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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 속에 간직된 역사의 흔적-<한미사진미술관 소장 근대사진전 (대한제국 황실과 근대 조선인들)>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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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명: 한미사진미술관 소장 근대사진전 <대한제국 황실과 근대 조선인들> 장소: 전주역사박물관 기획전시실(3층) 기간: 2012.3.6~5.6

   

얼마 전 ‘선그라스 낀 고종사진’이 인기 검색어에 올랐다.
대한제국의 황제였던 고종, 현대에 와서 사진을 통해 우리에게 친밀감 가는 과거의 인물이기도 하다. 대하기 어려운 존재였던 국왕의 위치에서 사진촬영에 직접 임하여 근대 문물의 수용에 앞장섰다는 점에서 고종은 시대를 앞섰던 인물임이 분명하다.


고종황제, 암전(이와타 촬영)사진관, 1907년, 한미사진미술관 소장

전시는 ‘한미사진미술관 소장’의 근대사진으로서 ‘대한제국 황제와 황실’, ‘근대 조선인들’ 이렇게 2부로 나뉘어졌다. 약간 미소를 띈 듯한 얼굴로 제복을 입고 의자에 앉아있는 고종의 사진으로 시작되는 전시는 대한제국의 황제와 황실 인물들의 사진을 통하여 흥미로운 당시의 에피소드를 상상시킨다.


고종황제 [1852∼1919.1.21 재위 1863∼1907],한미사진미술관 소장


양복을 입고 찍은 고종의 사진을 통해 서양의 신문물을 수용하는 모습과 동시에 흰 삼베 한복을 입은 사진에서는 전통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고종의 색다른 변신이 흥미롭다. 이것은 당시 19세기 동∙서양이 함께 교차하고 있는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태황제 고종과 원로대신들, 무라카미 텐신 촬영, 1908년. 한미사진미술관 소장


사극에서나 볼 수 있는 광경이 보인다. <경운궁 준명당에서, 1908년>이라는 제목의 사진에서 약간은 어색한 듯한 표정의 고종과 신하들의 모습이 눈길을 끈다. 아마도 ‘무라카미 텐신’이라는 일본인에 의해 억지 촬영을 해서 그런 듯 하다.


'순헌황귀비'와 전 명성황후의 사진, 한미사진미술관 소장


비운의 국모 ‘명성황후’의 모습으로 알려진 사진과 함께 다소 풍만한 몸집에 매서운 눈매를 가진 ‘순헌황귀비’의 사진이 있다. ‘순헌황귀비’는 을미사변 이후 명성황후가 운명한 뒤 고종의 총애를 받아 영친왕을 낳았으며 여성의 근대교육에 앞장서 숙명여학교와 진명여학교의 개설을 주도하였다.


순종의 공식적인 초상사진, 한미사진미술관 소장


'순정효왕후'의 초상사진, 한미사진미술관 소장

‘순종’의 공식적인 초상사진이 진열되어 있다. ‘순종’이 일본의 육군복을 착용하고 있는 점에서 일본이 감시를 더욱 철저히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순종 사진 옆으로 조선왕조 그리고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후 윤비인 ‘순정효황후’의 사진도  있다.


순행을 마치고 기념 촬영하는 순종과 일행들, 한미사진미술관 소장

갈색 빛의 빛바랜 사진 속에서 순행을 마치고 기념 촬영하는 순종과 일행들이 보인다. 이는 순종황제가 1909년 1월 12일 일제가 기획한 6박 7일 일정의 남도(南道)순행을 마치고 돌아온 후 찍은 사진이다. 뒷짐을 진 채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이토 히로부미의 자세, 카메라를 애써 외면하며 다른 곳을 바라보는 순종의 시선에서 대비를 이루고 있다.

 
순종의 위독 소식에 급히 귀국하는 영친왕과 영친왕비 이방자, 덕혜옹주/ 상복을 입은 영친왕 내외(순종 국장)

사진 속에서 군복을 입고 서 있는 ‘영친왕’의 모습이 보인다. ‘영친왕’은 1세의 어린 나이에 이토 통감에 의해 강제로 일본에 끌려가 황족·화족 교육기관인 학습원에서 공부를 해야만 했고, 육군대학을 수료하여 제국의 군인으로 키워졌다. 영친왕을 황국의 충량한 신민이자 군인이라는 이미지로 표상하기 위한 정치적 포석이었던 것이다. 일제의 강압에 의해 여성의 몸으로 불운한 삶을 산  ‘덕혜옹주’의 모습도 눈길을 끄는 부분이다. 또한 순종의 국장 당시 찍은 사진 속 상복을 입은 영친왕 내외의 모습에서 슬픔이 느껴진다.

