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시 명 : 다시 한 번만 그 시절로 - 서울반세기종합전3 [명동이야기] 장 소 : 서울역사박물관 기 간 : 2012. 01. 19 ~ 2012. 03. 31
이랏샤이마세~(いらっしゃいませ)
환잉꽝린! (欢迎光临)
“어서 오세요” 보다 일본어와 중국어를 더 많이 들을 수 있는 거리. 바로 2012년 명동거리의 풍경이다. 중국어와 일본어를 할 줄 아는 직원을 유치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샵들과 꾸러미를 들고는 환한 표정을 짓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어느새 명동의 절반이상을 차지 한 듯하다.
약 반세기 전 옛 명동의 풍경은 어땠을까?.. 서울역사박물관의 <명동이야기>展은 그 시절의 사진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기획되어 기성세대에게는 추억을 곱씹을 수 있도록 하며 신세대에게는 현재 명동거리와의 비교를 가능케 한다.
해방이후 화려했던 명동은 전쟁으로 인해 폐허로 변해버렸는데, 예술인들이 이곳의 다방에서 창작활동하며 명동은 서울의 대표적인 문화예술의 공간으로 자리매김 하였다.
명동백작이라 불린 이봉구는 명동의 대표인물로 신문기자 생활을 하며 예술인들과 교류하고 명동에 대한 자세한 기록을 소설로 남기기도 했다.
1956년 이름 봄 명동 한복판 빈대떡집 깨진 유리창 안에서 새로운 사랑의 노래가 흘러나오기 시작하였다. "자 다시 한번" 상고머리의 박인환이 작사하고, 이진섭이 작곡을 하고, 임만섭이 노래를 부르고 첫 발표회나 다름없이 모임이 동방싸롱 앞 빈대떡집에서 열리게 되었다. -이봉구-
박인환이 쓴 시에 이진섭이 곡을 붙인 <세월이가면>은 명동의 대표적인 노래로 '명동샹송' 이라고 불리기도 하였는데, 이 일화는 문화예술의 황금기 명동시절의 대표적인 일화로 회자되고 있다.
청동다방의 문학지 <청동문화>, 1957~1963년, 건국대박물관
청동다방을 오가던 문인 및 예술가들이 글과 그림을 남겼다.
그 당시의 다방은 퇴폐적인 이미지가 결합되어 있는 지금의 다방과는 달리 사교적 기능 외에도 문학의 밤 출판 강연회등 다양한 행사가 개최되었다. 다방마다 모이는 사람들의 성격이 달라 각 파를 형성하였는데, 대표적으로 동방문화회관, 문예싸롱, 갈채, 모나리자, 돌체, 포엠은 예술가들이 커피 한 잔하며 예술을 논했던 곳이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예술인들의 창작터였던 살롱을 재연해 놓아 그 당시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게 하였다.
명동 곳곳의 변화는 셀 수 없이 많은데, 현재 영플라자가 들어선 자리에 위치했던 명동공원은 그 당시 유일한 쉼터였다.
1950-60년대 잡지들
"최고급으로 주세요"
영화 자유부인 中 양품점에서 일하는 오선영과 손님의 대화
또한 명동 중국대사관 그처 달러 골목은 외국서적과 잡지들이 판매되는 공간이었으며, 양품점, 양복점, 양장점은 도합 50개소가 넘게 자리잡고 있었다.
서울의 히피문화를 대표했던 심지다방
얼마 전 세씨봉이 다시 주목받으면서 기성세대들에게 통기타 음악에 대한 아련한 추억을 불러 일으켰다. 1960년대 말부터는 명동의 재개발로 다방들이 사라지고 국립극장마저 남산으로 이전하면서 예술인들은 갈 곳을 잃었고 문화예술도 시들해지고 말았다. 대신 쎄시봉, 금수강산, 오비스캐빈 등을 추축으로 통기타 음악과 공연이 젊은이들에게 관심거리로 부상했으며 카페와 극장이 결합한 소극장들이 생기면서 실험적인 연극들이 탄생하였다.
또한 명동성당 주변으로는 민주화 열기로 가득찬 청년들의 투쟁이 일어났는데, 명동성당은 항쟁의 중심이자 운동의 성지로 학생운동, 노동운동, 빈민운동등 사회운동의 거점 구실을 했다.
활기를 띄었던 명동은 1980년대 후반부터 연극인들이 대학로로 이동하고, 1975년 대마초파동을 시작으로 음악다방과 비어홀들이 철퇴를 맞는 등 점차 활기를 잃어갔으며 디스코의 열풍으로 통기타 가수들 또한 설 자리를 점점 잃어갔다. 그리고 변화를 거쳐 패션과 유행의 공간이 되어버린 현재의 명동은 명동예술극장이 부활하고 삼일로 창고극장도 2011년 재개관하는등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일본인들로 넘쳐나던 이곳에 이제 다시 일본인 관광객이 몰리고 있고 외국어가 더 많이 들려오는 이곳 명동은 참으로 많이 변화되었다. 지나간 것에 대한 아련함은 언제나 그리움을 불러 일으키지만 우리만의 문화가 사라진 점은 크나큰 안타까움으로 남는다.
전시의 말미 "그때로 돌아가 살아봤으면 좋겠어. 먹고 사는 것 때문이 아니라 그때의 정이 그리워서.."라는 스크린 속 김시철 시인의 목소리는 그 시대를 겪은 이들에게도 생소한 이들에게도 오랫동안 아득하게 메아리 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