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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을은 아쉽게 지나간다-<풍속인물화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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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명 : 간송미술관 가을정기전 풍속인물화대전 장 소 : 간송미술관 기 간 : 2011. 10. 16 ~ 10. 30

 

아침 일찍부터 전시장을 채우고 유리장 안으로 시선을 집중하는 사람들을 비비고 서서 작품을 본다고 명품의 감동이 덜한 것은 아니다. 인물초상화와 풍속화, 고사도를 아울러 조선시대 전반에 걸쳐 ‘사람들’을 그린 그림의 변천과정을 짚은 간송미술관 가을정기전 「풍속인물화대전」에서는, 이상좌, 안견, 이징, 김명국, 윤두서, 정선, 심사정, 강세황, 김홍도, 김득신, 신윤복, 장승업에서 안중식, 고희동, 김은호로 이어지는 화풍을 모두 감상해 볼 수 있다.

 
기마감흥(騎馬酣興: 말 타고 거나한 흥취)
윤두서(1668-1715), 견본수묵, 47.3×56.5cm

공재 윤두서의 <기마감흥>은 언덕을 달려 내려가는 말탄 인물, 바람에 흩날리는 나무 등 화면 전체에 역동적인 기운이 가득찬 작품이다. 인물의 표정과 묘사에서 실감나고 정교한 표현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중국에서 들어온 삽화나 고사의 한 방면을 재구성한 것으로 여겨진다. 뭔가 균형이 흔들린 듯한 구도조차 매력이다.

 
어초문답(漁樵問答: 낚시꾼과 나무꾼이 묻고 대답하다)
이명욱(1640경-?), 지본담채, 94.0×173cm

 
어초문답(漁樵問答: 낚시꾼과 나무꾼이 묻고 대답하다)
정선(1676-1759), 견본채색, 33.0×23.5cm

전시된 <어초문답>은 겸재 정선, 이명욱, 홍득구(洪得龜, 1653-?)의 것 세 점이다. 어초문답은 북송의 유학자 소옹이 지은 『어초문대』에서 어부와 초부가 서로 문답을 하며 천지 사물의 의리(義理)를 천명한 것을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다. 이명욱과 홍득구의 어초문답은 크기는 다르지만 구도나 모양새가 유사한데, 겸재의 어초문답은 서로 본격적으로 수준높은 대화가 오가는 듯한 모습으로 그들과 다르다. 겸재 자신이 성리학적 교양을 완비한 사대부였으므로 이를 잘 표현하고자 했음은 당연할 것이다.


야주취월(夜舟醉月: 밤 배에서 달빛에 취하다)
김희겸(金喜謙, ?-? 조선후기), 지본수묵, 18.4×25.8cm

세상사가 뜬구름이니 한가로이 누워 술과 저 달빛에 취하는 흥취를 즐기겠다는 유유자적하는 은자의 모습이다. 당나라 왕유의 시 한 구절을 딴 백문방형 인장 “고와차가찬(高臥且加餐)”을 찍어 그 뜻이 더 확실하게 나타났다.

 
어옹취수(漁翁醉睡: 어부가 취해 잠들다)
김득신(金得臣, 1754-1822), 지본담채, 26.6×22.4cm

두 어부가 달밤에 고기를 잡다 술에 취해 쉬는 모습이다. 이들은 앞의 은자가 달에 취한 것과는 달리 달은 보지 않고 있다. 옷을 풀어헤친 것도, 달밤에 배타고 술을 즐긴 것도 같은데 삶의 고단함이 더 묻어나는 듯하다고 느낀다면 오버일지.

 
조산루상월(艁山樓觴月: 조산루에서 달과 마시다)
유숙(劉淑, 1827∼1873), 지본수묵, 184.5×52.5cm

또다른 달밤의 정취. 화제를 보면 이상적 선생 사후 그의 거처였던 조산루에 그와 교유했던 문인들이 모여 술을 마시며 시를 짓고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화원 유숙이 그린 것으로 되어 있다. 모임은 실제 있던 것이었겠지만 의상이나 시동의 모습을 보면 중국 그림의 특징이 보인다.