 
이우공 결혼 기념사진, 한미사진미술관 소장

황실가족들의 사진이 진열되고 있는 가운데 눈길이 가는 사진이 있다. 최근 ‘조선시대 미남 왕자’로 인기 검색어에 올랐던 ‘흥영군 이우’의 결혼식 사진이다. 그는 고종황제의 다섯째 서자 의친왕 이강의 차남으로 태어났으며, 생모는 의친왕의 후궁인 수인당 김흥인이다. 부인은 ‘박찬주’로 한말의 친일 정치가 박영효의 서 손녀이다. 이 역시 일제의 강압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전시된 사진 속 인물 이외에도 황실가족들의 계보는 무궁무진했다. 전시장에 마련된 황실세계라는 가계도를 통해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다.

   
 기념사진(금광당 사진관, 경성, 1920년대)/어린이(1930년대)/천도교인들(대마옥 사진관, 정읍, 1920년대)


군인단체(1937년), 한미사진미술관 소장

근대 사진으로 이어진 2부에서는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을 추측해 볼 수 있다. 특정 계층에게만 허락되었던 초상사진, 근대에는 누구나 초상사진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자신감 있는 포즈로 친밀감 있게 찍힌 두 여학생의 모습과 긴장한 듯 한 표정의 어린이, 교복을 입은 다정한 여학생들, 천도교인들의 모습 등 다양한 사람들의 사진들이 흥미롭다. 또한 가족사진도 눈에 띈다. 한편 기념사진에서는 일제강점기 군인들의 단체사진들을 통해 일제의 천황제 군국주의를 기반으로 한 식민지 조선에 대한 군사지배체제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


돌잔치 기념사진, 한미사진미술관 소장


 회갑연, 공주 조일사진관, 1920년대,한미사진미술관 소장

 
불과 한 세기 전까지만 해도 영아사망률이 높은 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돌이 된 모습을 영원히 기억하고자 하는 가족들의 열망이 돌사진을 요청했다. 영아사망률과 돌사진의 관계와 같은 통과의례적 기념사진으로는 회갑사진이 있다. 회갑사진은 가족사이의 유교적인 위계질서를 표상하는데 적합한 매체로서도 수용되었다.


전통혼례(1900년대 초), 한미사진미술관 소장


결혼기념, 오흥교 군과 고영순 양의 결혼기념사진, 1934년, 한미사진미술관 소장


결혼기념(1940년대), 한미사진미술관 소장

  
결혼사진 속 신랑과 신부, 요즘 사람들과는 다르게 긴장된 모습이 역력하다. 결혼사진은 돌이나 회갑사진보다 좀 더 일찍 수용된 것으로 보인다. 전통혼례에서부터 변화된 신식 결혼 문화까지의 풍경들이 전시되고 있다.
일본인 가와무라가 1900년대 초에 찍은 전통혼례 사진에서는 전형적인 조혼의 풍속을 보여준다. 성숙한 신부와 함께 앳되어 보이는 꼬마신랑이 전통복식을 차려 입고 있다. 1930년대에 이르면 서구식 결혼식이 유행하게 된다. 신랑의 예복은 연미복이나 모닝코트, 턱시도 등의 서양정장으로 대체되었고 신부의 예복은 웨딩드레스나 한복에 면사포를 두른 모습으로 나타났다.

 

이외에도 전시장 중앙에는 순종의 국장모습을 상세히 설명해 놓았으며, 순종황제 인산습의(1926년, 7분 30초)/ 한국의 주요 마을들(1923년, 1분 30초)/ 고요한 아침의 나라(1910년, 4분)라는 세 편의 동영상을 통해 전시에 대한 설명을 더하고 있다.

그동안 대한제국은 많은 부분에서 정확한 고증 없이 부정적으로 평가되고 있었다. 이번 전시는 다양한 사진을 매개로 대한제국의 발자취와 더불어 근대 조선의 여러 모습들을 보면서 우리 역사에 대한 이해를 돕고 근대의 문화를 다양한 시각으로 해석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글/사진 스마트K
업데이트 2024.11.14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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