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시 명 :일본 비와호 지역의 불교미술 장 소 :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 기 간 : 2011.12.20 -2012.2.19
무명보다는 차라리 악명이 낫다는 시절이다. 그래서 개성이 인격보다 한 수 위처럼 여겨지기도 하는 시대이다. 어째든 누구든 ‘남’다른 나를 가꾸는데 결코 인색할 수 없게 됐다. 여성들의 라다 백, 메스 가방 붐에 이런 이유일까. 그런데 가방도 백도 흔해져버려 곤란하게 됐다. 센스 있고 앞서 가는 여성이라면 좀 더 소프트하고 멘탈한 쪽으로 갈 수밖에 없다.
*머리에서 발끝대좌까지 나무 하나로 새긴 보살상으로 나말여초에 해당하는 10세기 작품이다.
/성관음보살입상(聖觀音菩薩立像) 높이 157.5cm 조넨지(乘念寺)소장
일본에서는 이미 그와 같은 현상이 등장했다. 16세기 일본 센고쿠(戰國)시대를 주름잡던 무장(武將)들에 젊은 여성들이 매료되면서 센고쿠 걸이라는 매니어들이 나왔다. 그런데 2,3년 전부터는 20대, 30대 여성들이 사이에 호도케사마, 즉 불상(佛像) 붐이 일고 있다. 이른바 불상 걸들인데 이들은 사찰 방문에 사이트 운영은 물론 불상 공부도 열심이다. 그래서『불상 보는법』『불상의 비밀』『대불을 찾아서』같은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불상관련 묵은 책도 새로 스테디셀러 대열에 들어서고 있다고 한다
/밀교관음의 하나인 십일면관음입상(十一面觀音立像) 높이105.2cm 11세기 조후쿠지(長福寺) 젊은 여성들이 불상을 찾아가는 이유에 대해 일본 내에서 해석이 여럿이다. 그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삶, 생활에 대한 위로이다. 종교 본래의 뜻이 해탈, 초월이라고 하지만 실의에 빠진, 힘든, 고통스러운 사람들에게 우선 급한 것이 당장의 위로이고 보면 일본의 젊은 여성들이 찾아도 제대로 찾은 것 같다.
*교토와 시가현 사이의 히에이잔(比叡山)은 전교대사 사이초(最澄)대사가 주석한 일본 밀교의 본산 엔랴쿠샤(延曆歷寺)로 유명하다. 인근에는 그영향을 많이 받았다.
/귀자모상(鬼子母像) 높이 43.9cm 가마쿠라시대 오놎지(園成寺) 하나(はな)’라는 예명을 사용하는 미모의 30대 후반의 여성 모델은 꼭 불상 붐에 편승한 것은 아니지만(그녀는 불교미술을 전공했다) 베스트셀러 출판사로 유명한 겐도샤(幻冬舍)에서 『작은 불상 큰 불상(ちいさいぶつぞう おおきいぶつぞう)』이란 책을 내 상당히 인기를 끌었다. 여기서 그녀는 교토와 나라의 유명한 절 20곳을 다니면서 그곳들의 대표적 불상을 보고서 자신이 느낀 점 그리고 보러올 사람을 위한 어드바이스 등등을 적어 놓았다. 이게 흥미로웠던지 어느 신문사에서 ‘불상을 보려면 어떻게 보는게 좋은가요’라고 물어왔다.(아사히 신문 2011년10월30일자)
*일본 불교는 밀교 영향으로 다양한 신상이 신앙된 것도 한 특징. 귀자모신은 원래 아이 잡아먹는 신이었으나 그를 깨우치기 위해 자기애를 잡아먹게 하자 이후 불법의 수호신이 되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죽은 뒤에 가고자 하는 서방정토를 주재하는 부처님이 아미타여래이다. 고려시대의 불상과의 비교가 가능한 일본 불상이다.
/아미타여래좌상(阿彌陀如來坐像) 가마쿠라시대 높이 85.5cm 쇼오지(聖應寺)
그녀는 몇 가지로 요점을 정리해서 말해주었는데 첫 번째는 우선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바라볼 것, 둘째는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각도를 찾아볼 것, 셋째는 자기 눈에 딱 맞는 장소를 모색할 것, 넷째는 같은 곳을 반복해서 찾아갈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스님에게 이런저런 것을 물어보아볼 것이라고 했다.
*귀족불교가 서민불교로 내려온 데는 염불 만해도 극락왕생한다는 구야 상인의 생각이 퍼지면서부터이다. 염불 ‘나무아미타불‘은 아미타부처님게 귀의하겠다는 뜻.
