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조선의 풍경을 그리게 됐다. 그런 점에서 조선의 진(眞)짜 경치(景)를 그린 시대인 것이다. 그 같은 진경 산수는 겸재 정선에서부터 시작됐다.
Q. 겸재 정선이 창안했다는 진경 산수화는 구체적으로 어떤 화풍인가?
A. 정선(鄭敾, 1676-1759)은 처음에 중국 화보를 통해 그림을 배웠다. 그러나 화보 속의 그림만 익혀서는 눈에 보이는 조선의 산을 그려내기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천재적 역량을 발휘해 중국의 여러 기법을 혼합해 한국을 산수를 그리는 법을 찾아냈는데 그것이 바로 진경산수 화법이다.
심사정(沈師正) <삼일포(三日浦)> 지본담채 30.5x27.0cm
즉, 북방에 많은 바위산을 그릴 때 쓰는 선(線) 중심의 묘사법과 남쪽의 숲이 우거진 흙산을 그릴 때 쓰는 먹 중심의 표현을 한 화면 속에 조화롭게 배치한 것이다. 그래서 그가 그린 금강산 그림을 보면 일만이천봉의 뾰족한 바위산은 선으로 표현돼 있고 그 아래의 산들은 점이 중심이 된 먹 표현으로 돼 있다.
심사정(沈師正) <주유관폭(舟遊觀瀑)> 견본담채 70.8x131.0cm
Q. 진경 시대는 약130년 동안 지속됐다고 하는데 그 동안에 변화는 없었는가?
A. 어느 예술 사조든 한 사조가 그렇게 오랫동안 지속되는 경우는 없다. 진경 시대를 주도한 화풍 역시 내부에서 엔티 테제가 등장했고 또 이를 통합해가는 발전 과정이 있었다. 이번 전시에는 이 시대를 30주기의 세대별로 구분해 보여주는 것이 특징이기도 하다.
최북(崔北) <석림묘옥(석림묘옥(石林峁屋)> 지본담채 79.0x119.0cm
Q. 진경 시대의 앤티 테제란 처음 듣는 말인데?
A. 겸재가 진경 산수를 선보였다면 문인화가 조영석(1686-1761)은 조선적 풍속화 장르를 개척했다. 그런데 이때 그같은 조선화 경향은 동양 문화권의 중심을 벗어나 변방에 안주하는 일이라고 비판하면서 중심 회귀를 꾀하는 그룹이 등장했다. 겸재 다음 세대에 해당하는 심사정(1707-1769), 강세황(1713-1791), 최북(1712-1786), 김유성(1725-?) 등의 그룹이다. 이들은 중국 냄새가 물씬한 그림들을 그렸다.
강세황(姜世晃) <소림묘옥(疏林峁屋)> 지본수묵 56.5x122.0cm
Q. 그러면 이같은 앤티 테제를 극복한 세력은 누구인가?
A. 강력한 문예 군주인 정조의 리드를 받은 화가들로서 김홍도(1745-1806), 이인문(1745-1824), 김득신(1758-?), 신윤복(1758-?) 등이다. 이들은 겸재 세대가 개척했지만 다소 생경하고 딱딱한 진경 산수와 풍속화를 훨씬 시적이고 회화적인 모습으로 그려내는데 성공한 것이다. 시정넘치는 김홍도의 금강산 그림과 신윤복의 무르익은 풍속화를 그 사례로 꼽을 수 있다.
정충엽(鄭忠燁) <헐성루망만이천봉(歇惺樓望萬二千峰)> 견본담채 30.3x23.5cm
Q. 이 시대를 진경 시대라고 이름 붙인 것은 이번이 처음인가?
A. 아니다. 1970년대 중반부터 꾸준히 연구가 축적되면서 1990년대 후반에 거의 이론적인 완성을 보았다고 할 수 있다. 이때의 성과가 <우리 문화의 황금기, 진경시대>라는 이름의 책으로 출판됐다.(돌베개) 이 책에는 이 시대의 철학 사상, 사회 경제, 詩문학, 서예, 도자기, 불교 등 다양한 방면이 검토되면서 진경 문화가 회화 일면에 국한된 현상이 아닌 것을 말해주고 있다.
김홍도(金弘道) <옥순봉(玉筍峰)> 지본담채 42.4x28.7cm 이인문(李寅文) <총석정(叢石亭)> 지본담채 34.0x28.0cm
Q. 그렇다면 새삼스러울 것이 없는 진경시대 전시를 왜 다시 하게 되었는가?
A. 올해는 대컬렉터 간송 전형필(1906-1966) 선생의 서거 50주년 되는 해이다. 미술품 수집이 미술사 연구에 새로운 계기를 마련하고 또 흐름을 크게 바꾸는 일은 다반사로 있어왔다.
김득신(金得臣) <북악산(北岳山)> 지본수묵 36.5x29.8cm
왕의영이란 사람이 용골이란 동물 뼈를 모은 것이 계기가 돼 갑골학이란 학문이 성립된 것은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다. 또 18세기 그랜드투어 붐이 일면서 로마를 견학한 영국 귀족들이 가져온 컬렉션을 통해 영국에 신고전주의가 싹튼 것도 널리 알려진 일이다.
이방운(李昉雲) <삼일포(三日浦)> 지본담채 15.7x24.8cm
간송은 일제 시대에 흩어져갈 뿐 아무도 돌보지 않던 미술품, 문화재를 온 정열을 기울였다. 특히 회화 쪽에서는 정선, 심사정, 김홍도 등 18세기 주역들의 주요 작품을 정력적으로 수집했다. 말하자면 이 컬렉션이 밑바탕이 됨으로서 ‘진경의 18세기’라는 새로운 시대상을 밝혀낼 수 있게 된 것이다. 따라서 진경시대의 회화대전을 연 것은 바로 그 간송의 혜안에 대한 오마주라고 할 수 있다.(윤)
전형필 <방고사소요(倣高士逍遙)> 지본수묵 50.7x31.8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