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 천리에 외로운 꿈 장 소 : 국립전주박물관 기 간 : 2012.2.28~2012.4.15
‘조선 시대의 여성’이라고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를까? 남성 앞에서는 희생적이며, 자식 앞에서는 강한 어머니, 사회적으로는 아무런 힘이 없는 나약한 존재가 떠오를 것이다.
이러한 시대상황 속에서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지 못한 여성들이 많았는데 대표적으로 손꼽히는 신사임당(申師任堂), 허난설헌(許蘭雪軒), 황진이(黃眞伊)와 같은 여성 문학가들 이외에도 조선시대에는 우리가 알지 못했던 알려지지 않은 여성 문학가들이 존재했다. 국립전주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는 조선의 여성문학 <천리에 외로운 꿈>을 감상해본다면 여성들의 문학세계와 글 앞에서만은 당당하고 솔직했던 그녀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유명한 백제 노래 『정읍사(井邑詞)』, 떠난 남편을 그리워하는 여성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전시는 ‘여성, 세상의 절반’, ‘여성의 또 다른 이름, 어머니 그리고 아내’, ‘임 그리며...’라는 세 주제로 구성이 되었다. 전시의 중간 중간 설명이 필요한 부분에서는 멀티미디어를 활용하여 이해에 도움을 주고 있다.
유희춘(柳希春)의 『미암일기(眉巖日記』中 송덕봉(宋德峰)의「착석문서(斲石文序)/「차미암운(次眉岩韻)」
화락함이 세상에 짝이 없다 자랑말고
모름지기 나를 생각해 착석문을 읽어 보십시오
군자는 호탕하여 막힌 데가 없어야 하니
범공의 맥주인을 천년뒤에 생각해 보십시오.
송덕봉 「차미암운(次眉岩韻)」
미암(眉巖) 유희춘(柳希春)의 아내인 송덕봉(宋德峰)은 당시 여성과는 다른 면모를 보여주고 있는데 그녀가 지은「미암승가선작(眉巖升嘉善作)」과「착석문서(斲石文序)」,「차미암운(次眉岩韻)」등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녀의 글들을 통하여 가부장적 권위에 눌린 수동적 여성이 아닌 남편과 대등한 당당한 여성임을 보여준다.
『난설헌집(蘭雪軒集)』中 「곡자(哭子)」
지난해에는 사랑하는 딸을 잃고
올해는 사랑하는 아들을 잃었네
(중략)
비록 뱃속에 아이가 있지만
어찌 장성하길 바라겠는가
부질없이 황대사를 읊조리며
피눈물 나는 슬픔 속으로 삼키네
『난설헌집(蘭雪軒集)』中 「곡자(哭子)」
『가림세고(嘉林世稿)』에 부록된 『옥봉집(玉逢集)』中「증적자(贈嫡子)」.「위인송원(爲人訟寃)」
세숫대야 거울로 삼고
물을 기름 삼아 머리를 빗네
첩의 몸이 직녀가 아닌데
임이 어찌 견우이리오
이옥봉「위인송원(爲人訟寃)」
여성 문학가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인물, 허난설헌, 그녀는 자유로운 분위기의 가정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글쓰기에 능하였으나 혼인 후 시집살이로 인하여 여성이 글을 마음껏 못 쓰는 현실을 한탄하며 동생 허균(許筠)에게 자신의 글들을 모두 불태우라고 한다. 허균은 누나의 글을 엮어 『난설헌집(蘭雪軒集)』을 간행한다.
자신의 시에 대해 큰 자부심을 보였던 이옥봉(李玉逢)은 조선왕실 혈통인 이봉(李逢)의 서녀였다. 그녀의 글 솜씨는 이웃 여인의 남편이 소도둑으로 잡혀 갔을 때「위인송원(爲人訟寃)」이라는 글을 써서 풀려나게 할 정도로 뛰어났으나 그 일로 인하여 그녀의 남편이 행실을 꾸짖었고, 그와는 이별을 해야 만했다.
이와 같은 일화를 통해 여성이 그만큼 글쓰기가 어려운 현실이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임윤지당(任允摯堂)의 『윤지당유고(允摯堂遺稿)』中「이기심성설(理氣心性說)」
한편 성리학(性理學)에 조예가 깊은 여성도 존재하였는데 당대 대성리학자인 임성주(任聖周)의 여동생인 임윤지당(任允摯堂)이다. 그녀가 지은「이기심성설(理氣心性說)」과「인심도심사단칠정성(人心道心四端七情說)」등을 통하여 그녀만의 독특한 성리학 세계를 알 수 있으며, 그녀는 항상 자신의 이론은 임성주와는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였다는 점도 재미있는 부분이다.
강정일당(姜靜一堂) 『정일당유고(靜一堂遺稿)』中「면제동(勉諸童)」/「성경음(誠敬吟)」
성이 없으면 어찌 살며
경이 없으면 어찌 존재하리
오직 이 두 가지만이
도에 드는 문일세
강정일당「성경음(誠敬吟)」
당시 차별받았던 여성들 속에서 당당히 남성들에게 칭찬을 받은 여성이 있었는데, 그녀는 바로 강정일당(姜靜一堂)이다. 그녀의 시「면제동(勉諸童)」이나 「성경음(誠敬吟)」을 통해 그녀가 얼마나 학문에 대한 열정이 가득했는지 알 수 있다.『정일당유고(靜一堂遺稿)』에는 정일당의 글과 더불어 남성들이 그녀를 칭송한「만장(輓章)」이 함께 실려 있다.
