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시 명 : 근대 채색인물화(近代彩色人物畵) 장 소 : 인천시립박물관 기 간 : 2011. 11. 15~2012. 01. 29
한국의 근대기는 일제강점이라는 커다란 시련을 겪은 시기이다. 그 이면에는 일본의 영향 아래 서구문화를 수용하면서 근대화가 이루어진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한 시대배경 속에서 근대의 인물채색화는 새로운 표현기법과 시선, 그리고 그 당시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동안 근대인물 채색화는 일본화풍의 영향을 받았다는 이유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인천시립박물관에서는 전통 회화의 근대화를 주도하였던 중요한 의미마저도 상실된 채 비판의 대상이 되어온 근대인물채색화를 재조명하는 기회를 마련하였다.
전시는 2층의 기획전시실에서 이루어지고 있는데 박물관의 초입에서 부터 전시장까지 붙여져 있는 전시포스터와 현수막은 관람객들에게 홍보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 전시 규모는 크지 않지만 인천출신 화가인 이당 김은호를 비롯하여 채용신, 장우성, 이유태, 고희동, 최근배, 백윤문 등 근대를 대표하는 작가의 작품 17점이 전시되고 있어 근대 인물채색화의 특징을 간략하고 매우 적절히 소개하고 있다. 전시는 세 가지 주제로 구성되어 있는데 첫째는 새로운 사실성의 반영-초상화, 둘째는 그들의 눈에 비친 한국의 여인-미인화, 셋째는 일제 강점기 한국인의 일상-생활풍속화 이다.
채용신<노부인상> 1926년, 비단에 채색, 104×55, 서울대학교 박물관
초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가인 채용신의 작품은 전통적인 세밀한 표현기법과 동시에 사진술의 도입, 서양화법의 영향 등의 특징들로 단연 눈길을 사로잡는다. 특히 <노부인상>에서 보여지는 노인의 주름살과 의복의 세밀한 표현, 또한 마치 살아있는 듯 한 눈빛은 마치 ‘터럭 하나라도 다르면 그 사람이 아니다(一毫不似 便是他人)’라는 초상화에 담긴 그 전통적인 정신을 증명이라도 하듯 마치 터럭하나까지 살아 숨 쉬고 있는 듯 하다.
채용신<실명인의 영정> 1919년, 비단에 채색 고희동<인봉선사진영> 1938년, 비단에 채색,
,88×58, 고려대학교 박물관 113.5×52, 송광사 성보박물관
최초의 서양화가인 고희동의 <인봉선사진영>은 채용신의 초상화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전통기법으로 표현하긴 하였으나 서양화를 통해 배운 능숙한 표현으로 입체감을 살리고, 의복표현은 간략화 하였다.
장우성<부친장수영초상> 1935년, 장우성<자친영순태성선초상> 1935년,
비단에 채색, 107.5×72.5, 개인소장 비단에 채색, 78×55, 개인소장
한편 장우성의 작품 두 점은 근대기에 대부분의 초상화가 주문제작된 것과는 달리 작가 자신의 양친을 그린 보기 드문 초상화라는 점이 흥미롭다.
예나 지금이나 미인은 존재하고, 시대에 따라 미인상이 변화되어왔지만 변하지 않는 사실은 미인에게는 항상 눈길이 간다는 것이다. 근대기의 미인화는 신윤복의 전통적인 가채 미인상을 계승한(예:채용신의<팔도미인도>)작품도 존재하지만 전람회를 통해 쪽진 머리형으로 전형화 되는데 그 역할을 한 사람이 김은호이다.
김은호<등하미인> 1920년대,비단에 채색, 김은호<궁녀> 1938년작의 재제작,
117×41.5, 국립중앙박물관 비단에 채색, 179.5×86, 송암미술관
김은호의 <등하미인>은 대표적인 신일본화풍의 영향을 받은 미인화이다. 당시 일본에서는 인물을 그릴 때 함께 등나무를 자주 등장시켰다. 둥근 얼굴, 반달 같은 눈썹, 작고 긴 눈매, 앵두 같은 입술의 여인이 참빗으로 정결하게 빗어 쪽진 머리에 속살이 살포시 비치는 문양이 섬세한 얇은 한복을 입고, 하얀 새를 쥐고 바라보는 모습을 표현하였다. 품위 있는 모습의 여인을 동적인 포즈로 표현한 점이 특징적인 김은호의 <궁녀>의 모델이 자신의 부인이었다는 점 역시 재미있는 부분이다.
