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 소호와 해강의 난죽 장 소 : 학고재갤러리 기 간 : 2012.01.11 ~ 2012.02.19
입춘 무렵 닥친 추운 날씨에 오히려 어울리는 듯 느껴지는 난과 죽. 산속에 홀로 피어 남이 알아봐 주지 않아도 향기로운 삶을 구하고, 혹은 바람에도 부러지지 않고 꼿꼿이 서서 푸른 잎으로 겨울을 나는 그 품성은, 어려운 시기를 겪어나가는 이들에게 또는 가져야 할 덕목을 지키려는 사람들에게 빛을 발한다. 조선의 끝자락과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두 서화가의 난죽전은 시대와 날씨와 잘 어울렸다.
소호 김응원(小湖 金應元 1855(철종 6)-1921)은 구한말과 일제시대에 왕성한 활동을 하였는데 특히 난에 있어서는 ‘소호란’이라 불리는 자기세계를 이룩한 것으로 이름 나 있다. 석파 이하응의 시동이었다는 일화가 있을 뿐 그 출신 배경은 전해지고 있지 않다.
당연히 석파의 난법을 계승한 난을 선보이며, 안정된 구도에 자신의 개성을 더한 수작이 많이 남아 있다. 갤러리에 걸린 소호의 작품은 총 20점으로 다양한 석란과 묵란 그림과 함께 개성 넘치는 글씨들을 볼 수 있다.
김응원 <묵란도> 19-20c 137.5×34.5 cm
김응원은 석파에게 들어온 그림 청탁을 대신해 그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로 유사한 화풍을 보인다. 대원군이 추사의 사의란을 계승했다면 소호에게서는 사의를 조금 덜 느끼게 된다고나 할까. 난엽의 필치가 추사보다 좀더 예리하고 단아한 대신 가볍다는 느낌을 주며, 먹의 농담 변화가 덜하여 속도감이 있고 평면적으로 보인다.
김응원 <애란도(崖蘭圖)> 19-20c 132×33.5cm
소호의 난에는 추사 김정희의 영향도 남아 있어, 운양 김윤식이 김응원에게 써 준 글에서 “완당 그림의 묘한 경지는 세상 사람들이 본뜨기 어려운데, 한 줄기 부드러운 난이 소호에 돋아났네”라고 하여 그것을 확인해주기도 했다 한다.
김응원 <묵란도> 19-20c 137.5×34.5cm 김응원 <석란도> 19-20c 132x38cm
김응원은 1911년 설립된 경성서화미술원과 그 후신인 조선서화미술회에서 묵란을 가르쳤고, 1918년 서화협회가 창립될 당시에는 조석진, 안중식 등과 함께 13인의 발기인으로도 참여하였다. 도한 오세창 등 당시 문화계를 대표하던 인사들과도 친분을 유지하며 함께 활동했다.
今人不見古時月 지금 사람 옛 달 모습 못 보았으나 今月曾經照古人 지금 달 옛 사람을 비추었으리 古人今人若流水 옛 사람 지금 사람 모두 흐르는 물과 같으나 共看明月皆如此 달을 보는 그 마음은 모두 같으리 唯願當歌對酒時 오직 바라는 것은 술 마시고 노래 부를 때에 月光長照金樽裏 달빛이 길이길이 금 술통 비추는 것이라네 -이태백李太白(701-762)의 시, “對酒問月” 中 | |
김응원 <칠언시> 1917 131×58cm |
또 한 사람, 글씨와 그림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해강(海岡) 김규진(金圭鎭, 1868~1933)의 작품도 십 여 점 선보여져 있다. 각 글씨체에 두루 통하고 또 『해강난죽보(海岡蘭竹譜)』를 펴낼 만큼 난죽에도 일가를 이루었기에 사찰의 많은 현판 글씨를 비롯 대폭의 묵죽병풍들을 꽤 남기고 있다. 금강산 바위에도 ‘미륵불’ 등의 커다란 글씨들을 남겨 유명하다.
一醉老翁淸興動 일취노옹청흥동 落筆縱橫飛龍鳳 낙필종횡비룡봉 都將妙意寫篔簹 도장묘의사운당 留与時人發吟咳 유여시인발음해 술 취한 노인 흥취가 일어 붓 휘두르자 용과 봉황 나는 듯 신묘한 뜻 감추어 대나무 그려 시인에게 주어서 감상케 하네 | |
김규진 <수죽도(脩竹圖)> 19c-20c 128 x 43 cm |
그의 <수죽도>는 옅은 먹으로 넓은 죽간을 그리고 가느다란 농묵으로 마디를 잇고, 죽엽들이 그것을 가로지르는 독특한 구도로 입체감 있게 처리하였다. 단아하고 안정되면서도 거칠고 힘있는 느낌이다.
김규진 <여우추성(如雨秋聲)> 19c-20c 135×33 cm
해강은 자유분방하고 다양한 형태의 대나무를 잘 그렸는데, 그 가운데에도 특히 굵은 통죽에 빼어났다. 그로 인해 근대화단에 통죽이 크게 유행했을 만큼 막강한 영향력이 있었다. 조선시대 묵죽과는 조금 다른 구성으로 유행을 이끌었던 것. 해강 또한 조선시대 묵죽 그림에서 느낄 수 있는 문자기보다는 형식적인 미를 추구하였음을 알 수 있다. 해강의 화풍은 젊은 시절 죽사라는 호를 사용할 만큼 대나무에 빼어났던 이응노에게 계승되어 현대화 되었다.
아담한 갤러리 공간에 소호의 난이 은은한 향을 뿜어내는 듯 하며 곳곳에 해강의 묵죽이 힘있게 뻗어 있고, 다양한 서예 작품들도 중간중간 선보이고 있어 균형있고 지루하지 않은 관람을 할 수 있게 배려하였다. 다소 손상되었으나 거대한 열폭 묵죽 병풍이 전시장 안쪽에 자리잡아 위용을 자랑하여 인상적.
김규진 김응원 <묵죽도> 19-20c 141.5×38.5cm
전시장에 들어서면 소호와 해강 두 사람이 한 폭에 그린 난죽도를 걸어 그 작품을 보며 관람을 시작하도록 하였으며, 그림 옆이나 아래에 캡션 없이 단정하게 거는 대신 모든 안내는 사전에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는 자료와 핸드아웃 종이 한 장으로 대체하였다. 도록을 제작하지 않아 아쉬웠으나 비용을 절감하면서도 관람에 불편함이 없도록 잘 안내되어 있어 부족함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