 
협롱채춘(挾籠採春: 나물 바구니를 끼고 봄을 캐다)
윤용(尹熔, 1708-1740), 지본담채, 21.2×27.6cm

윤두서의 손자인 윤용이 촌가 아낙네가 봄을 맞아 나물을 캐러 가는 모습을 화폭에 담은 것으로, 배경 없이 담채로 소박하게 표현된 작품이지만 뒤를 돌아보는 촌부의 모습이 수많은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누군가 아직 따라오지 못한 이를 기다리는 것일까. 걷어올린 치마 아래로는 단단한 종아리가 보이고, 손에 작은 낫(? 호미?)을 움켜쥐고 금방이라도 다시 웅크리고 나물거리를 찾아 땅을 쑤석거릴 것 같다. 한 순간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포착하여 많은 심상을 떠올리게 하는 드문 작품이다.

 
월하정인(月下情人: 달빛 아래 정든 사람들)
신윤복(申潤福, 1758-?), 지본담채, 35.6×28.2cm

혜원의 풍속도는 2층 전시실의 하이라이트. 올해 여름 이 그림 속의 달의 모습을 보고 두 연인의 데이트 시점에 대한 천문학자의 가설이 제기되면서 주목되기도 했었다(1793년 8월 21일 밤 11시 50분의 달 모습을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으로 확인하면 월하정인에서의 특이한 달 모습과 유사하긴 하다). 혜원이 그림에서 달을 표현할 때 시각이나 환경을 염두에 두고 그렸는지는 알 수 없는 것이나, 화제에 “달빛이 침침한 한밤중에, 두 사람의 마음은 두 사람만이 안다”고 되어 있으니, 두 사람에게는 월식이든 뭐든 상관없었으리라는 생각도 든다.

 
마상청앵(馬上聽鶯: 말 위에서 꾀꼬리 소리를 듣다)
김홍도(金弘道, 1745-?), 지본담채, 52.0×117.2cm

강세황의 노인관수, 김홍도의 월하취생, 신윤복의 미인도나 연소답청, 김득신의 야묘도추 등 여기서 미처 언급하지 못한 걸작들도 많으나, 마상청앵만큼은 짚고 넘어가야 할 듯하다. 진경풍속화풍의 대미를 장식하는 이 대표작의 실물은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었다. 늦은 봄 젊은 선비가 말을 타고 길을 가다 길가 버드나무 위의 한 쌍의 꾀꼬리에게 정신을 빼앗긴 장면은 대담한 구도, 필선, 농담의 대조 등의 표현에서 뿐 아니라 그 회화적이면서도 음악적인 정취로 가득하다. 화제는 이인문의 제화시로 “아리따운 사람이 꽃 밑에서 천 가지 소리로 생황을 부는 듯하고, 시인의 술동이 앞에 황금귤 한 쌍이 놓인 듯하다. 어지러운 금북(베짜는 도구)이 버드나무 언덕 누비니, 아지랑이 비섞어 봄강을 짜낸다”고 되어 있다.

시대와 작품의 폭이 넓고 좋은 작품도 많다보니 각양각색의 감상 방식이 가능하리라. 굳이 엿듣고자 한 건 아니지만, “와~ 이거 책에서 본 그림이다!” “신기해, 낙관이 호리병 모양이야~ㅋㅋ” “옷 색깔 이쁘다”와 같은 순수한 감탄을 들을 수 있었다. 또, 진경 이전과 이후, 사의성을 들먹이며 같이 온 친구에게 열심히 설명하는 사람, 꽤 오랜 시간의 감상노트인 듯한 두꺼운 수첩에 그림을 그려가며 한 그림 앞을 떠날 줄 모르던 중년의 여성, 미인도 뒤의 전시실 창밖으로 보이는 파초에도 관심을 기울이던 간송정기전의 단골관람객 등등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슬며시 관찰해 보는 것도 흥미로웠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도 몇 번씩 전시장을 찾는 사람들이 이렇듯 많으니, 우리 미술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너무 적은 거 아닌가하는 걱정은 당분간은 떠오르지 않을 것 같다.


* 화제 및 그림 제목 해설은 도록을 참고하였습니다.

글/사진 스마트K
업데이트 2024.11.23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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