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까치와 함께하는 조선양반의 일생 전시장소: 성균관대학교 박물관 전시기간:2011. 09. 23~2012. 03. 31
유년시절부터 즐겨 보던 만화가 이현세의 ‘까치’!
‘까치’가 이번 전시를 통해 한복을 입은 캐릭터로 새롭게 등장하며 양반의 일생과 관련된 유물, 고문서와 함께 전시되면서 이현세 작가를 통해 조선시대 양반의 일생과 관련된 개성 넘치고 해학미 넘치는 만화로 탄생되었다. 고문서와 유물만을 진열해 놓음으로 인하여 다소 딱딱하거나 단조로운 분위기가 될 수 있는 전시장을 관람객들이 조금은 쉽고 흥미롭게 접근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양반의 한평생을 출생-관례-혼례-교육-과거-관직생활-여가생활-상례-제례-추모 사업으로 나누어 이현세의 만화와 함께 전시되어 조화를 이루고 있다.
1. 이현세 <출생>
금줄 230cm
대문에 고추와 솔가지가 달린 금줄이 걸린 만화와 함께 진열된 금줄이 눈에 띄인다. 이현세의 만화에서는 ‘평생’의 출발점인 ‘출생’을 금줄을 치는 장면으로 표현하였다. 고추와 솔가지를 달면 남자아이, 숯과 솔가지는 여자아이를 뜻하는데 주렁주렁 매달린 외적인 모습에도 눈길이 가지만 출생을 알림과 동시에 외부로부터의 부정을 막는다는 내적인 의미에서도 충분히 관심이 가는 부분이다.
2. 이현세 <호구조사>
준호구,1735, 49X95cm
인구를 파악하는 일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3년마다 전국적으로 호구조사를 실시하였던 조선시대주호(主戶) 작성한 호구단자(戶口單子)가 관아에 신고되면 호적대장(戶籍臺帳)에 등록하고 그 증명서로 준호구(準戶口)를 발급하였다는 점도 주목할만한 부분이다.
3. 이현세 <성년>
상투관 10X3.5X6cm 자설(字說) 35X24cm
20살이 되면 누구나 성인의 날을 거친다. 성인의 날이면 장미꽃과 향수, 그리고 키스 세 가지를 받는 것이 하나의 유행이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15세가 되면 성인식인 관례(冠禮)를 치루었다. 남자에게는 상투를 틀어 갓을 씌우고, 여자에게는 쪽을 지고 비녀를 꽃아 주는 의식으로서 어른이 되었음을 상징하였다. 또한 남자에게는 새로운 이름이 ‘자(字)’를 지어주고 ‘자설(字說)’을 적어 그 이름에 대한 설명을 하였는데 이 부분에서 유교문화의 남성중심의 사회적인 단면을 볼 수 있다.
4. 이현세 <혼례>
혼수물목 427X37cm
조선시대의 혼인은 육례(六禮)의 절차를 거쳐 이루어져 현재도 그러한 관습이 고스란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눈에 띄는 부분은 혼수물목이 적힌 고문서와 혼수함, 사랑을 상징하는 기러기 형태의 목안, 임진왜란 직후 인 1593년 이경천(李慶千)이 납폐로 보낸 혼서지 등이 함께 전시되어지고 있다.
5. 이현세 <교육>
석봉천자문 24X43cm
서산 6X26cm
예나 지금이나 교육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다.
