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 조선 선비의 서재에서 현대인의 서재로 장 소 : 경기도박물관 기 간 : 2012년 3월 21일~6월 10일
이 영화를 안 본 분들에게는 실례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영화내용과는 관련 없으니 언급하자면 얼마 전 개봉한 ‘은교’라는 영화 속 주인공의 방에 관한 이야기이다. 영화배우 박해일이 연기한 이적요라는 인물의 서재는 명성과 명망을 얻은 시인의 공간답게 책으로 가득하다. 책꽂이를 가득 채우고도 켜켜이 쌓아놓은 책들은 그 인물의 지난 세월과 연륜을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영화 은교 中
책은 읽으면 마음의 양식이요. 읽지 않고 꽂아만 두어도 왠지 모를 배움의 기쁨이나 희망을 불러일으키는데, 그래서인지 책거리 그림 또한 마음을 풍요롭게 한다.
<초상>, 조선 19세기, 비단에 색, 55.8x34.9cm, 일암관
책거리 병풍을 배경으로 찍은 돌잔치 기념사진 책거리 병풍으로 장식한 평양지역의 생일기념 촬영사진
총 5부로 구성되어 있는 이번전시에서는 책을 문방구나 골동품 등과 함께 그린 책거리와 현대의 책거리 그림, 그리고 그와 관련 작품을 선보인다. 선비의 일상생활을 담은 회화를 통해서는 책가를 그려 선비의 의지를 보여주고자 했음을 알 수 있으며, 사진 자료를 통해 근대기 기념일에 책거리 병풍을 배경으로 했음을 알 수 있다.
<다보격>, 중국 청(淸) 20세기 초, 179.8x80.0x33.0cm, 경기도박물관
정조대 책가도의 연연외 되었던 중국의 가구로 옹정(1723~1735)연간부터는 궁중과 민간에서 다보격을 그린 그림이 그려졌다. 다보격이나 그 그림이 조선에 유입된 뒤에 중국풍과 서양풍이 반영된 장식용 그림으로 책거리가 유행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책거리는 중국 청대의 장식장을 그린 그림에서 기원한 것으로 보는데, 책가도는 말 그대로 책가, 즉 서가를 그린 그림을 말하며 책거리는 책을 비롯하여 그와 관련된 여러가지 물품을 그린 그림을 일컫는다. 책거리는 유교를 국가의 이데올로기로 내세웠던 조선시대의 학문을 숭상했던 전통을 보여주기에 책과 학문에 대한 애착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가 된다.
<책가도>, 19세기말~20세기초, 비단에 채색,10폭 병풍 161.7x39.5, 국립고궁박물관
현존하는 책거리 그림 중 서책만 가득한 경우는 그 예가 드물어 중요한 의미를 지니며, 정조가 어좌 뒤에 설치한 책가도의 모습 또한 이런 양식이었을것으로 짐작된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조선후기 이후의 책거리는 정조와 관련이 깊은데, 정조는 궁중화원으로 하여금 책거리를 그리게 하였으며, 창덕궁 선정전의 어좌 뒤에 오봉병 대신 책가도 병풍을 장식했다고 전한다. 정조가 신임했던 김홍도를 비롯하여 다수의 화원이 책거리를 그린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아쉽게도 이들의 그림은 전하지 않는다.
<책가도>, 19세기, 비단에 채색, 10폭 병풍, 각 198.8x39.3cm, 국립중앙박물관
책가 안에는 서책을 비롯하여 고동기와 기물, 꽃과 소과류가 진열되어 있다. 책가의 배경이 어두운 갈색에서 청색으로 바뀌었는데 이는 서양의 합성 안료인 아닐린의 수입과 관련이 있는것으로 보이며, 조선말기에 제작된 오봉병이나 십장생도에서도 볼 수있다.
정선, <독서여가>, 18세기, 비단에 채색, 24.1x17.0cm, 간송미술관
서가에 있는 등잔과 도자기가 눈에 띈다.
책거리의 책가 안에는 문방구나 청동기 도자기 등이 함께 그려지기도 했는데, 이는 조선후기에 중국 사행을 다녀온 역관들이 수입한 것으로 당시 종로거리에는 중국제 물건들이 즐비했다. 조선후기에는 중국 골동품 수집 취향이 성행했는데, 중국 청대의 다채색 도자기가 많이 그려진것은 외국 문물에 관심을 두었던 상류층의 의식이 반영된것이기도 했다.