/구야상인상(空也上人像) 높이 84.0cm 14세기 쇼곤지(莊嚴寺)
이번 전시는 간단히 볼 수 있는 전시가 아니다. 비록 일본 중부의 한 지방 것이기는 하지만 불상만 봐도 7세기에서 14세기까지 700년에 걸친 시기를 13구의 불상으로 소화하려고 하고 있다. 이런 샘플 수를 놓고 일본 불상의 흐름을, 나아가 오미(近江) 지방의 특징을 설명하고 이해하고자 한다면 불가능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사정이 그렇고 보니 ‘하나’씨의 어드바이스대로,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하나씨의 원문에 그렇게 되어있다) 바라보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다.
/천수관음이십팔부중(千手觀音二十八部衆) 112.7x58.6cm 13-14세기 다이세이지(大淸寺)
그런데 조금 다른 각도가 있기는 하다. 서양에서도 회화는 조각보다 설명적이라는 이유로 글자를 모르는 신자들에게 그리스도의 행적이나 기독교의 교의를 설명해주는 도구로 흔히 사용됐다. 불화도 마찬가지이다. 왕족, 귀족이 자신들의 극락 왕생을 위해 사경도 제작하고 불화도 그리게 했지만 일부에서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알기 쉽게 전파하고 설명하기 위해 그림을 사용했다.
*무시무시한 육도윤회 사상을 알기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는 당시 생활 모습 그대로를 사례로 들어 어떤 의미에서는 시대의 풍속상을 말해준다.
/육도회 중 아수라도(阿修羅圖, 왼쪽)와 인생사고도(人生四苦圖),
13세기 각각 155.5x68.0cm 쇼주라이코지(聖衆來迎寺) - 전시는 아수라도만
여기에 딱 적합한 것이 육도회(六道繪)이다. 불교에서는 해탈하지 못한 중생은 죽었다 살아나는 윤회(輪回)를 거듭하는데 이때 죄의 값에 따라 6가지 세계를 경험한다는 것이다. 하늘나라에 태어나 사는 천인(天人)에서 보통의 인간 세계 그리고 평생 피투성이가 돼 싸움이나 하는 아수라(阿修羅) 세상에, 그 이하는 축생(畜生), 아귀(餓鬼), 지옥(地獄)의 세계가 있다.
*염라대왕 앞에서의 재판 모습은 우리나 일본이나 모두 중국 송나라 관료들의 복식인 것이 특징이다. 끌려와 업경대에 죄를 비추는 모습등은 거의 같다.
/육도회 에도시대모본, 염라왕청도(閻羅王廳圖) 163.0x70.0cm 쇼주라이코지(聖衆來迎寺)
과거 일본의 중세 때. 절의 스님이 무지몽매한 신자 앞에서 착한 일을 하라고 이르면서 ‘만일 그렇지 않다면’ 하고 꺼내 보였던 게 이 육도회이다. 불교의 나라 고려에서도 응당 그려졌을 법한데 국내에는 현재 전하는 것이 없다. 이번 전시에는 고려에 해당하는 일본 가마쿠라 시대에 그려진 원본 한 점에 에도 시대의 사본 6점이 소개됐다. 육도 가운데 아수라 이하의 참상을 보고 있노라면 ‘착하게 산다’는 게 여간 절절해 보이지 않는다.
*육도윤회에서 인간세상은 오계를 지킨 사람이 태어나지만 그래도 죽은 시신은 썩고마니 집착하지 말라 가르친다. 아리따운 여성의 사후 모습이야말로 리얼한 교훈이 아닌가.
육도회 에도시대모본, 인도부정상(人道不淨像).
사람 모습 옆의 작은 종이조각은 순서대로 죽어서 부패하고 뜯어먹히고 뼈가 되고 재가 된다는 말이 적혀있다.
한 마디. 비와코 주변의 중심도시 오미(近江)은 에도시대 이전에는 오지에 가까웠다. 역사의 무대는 교토에서 남서쪽으로 펼쳐진 나라와 오사카였다. 수도 교토와 오미 사이에는 라쇼몽(羅生門)에 나올 듯한 울창하고 깊은 산길이 있는데 그 고개는 과거에는 소금에 절인 고등어(시오사바)나 팔러 다니는 장사꾼 정도나 지나갔다.
굳이 우리로 치자면, 북한산 뒤편에서 있으면서 한양에 땔나무나 제공해주던 양주쯤에 해당하는 곳이 시가현(滋賀県) 오미(近江)이다. 그런 곳의 불교 미술을 굳이 소개할 이유가 이즈음에 어떤 타당성과 절박함이 있는지 전혀 짐작이 가지 않는다. 지난해 고려불화전을 제외한다면, 근 십년 넘게 한국의 불교미술, 불상을 소개한 전시가 열렸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관람료 : 무료
사진촬영 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