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 내 삶의 기록, 일기 전시장소 : 국립중앙도서관 전시기간 : 2012. 01. 02~2012. 03. 30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
이순신 장군이 남긴 건 비단 이 말뿐이 아니었다. 임진왜란 중에 쓴 국보 제76호 난중일기는 임진왜란 7년 동안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알려주며, 남극탐험가 로버트 스콧 또한 극한상황에서 일기를 남겨 절망적인 이들에게 희망을 안겨준다. 이를 보면 일기는 동 서양을 불문하고 자신에게는 개인기록으로, 또 한편으로는 문학이나 역사적 사료로 가치가 있어 중요자료임이 확실해 보인다.
현재 국립중앙도서관에서는 일기류 고문헌 23점을 전시하여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난중일기 외에도 많은 일기가 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선조들이 남긴 일기 중에는 난중일기처럼 전란 중에 기록한 일기도 전해지지만 국내나 중국, 일본으로 사행을 떠나서 기록한 기행일기나 관직 수행 중에 남긴 관직일기, 유배나 소청 등 사건의 전개과정을 기록한 사건일기 등 다양한 일기류가 존재한다.
이하진, 금강도로기(金剛途路記), 1664년
권복, 곡운공기행록(谷耘公紀行錄)
벼슬살이를 하면서 전라좌도와 경상좌도에 경시관으로 출장근무 중 보고 들은 일과 유배되어 오가며 체험한 여행기록이 수록되어 있다.
현대사회에서는 카메라가 휴대전화에 까지 장착되어 손쉽게 작동 가능하지만 카메라가 생길 거라고 생각조차 못했을 시대에 기록을 대신했던 것은 글과 그림이었다. 겸재정선의 금강산 그림을 비롯하여 여러 점의 금강산 그림이 전하고 있듯 문인들이 남긴 금강산에 대한 글도 전하고 있는데, 성호이익의 부친인 매산 이하진도 1664년 금강산을 기행하며 기행일기를 남겼다. 이하진은 금강산에 대해 '폭포가 흘러 길과 엇갈리고 구름이 피어올라 절구질을 하는 듯하니, 거의 사람이 사는 세상에서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라고 기록하여 금강산의 아름다운 절경을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다른 지역으로 출장근무를 갔을 때 보고들은 이야기나 유배시기에 쓴 일기도 전하고 있어 다른 지역의 풍습이나 식품명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서유문, 무오연행녹
1798년 10월부터 5개월에 걸쳐 북경을 다녀온 사행일기로 황성을 구경한 일, 홍로시 연례 연습에 대한 기록, 정월 초하루에 황제 앞에 나가 인사를 한 일 등을 국문으로 기록
오윤겸, 동사일록(東槎日錄)
1617년에 일본에다녀온 사행기록으로 임진왜란 때 잡혀간 46명의 포로와 같이 귀국했다는 기록이 있다.
한국 고전적 국역총서
유일본과 희귀본을 국문으로 번역
국내여행이던 국외여행이던 사진기가 필요하듯이 국내에서도 국외에서도 일기는 쓰였는데, 중국으로 간 연행이나 일본으로 간 사행에서도 그 기록을 일기로 남겨 당시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연행일기나 사행록은 한글본으로 번역되기도 하였는데, 사행원들의 그들의 눈에 비친 이국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으며 그것에 대한 생각이 함께 곁들어져 재미를 더한다.
이이, 석담일기 (石潭日記)
명종 20년(1565)부터 선조 14년(1581) 사이 조정에서 일어난 사건을 기록한 관직일기
관직일기는 조정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기록한 일기로 요직의 인사이동이나 주요인물의 동정 등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 대부분 국사에 대한 논의 등이 기록되어 있지만 상황에 따라 살인사건의 처리나 개인사를 중심으로 기록하고 있기도 한데, 저자미상의 관직일기에는 저자의 신병치료를 위해 어린아이의 오줌을 복용하였다는 흥미로운 기록도 전하고 있다.
저자미상, 음청록(陰晴綠)
경기지역에 하는 양반의 일상생활을 기록한 일기로 날씨와 농사일, 질병과 처방에 관한 관심이 기록되어 있다.
아이의 경기(驚氣)에 아직 털이 나지 않은 쥐를 달여 마시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
일상을 기록한 일상일기는 개인의 기록이 주를 이루어 생각이나 바람 등을 기록하기도 하였는데, 과거시험을 위한 공부 내용이나 부모님의 건강 같은 사적인 기록도 있지만 날짜별 날씨와 농사 상황을 기록하기도 하여 당시 기후와 농사 형세 등을 연구하는 자료가 되기도 한다.
남급, 병자일기(丙子日記)
병자호란 때 체험한 사실을 기록한 일기로 인조를 남한산성으로 호종한 체험과 국왕을 중심으로 조정에서 벌어지는 사건 전개에 초점을 두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외에도 병자호란 전란일기나 병자수호조약 체결의 실무자가 쓴 강화도 조약 체결기록, 동학농민운동 진중일기, 무신란의 토적일기 등을 살펴볼 수 있는데, 친구의 일기를 몰래 훔쳐보는 것만큼 스릴 있거나 재미있지는 않지만(물론 완벽하게 번역되지 않는 한자가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옛 사람들이 기록한 일기를 직접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할 수 있다.
내일부터는 꼭 '이것'을 해야지 계획만으로 끝내는 것으로 남자는 금연, 여자는 다이어트 그리고 공통적으로 일기쓰기가 있다. 어린시절 부터 가장 미뤄놨던 방학숙제도 일기였던것을 보면 일기쓰기가 그리 간단치만은 않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시대적으로 기록할 수 있는 장치들이 많아졌다고는 하나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고 반성하는데 있어 일기는 다른 기록과는 비교될 수 없는 그만한 가치를 지녔다고 할 수 있을것이다. 그리고 혹시 아는가..무심코 적은 오늘의 기록이 훗날 어떤 발명이나 발전의 밑거름이 될지, 혹은 그로인해 내가 누군가의 귀감이 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