<책거리>, 종이에 채색, 8폭병풍, 52.5x31cm, 리움
그렇다고 해서 책거리가 궁중이나 상류층에만 유행한 것은 아닌데, 이후 민간으로 확대되면서 민화 책거리가 발달하게 되었다. 민화책거리는 민간의 주거 공간에 맞게 작은 병풍그림으로 바뀌었으며 서안 위에 책과 기물을 쌓는 양식으로 변모되었다. 또한 길상의 의미가 담긴 동물과 식물이 등장하였으며, 평면적으로 표현되기도 하는 등의 변화를 보인다.
이형록, <책가문방도8곡병>, 종이에 채색, 8폭병풍, 140.2x468.0cm, 삼성리움미술관
책거리라 하면 흔히 민화의 한 종류로 생각되어 민화의 특성처럼 이름 모를 화가가 그린 그림으로 생각되기도 하는데, 정조가 화원에게 책거리를 그리게 했다는 자료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책거리를 그린 화원화가로는 이형록이 대표적이다.
이응록, <책가도>, 종이에 채색, 6폭 병풍, 각120.0x43.0cm, 경산시립박물관
이택균, <책거리>, 종이에 색, 10폭병풍, 각150.0x37.0cm, 통도사성보박물관
이형록은 화원 집안 출신화가로『승정원일기』에 따르면 두 차례 개명을 했으며 그로인해 이름만 갖고도 작품의 제작시기를 추정해 볼 수 있다. 이형록이면 1863년까지, 이응록이면 1864년에서 1871년 사이로, 이택균이면 1871년 이후의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장한종, <책가문방도>, 종이에 색, 8폭 병풍, 195.0x361.0cm, 경기도박물관
최근에는 이형록보다 40년 앞선 선배화원인 장한종이 그린 책가도의 존재가 알려졌는데, 8폭 중앙에 있는 '장한종인(張漢宗印)' 이라고 새겨져 있는 인장을 통해 알 수 있다. 이 병풍은 노란 휘장을 걷은 형식으로 그려 서가의 위용을 드러낸다.
홍경택, <서재>, 2008-2009, 194.0x259.0, 캔버스에 아크릴과 유채, 아모레퍼시픽미술관
김민수, <호랑이가 전하는 현대의 부귀영화>, 2010년작, 150x150cm, Acrylic on canvas.
박선영, <마법의 주전자>, 2011년, 최은경,
30x30x40cm, 대리석,크리스탈 48.0x52.0x50.0, 스테인레스스틸
이번 전시의 또하나의 볼거리는 현대미술로 재탄생된 책거리 작품들이다. 책거리라는 주제가 다양한 방식으로 현대에도 존재하고 있는것을 통해 책과 글을통해 자신을 갈고 닦는것은 어느시대에나 유효한 것임을 보여주며, 서가라는 공간을 예술작품으로 승화시켰을때 꾸준히 사랑받는 주제임을 알 수 있다.
이 외에 체험거리도 또 하나의 흥미거리인데, 어린이에게 책에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유용하다.
앙리 쥐베르, <선비의 방>, 1873년, 31.3x23.1cm, 명지대학교 LG연암문고
프랑스 해군장교 앙리 쥐베르가 스케치한 작품으로 책과 문자가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병인양요 때 외규장각 도서를 약탈해간 프랑스군의 해군 장교 앙리 쥐베르는 1866년에 있었던 두 차례의 강화도 원정에 출정하였는데, '이곳에서 감탄할 수밖에 없고 우리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것은 아무리 가난한 집이라 해도 어디든지 책이 있다는 사실이다" 라고 했다고 한다. 민간에서도 책은 꼭 갖고 있고 책거리 그림을 선호했던 것은 예부터 책을 소중히 하는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우리 민족이 책거리에 담은 소망을 살펴보고 싶거나 편리한 E-Book 을 선호하고 인터넷 쇼핑을 즐겨하게 되면서 점점 사라지고 있는 서점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면 이 전시를 권해본다. 책이 마음의 양식이 되듯 읽지 못하는 책이 꽂혀있는 그림이라지만 마음이 배부르다는 느낌을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