장우성<여인> 1936년, 비단에 채색, 75×41, 이천시립월전미술관
장우성의 <여인>은 김은호 화풍의 영향을 받아 쪽진 머리, 둥근얼굴, 반달 눈썹, 앵두 같은 입술 등이 공통적인 반면, 한손으로 치맛자락을 쥐고 수줍은 듯 상체를 살짝 돌리고 시선은 아래쪽을 바라보는 여인의 상반신만을 확대하여 표현한 점은 장우성만의 새로운 표현기법으로 차이점을 보여준다.
전시장의 가장 중간에 위치한 커다란 세 점의 작품은 마치 연극이나 영화와 유사하게 삼부작으로 이루어진 이유태의 <여인삼부작-智.智.情>이다.
이유태<여인삼부작-智.智.情> 1943년, 종이에 수묵담채, 198×142, 삼성미술관 리움
이 작품 역시 일본화풍의 영향을 받아 한국 여인의 인생을 세 가지 주제로 나누어 혼인을 중심으로 처녀의 모습(智), 신부의 모습(智), 어머니의 모습(情)으로 표현하였다. 지(智)에서 보여지는 화려한 흰색의 모란꽃은 처녀의 순결함을, 감(智)은 중앙에 위치하여 여성의 혼인의 중요성을, 정(情)은 아들을 안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이다. 이러한 모자상은 1930년대 후반 유행하던 도상으로 전쟁을 나간 남성을 대신하여 여성의 역할이 국가와 전쟁수행을 위한 2세의 양육임을 강조한 일제의 정책을 반영하고 있다.
이유태<탐구> 1944년, 종이에 채색, 212×153, 국립현대미술관
이 시대에 과연 이렇게 세련된 여성이 실제로 존재했을까? 가정과 육아에만 전념을 하던 전통적인 여성의 역할은 근대기에 이미 사라지고 있었다. 이유태의 또 다른 작품인 <탐구>에서는 과학실에서 연구를 하며 사회에 참여하는 신여성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여성은 실험실에서 흰 가운에 서양식 슬리퍼를 신고, 요즘 흔히 말하는 ‘차도녀’ 같은 세련된 짧은 헤어스타일과 당당하게 다리를 꼬고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매화, 엄동설한 속에서 은은한 향기로 가장먼저 봄을 알리는 꽃!
최근배<암향> 1942년, 종이에 채색,170×167, 맥향화랑
최근배의 <암향>은 맹인인 노인이 퉁소를 불고 한쪽에서는 한 소년이 그 소리를 들으며 갓 피어나고 있는 매화꽃을 바라보고 있다. 작가는 매화를 통해 곧 해방이 될 조선의 희망적인 미래를 꿈꾸고 있다.
이번 전시는 당시 일제강점기의 영향으로 인한 우리 민족의 시련과 고통 속에서도 꾸준히 노력했던 당시 화가들의 노력과 연구를 통해 얻어진 소중한 작품들을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다. 또한 단지 일본화풍의 영향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만했던 근대채색인물화에 대해서 다시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매우 뜻 깊다고 할 수 있다.
*전시정보
-사진촬영 금지
-전시의 중간중간 설명이 필요한 부분에서는 도슨트의 친절한 설명과
벽면에 설치된 자료들을 통해 궁금한 점을 해결 할 수 있음.
-관람객을 위한 체험공간
:터치스크린을 통해 '디지털 인물화'라는 공간을 마련하여 자신이 직접 표현해 보고,
'포토존'에서 작품의 주인공이 되어보는 기회
-체험활동지를 통한 전시 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