안동장씨(安東張氏)의 『정부인안동장씨실기(貞夫人安東張氏實記)』中「경신음(敬身吟)」/편지
몸은 부모님께서 남기신 몸
감히 소중히 하지 않을쏘냐
이 몸에 수치스런 일이 있으면
어버이 욕되게 하는 것이지
정부인 장씨「경신음(敬身吟)」
사대부가의 여성들은 여성이 글을 쓰는 것을 삼가는 것을 알면서도 자식이 공부하길 바라는 어머니의 입장에서 어떻게든 자식에게 글을 썼다. 그 중에서도 정부인(貞夫人) 안동장씨(安東張氏)의「경신음(敬身吟)」에서는 공부를 안하면 어버이를 욕되게 하는 것이라고 했으며, 편지에서는 ‘글을 배워 천하의 그릇이 되라’고 다그치고 있다. 이러한 가르침들이 휘일과 현일 같은 당대 최고의 학자를 길러낸 밑바탕이 된 것을 보았을 때 예나 지금이나 자식교육에 대한 열정은 대단했다.
이루갈다의 <십자가> ,10.5cm/옥중편지」
‘이루갈다’라는 생소한 이름의 여인의 편지와 함께 진열되어 있는 십자가가 눈에 띈다. ‘루갈다’는 세레명으로 본명은 ‘이순이(李順伊)’이며 1801년 신유박해 때 전주에서 처형당한 여인이다. 그녀의「옥중편지」에서는 자신이 철저한 천주교 신자로서 시대적 상황 때문에 천주교인 남편 유중철(柳重哲)과 결혼을 의례적으로만 한 것이지 육체적인 관계를 맺지 않은 동정부부의 관계인 것 임을 나타내고 있다. 지금은 종교가 자유롭지만 당시 여성의 몸으로 보여준 신앙심과 당당함을 감상해 보는 것도 좋겠다.
『망노각수기(忘老却愁記)』中 「규중칠우쟁론기(閨中七友爭論記)」
조선의 여성이 가장 글에서 당당할 수 있는 부분은 일상의 기록이었다.
이사주당(李師主堂)의『태교신기(胎敎新記)』나 이빙허각(李憑虛閣)의『규합총서(閨閤叢書)』에는 태교 등 여성이 살림하는 데에 필요한 여러 부분들이 기록되어 있으며, 여성들이 바느질 하는 도구를 의인화하여 이야기로 쓴『규중칠우쟁론기(閨中七友爭論記)』와 유씨부인의『조침문(弔針文)』같은 글들이 흥미롭다.
서경덕『서화담선생집』 서유영의 『금계필담(錦溪筆談)』 中 황진이와 벽계수
조선의 기녀, 신분을 뛰어넘은 그녀들의 인생과 글은 현대에 와서 많은 칭송을 받고 있다.
황진이, 그녀는 드라마나 영화 소설 등을 통하여 조선 여성 중 주목받는 인물이다. 서경덕(徐敬德)과 주고 받은 글, 또한 벽계수(碧溪守)에게 쓴 시조 등이 전시되고 있어 그녀의 뛰어났던 문학적 역량을 알 수 있다.
황진이에 비해 덜 주목받고 있지만 이매창(李梅窓) 또한 대단한 인물이었다. 그녀는 부안(扶安) 출생으로 시, 노래, 거문고에 두루 능해 많은 사대부의 사랑을 받은 인물이다. 그녀는 유희경(劉希慶)과 허균 등과 가까이 지내며 많은 시를 주고 받았다. 고된 삶에 정신적 교류를 맺은 남자, 유희경은 매창이 평생 그리워했던 인물인데 전시되고 있는 글들을 통해 그에 대한 연모과 그림움을 감상해 보는 것도 재미있는 부분이다. 또한 허균과 주고받은 글들을 통하여 허균 역시 매창과 많은 정신적인 교감을 주고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유희경의 『촌은집(村隱集)』中「증계랑(贈癸娘)」/ 허균『성소부부고(惺所覆瓿稿)』中 이매창에게 보낸 편지
남국의 계량이름 일찍이 알았네 계량에게
글재주, 노래솜씨 서울까지 울렸어라 (중략) 우리가 처음만난 당시에 만약 조금이라도 다른 생각이
오늘에야 참모습을 대하고 보니 있었더라면은 나와 그대 사귐이 어찌 10년 동안이나 친하게
선녀가 하늘에서 내려온 듯하여라 이어질 수 있었겠소(중략)
유희경 『촌은집(村隱集)』「증계랑(贈癸랑」 기유년(1609년) 9월 허균『성소부부고(惺所覆瓿稿)』中권(券)21
이외에도 조선 최고의 여성필적인 설씨부인(薛氏夫人)의 권선문(勸善文)과 신사임당의 글, 명나라 장만의 지은 시인 「재서궁자조(在西宮自嘲)」를 쓴 인목왕후(仁穆王后)와 혜경궁(惠慶宮) 홍씨(洪氏의) 글, 이응태의 처가 보내는 「원이 아빠에게 보내는 편지」등이 전시되고 있다. 전시는 최명희(崔明姬), 양귀자(梁貴子), 은희경(殷熙耕), 신경숙(申京淑)등 유명 여성 문학가들의 사진과 작품을 진열하며 끝을 맺는다. 그녀들은 독특하게도 모두 전북 출신이다. 그녀들의 뛰어난 글 솜씨는 삼국시대 <정읍사>에서부터 설씨부인, 이매창, 김삼의당(金三宜堂) 등을 통해 이어진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 동안의 전통적인 여성문학은 대부분 이별이나 궁핍한 삶을 다루는 것으로 여겨온 면이 있다. 그러나 이번 전시를 통하여 조선의 여성들도 글 속에서는 단지 나약한 존재가 아닌 얼마나 당당한 한 인간이었는지를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