조선시대에는 서당, 사부학당과 향교, 성균관 등의 교육기관이 존재하였다. 사교육이 왕성한 현재와 같이 조선시대 역시 16세기 이후부터 지방에 서원이 생겼고 성균관에 입학하기 위하여 사부학당과 향교에서 교육을 받아 소과인 생원시나 진사시에 합격해야만 했다. 조선후기에 가장 대중적이고 일반적으로 사용했던 석봉천자문과 사서삼경, 붓걸이, 지금의 책갈피와 같은 용도인 서산(書算) 등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6. 이현세 <과거>
과거시험을 보러 떠나는 선비의 봇짐
수진본(袖珍本)9X13.5/18X12/6X11.5/4X10cm
명함(화함) 9x11cm
지금의 고시와 같이 성균관에 들어가서 대과라는 시험을 치루어야 관리가 될 수 있었다. 과거시험을 보러 떠나는 선비의 봇짐과 소매에 넣을 수 있는 작은 책인 수진본(袖珍本)등이 같이 전시되어 조선시대 양반들의 학문에 대한 열의를 볼 수 있다. 초시에 합격하면 받는 백패와 대과에 합격하면 받는 홍패 등이 함께 진열되어 합격한 주인공의 등수도 파악할 수 있는 점도 재미있다. 또한 관리가 출장이나 휴가를 갈 때 일정과 머무는 곳에서 숙식을 제공받는 노문, 정국현이 과거급제 후 예조에서 발급받은 호패(현재의 주민등록증과 유사)와 함께 그의 명함(정식명칭:화함)이 전시되고 있어 흥미롭다.
7. 이현세 <관직생활>
통훈대부 임명교지 56X54cm
양반이 과거에 합격하면 교지(敎旨)를 받아 능력과 적성에 맡는 부서에 배치되어 업무를 하였다. 당시 관리들의 직함과 직인, 주요한 사전에 대한 전후사정을 비망록의 형식으로 기록한 문서인 역천과 임금이 신하에게 관직을 비롯한 재물이나 특전을 내린 임명교지, 본래 국왕이 벼슬을 내릴 때 받는 사람의 이름 품계, 관직 등을 쓴 교지를 내렸는데 이름을 쓰지 않은 공명첩이 전시되고 있다. 이 외에도 동급의 관부 사이에 주고받거나 상급관청에서 하급관청에 보내는 문서인 관, 하급관청이나 그 관원이 상급관청에 올리는 문서인 첩정, 관에서 민간단체나 개인에게 발급하는 문서인 완문, 아들과 딸을 파는 내용이 적힌 노비문기 등이 전시되고 있다.
8. 이현세 <여가생활>
강세황 <송별시>
양반의 여가생활 부분에서는 신위의 묵매도와 조식의 편지와 강세황의 송별시, 승경도와 승경도 주사위, 전통과 활, 화살, 재떨이, 장죽 등을 진열하여 당시의 생활상을 파악할 수 있다.
9. 이현세 <상례>
수의 226X135cm 백립 25X11cm
사람의 평생 중 처음으로 시작되는 출생과 상반되는 죽음, 마지막으로 거치는 통과의례는 장례이다. 수의, 백립, 부고, 꼭두, 장례절차문서 등이 전시되어 장례문화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10. 이현세 <제례>
<감모여재도(感慕如在圖)> 70X95cm
조선시대를 대표하고 현재까지도 우리의 전통문화로 자리 잡은 제사문화, 즉 제례부분에서는 제사할 때 갖추는 제관과 제사상 제문 등을 전시한다. 특히 감모여재도(感慕如在圖)가 전시되어있는데 ‘감모여재’는 부모님이 살아계시듯이 지성으로 모한다‘는 뜻이다. 조선시대 양반들은 제사를 받들고 손님을 극진히 대접하는 것을 가장 기본적인 의무로 여겼고 직접 제사를 모시기 어려운 경우 외지에서고 ’감모여재도‘를 그린 족자에 위패나 지방을 걸어놓고 제사를 지냈다.
11. 이현세 <추모사업>
이황묘비,1577
마지막으로 전시는 이황묘비, 왕, 완비, 관리, 학자 등이 죽은 후 생전의 업적을 평가하여 붙이고 검증하는 시호서경단자 등을 진열하여 조선시대 양반들의 업적을 후세에 전하기 위한 문집간행과 묘비와 신도비 등을 세우는데 정성을 기울였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끝을 장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