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 임진년 특별기획전 '雲龍呈祥(운룡정상)' 장 소 : 공아트스페이스 2, 3F 기 간 : 2012.02.15 - 2012.03.04
시대가 바뀌면 말도 운명이 바뀐다. 왕희지가 남긴 편지글을 보면 대개 ‘희지 돈수(王羲之頓首)’로 시작된다. 만고의 서성에 도지사 겸 사령관 정도의 높은 벼슬에도 불구하고 그는 언제나 ‘저 희지가 머리 조아려 인사 올리옵니다’라는 말로 시작하곤 했다. 1천7백년전 그의 시대에는 ‘머리를 조아린다’는 돈수가 응당 편지글의 첫마디였다.
한국 미술에도 당연했던 말들이 사라진지 오래다. ‘안복(眼福)을 누린다’ ‘배관(拜觀)한다’는 등의 말도 그와 같은 운명을 뒤따르고 있는 말이다. 안복은 좋은 것을 보아 눈이 호강을 한다는 말이고 배관한다는 것은 보기 힘든 것을 보게 되어 황송한 나머지 절을 한 뒤에 본다는 뜻이다. 얼마나 기회가 적었으면 이리도 절절히 감사의 뜻을 늘어놓았을 꼬.
과거에는 민간에서 좋은 것을 볼 수 있는 기회란 정말 하늘의 별따기였다. 출판을 비롯해 복제 시스템이 발전, 변화해온 것을 조금만 생각해보면 더 이상 긴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그래서 모처럼 찾아온 기회에 황감해하며 진심에서 우러나 이런 말을 썼다고 본다.
청화백자 장생문 팔각접시(靑華白磁 長生文 八角楪匙) 보물 1063호 16세기 지름 13.6cm
미술관이나 박물관에를 진정 가야만 볼 수 있는 국가 지정의 보물, 명품을 시내 한복판에서 천연스럽게 볼 수 있다면 어떨까. 이 전시는 안복이나 배관이란 말에 어울리는 흔치 않는 기회이다.
청화백자 장생문 팔각접시(靑華白磁 長生文 八角楪匙) 뒷면
하나씩 보면, 청화백자 장생문 팔각접시(靑華白磁 長生文 八角楪匙)가 우선 있다. 이 접시에는 바깥쪽으로 풀을 뜯는 사슴에 소나무, 대나무 그리고 해오라기에 달까지 떠있는 모습이 마치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하다. 안쪽에는 또 매화 한 그루가 바닥 가득 그려져 있어 운치를 더해준다. 이 접시는 발라놓고 구으면 푸른색이 나는 코발트 안료-그래서 청화(靑華)라고 한다-로 그려져 있는데 16세기 때 만들어졌다. 이 당시의 도자기 중 청화가 들어간 것은 우스개 말로 ‘보고 죽을 래도 없을 만큼 귀한 것’이었다. 문양의 솜씨와 희귀성에서 바로 보물이다.
청화백자 매죽조문 병(靑華白磁 梅竹鳥文 甁) 보물 659호 15~16세기 높이 32.9cm
으레 술병이라고 생각하는 형태의 병이다. 중국에서는 이런 형태를 달리 옥호춘병(玉壺春甁)이라고 했는데 옥호춘이란 술을 담아 유명해졌다는 둥 그 유래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어쨌든 이 병 역시 희귀한 15-16세의 청화 기법인 것은 물론 그림 솜씨가 천하 일품이다. x자로 교차하면서 뻗은 늙은 매화나무 가지에 올라앉은 두 마리의 작은 새. 그리고 죽순에 어리게 보이지만 싱싱하고 씩씩한 대나무. 당시의 그림은 별로 남아 있지 않은데 이 병이 그 시절의 사라진 솜씨를 잘 짐작케 해준다.(누렇게 된 부분은 땅속에 있을 때 석회 성분이 병에 닿아 들러붙은 것으로 이를 억지로 떼내면 유약도 함께 떨어지게 돼 어쩔 수 없이 그대로 두고 있다)
청자 상감쌍룡문 도판(청자 상감상룡문 도판) 12-13세기 22.5x17cm
고려 시대의 용 문양은 아직 왕권의 상징보다는 불법의 수호자에 가까운 것이었다. 용이 새겨진 판형 청자의 용도에 대해서는 아직도 확실치 않아 그져 장식용으로 쓰였을 것이라는 정도이다. 용을 만들어 세워 뚜껑으로 쓴 향로는 대개 왕가 민가든 그리고 사찰이든 불교 의식과 관련되었을 것으로 여겨지는 청자다. 용 두 마리가 뒤엉키며 향 연기가 나오는 출구 역할을 하고 있는데 색은 약간 흐리지만 섬세한 조형이 발군이 아닐 수 없다. 자세히 보면 용의 이빨도 하나하나 날카롭기 그지없는 데 세월 탓인지 몇몇은 부러져 나갔다.
청자 쌍용형 삼족향로(靑磁 雙龍形 三足香爐) 12세기 높이 26.5cm
조선의 18세기는 경제적 발전 속에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매우 자신감이 넘쳤던 시대였다고 하는데 실제 남아있는 물건들도 그런 인상을 준다. 백자에 청화 안료(코발트)로 용을 그린 대형 항아리는 이 시대의 당당함을 상징하는 대표적 도자기라 할 수 있다. 아마도 다수 제작된 듯 상당수가 전한다. 하지만 같은 게 어디 있을 소냐. 나란히 놓고 다 알 수 있듯이 이 용 항아리도 프리미엄 리그에 속하는 특1급이다.
(더보기는 이쪽: http://www.koreanart21.com/common/sub02_10_view.php?idx=466)
청화백자 운룡문 항아리(靑華白磁 雲龍文 壺) 18세기 높이 55.5cm
이 용 항아리 뚜껑은 특이하게 뚜껑만 전하지만 깃털이라 할 수 있는 뚜껑에 그려진 용과 봉황의 솜씨나 코발트의 색이 이 정도라면 몸통이 얼마나 될지 짐작이 가지 않는 물건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18세기의 청화백자 용항아리 중에 뚜껑까지 일습으로 전하는 사례는 없다. 그래서 궁금증이 더 하는 물건이다. 용과 봉황 사이에 영지에, 구름들이 가득 찬 것으로 보아 몸통의 문양도 상당했을 것으로 상상이 되는데 이럴 경우 이 시대 여타 항아리에 보이는 여백적인 문양 배치와는 어떻게 다를지 자못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청화백자 용봉문 항아리뚜껑(靑華白磁 龍鳳文 蓋) 18세기 지름 17cm
심사정은 몰락한 문인집안 출신으로 평생 그림을 그린 것으로 전하고 이인문은 중인집안에서 태어나-참, 김홍도와 동갑이다-화원으로 지냈지만 기개가 높았고 실력도 뛰어난 화가로 손꼽힌다. 이 두 사람이 그린 용 그림은 흔히 돌아다니는 화조나 산수가 아니라는 점에서 안복을 누린다는 말을 들을만하다.(*)
심사정(沈師正) 운룡도(雲龍圖) 종이에 수묵담채 29.5x46cm
이인문(李寅文) 운룡도(雲龍圖) 종이에 수묵담채 30x37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