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시 명 : 천년의 지혜 천년의 그릇 장 소 : 불교중앙박물관 기 간 : 2011. 09. 21 ~ 12. 11
전 시 명 : 천년의 지혜 천년의 그릇
장 소 : 불교중앙박물관
기 간 : 2011. 09. 21 ~ 12. 11
인사동길을 가로지르는 아침 공기에서 계절의 변화가 느껴진다. 돌고 도는 계절의 변화는 익숙한 것이어서 새롭다기보단 오히려 반갑다. 조계사 입구로 들어서는 순간, 도심의 번잡함을 뒤로하고 은은한 목탁 소리와 함께 왠지 모를 평안한 사람들의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종교란 그저 이렇게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한없는 편안함을 느끼게 하는 것, 교리를 떠나 마냥 몸과 마음으로 느끼는 이것 자체가 아닐까.
패엽경은 필사용의 나뭇잎으로 만든 경전을 통칭하는 말로, 인도에서는 종이의 사용 이전에 나뭇잎에 필사하여 경전을 만들었다고 한다.
패엽경
현재까지도 일부에서는 경전의 재료로 사용되는 패엽의 가장 좋은 재료는 다라(多羅)나무의 잎이다. 잎을 말려 너비 5cm, 길이 약 1-2자로 자른 다음 칼이나 송곳으로 자획을 만들고 먹을 넣는다.
현전하는 최초의 대장경은 983년 북송(北宋)에서 만들어진 개보대장경(開寶大藏經)이다. 이후 현종 2년(1011)부터 판각되기 시작한 대장경이 세상에서 두 번째로 제작된 고려 초조대장경(初雕大藏經)이다. 그러나 초조대장경은 고종 19년(1232)에 몽고의 침입을 받아 경판이 모두 불에 타 없어지게 된다. 현재 경판을 종이로 인출한 초조대장경들이 국내외에 남아있다.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13, 고려11세기
고려 현종 때 만든 초조대장경 가운데 하나로, 당나라의 실차난타(實叉難陀)가 번역한 『화엄경』 주본 80권의 권13이다. 짙은 쪽빛의 표지가 일부 남아 있으며, 인쇄 상태나 종이의 질이 뛰어나다.
개보장 불본행집경 권19
현재 개보대장경의 목판은 남아 있지 않으며, 중국 일본 미국 등에 16점 가량의 경전이 남아 있다.
대장경은 부처님의 말씀을 모은 경전의 내용을 담은 것이기에 그 자체만으로 의미가 크지만, 거대한 규모의 대장경을 만든 수 천명의 사람들과 오랜 제작 시간, 그리고 이를 사용한 사람들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묻어 있기에 더욱 그 가치가 깊다 하겠다. 또한 경전의 내용은 초월적인 것이지만 이를 새기고 읽은 이들은 바로 사람들 이기에 대장경의 곳곳에는‘인간적인’ 흔적이 남아 있다. 대장경을 ‘새긴 사람’을 각수(刻手)라 하는데, 이 각수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경우가 발견되고 있으며 잘못 새겨진 부분의 글자를 별도로 새겨 끼워 넣은 보각(補刻)의 흔적도 보인다. 그리고 원문 옆에 점, 선, 글자로 부호를 표시하여 문자의 의미나 문법적 관계를 알려주는 각필(角筆)도 있다.
초조본 본사경 권7, 고려12세기
삼장법사(三藏法師) 현장(玄奘)이 번역한 최초의 경전이다. 21장의 종이 하단에는 이실(里實)이라는각수명이 남아있다.
초조본 아귀보응경, 고려12세기
아귀가 고통받는 이유는 전생의 잘못으로 인하여 인과응보를 받고 있는 것이라 설하는 내용의 경전이다. 이 경전의 1장 20행에 본문 내용이 잘못 판각된 것을 수정한 보각(補刻)이 나타나 있다.
재조대장경은 초조대장경이 소실된 후 두 번째로 만들어진 대장경으로, 우리가 흔히 대장경 하면 떠올리는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을 말한다. 판수가 8만여 장에 달하고 8만 4천 번뇌에 해당하는 8만 4천 법문을 실었다 하여 팔만대장경이라 부르기도 하고 고려시대에 간행되었다 하여 고려대장경이라고도 한다. 재조대장경은 수천만 자의 고르고 정밀한 글자와 함께 현존 대장경 중 가장 오랜 역사와 내용의 완벽함을 지니고 있어 그 보존가치가 매우 크다.
대장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원목을 바닷물에 삼 년 동안 담가 두었다가 꺼낸 후 소금물에 삶아 그늘에 말린 뒤 대패질 하여 경전을 새기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대장경 제작은 국가적인 목표였으며 더불어 흐트러진 민심을 수습하고 불력을 통해 국난을 극복하려 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동국이상국집)』에는 대장경 간행을 통해 몽고군을 물리치고자 했던 내용이 실려 있어 재조 대장경의 제작배경을 살펴볼 수 있다.
동국이상국집 권25
“그들은 경유하는 곳마다 불상과 범서를 마구 불태워버렸습니다. 이에 부인사에 소장된 대장경 판본도 또한 남김없이 타버렸습니다. 아, 여러 해를 걸쳐서 이룬 공적이 하루아침에 재가 되어버렸으니…스러지면 다시 만드는 일은 또한 반드시 해야 할 일입니다. 어찌 감히 일이 크고 힘든 것을 염려하여 다시 만드는 일을 꺼려하겠습니까?”
또한 경전을 몸에 지니고 다닐 수 있도록 경함이나 경갑 등을 만들어 사용하기도 했다. 요즘 흔히들 사용하는 핸드폰보다도 훨씬 작은 사이즈의 경갑들을 바라보면서 이것을 몸에 소중히 지니고 수시로 꺼내 보며 그 말씀을 새기고 염원했을 옛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금동연지동자문경갑, 고려12세기
상부 모서리를 통해 뚜껑을 여닫을 수 있도록 만든 휴대용 불경상자. 앞뒷면에는 연못 안에서 연꽃 줄기를 잡고 있는 동자상과 물새가 장식되어있다.
은제경갑
사각형의 경갑으로 호부용 다라니를 넣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경갑 측면에는 무언가를 부착했던 흔적이 남아 있어 고리와 같은 것을 붙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나전경함, 조선
경전을 넣어 보관하는 용도로 제작된 경함으로, 이 경함의 경우 새와 매화가 같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조선 후기의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국신조대장교정별록 권1 목판
고려대장경을 재조할 때 감수를 맡았던 개태사(開泰寺) 승통(僧統) 수기(守其) 등이 대장경에 대한 교정의 내용을 기록한 것이다.
우리는 흔히 그릇 보다는 그 그릇에 담긴 내용물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부처님의 열반(涅槃) 이후부터 현재까지 전해지는 모든 불교 문헌들을 모은 대장경은 부처님의 말씀을 담은 그릇이다. 내용물의 가치에 버금가는 그릇, 바로 대장경을 두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나라의 안녕을 위한 기원, 신앙에 대한 숭고한 믿음, 만든 이들과 읽는 이들의 흔적과 함께 천 년의 시간을 담은 대장경 그릇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