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 웃대중인傳 장 소 : 서울역사박물관 기 간 : 2011. 7. 26 - 9. 18
전시명 : 웃대중인傳
장 소 : 서울역사박물관
기 간 : 2011. 7. 26 - 9. 18
서울역사박물관에서 개최되고 있는 <웃대중인傳>은 웃대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중인(中人)들의 향유와 문화를 보여주는 전시이다. 처음 전시 명을 들었을 때 ‘웃대’라는 말이 생소하게 다가오는데, 포털사이트에 ‘웃대’ 라고 검색해보아도 전시에서 말하는 ‘웃대’에 대해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웃대는 예부터 청계천 윗 지역, 보통 경복궁 서쪽으로부터 인왕산 기슭에 이르는 지역을 이르는 명칭인데, 현재는 서촌(청운동, 신교동, 옥인동, 통인동, 누상동, 누하동, 체부동, 필운동)이라고 불리는 지역을 말한다.
도성대지도 , 18세기 중반 도성대지도 中 웃대지역
정선, <옥동척강>, 1739년, 리움
청풍계와 옥동의 지형관계를 알 수 있는 그림으로 조현명을 비롯한 문인들이
이춘제의 후원인 서원에서 모임을 가진 뒤 옥류동에서 청풍계로 넘어가는 장면을 그린 작품이다.
중인은 양반과 평민의 중간에 위치하는 계층으로 서당훈당, 하급관리인 경아전, 역관, 의관, 화원 등이 중인에 속했다. 이들은 어느 정도의 교양을 갖추고 있었으며, 경제적인 부를 갖추고 있었다. 또한 예술과 문학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는데, 조선후기에 들어서는 당대의 문화를 대표하는 주요 계층으로 성장하기도 했다. 이들의 문화적 역량은 시를 짓고 즐기기 위한 시사(詩社)를 통해 표출되었는데, 1786년 규장각 서리를 중심으로 결성된 옥계시사(玉溪詩社)는 시사의 절정을 보여준다. 이 시사는 송석원시사(松石園詩社)라고도 하며 30년에 걸쳐 지속되어 중인문화에 큰 영향을 끼쳤는데, 이후 웃대에서 활동한 서원시사(西園詩社), 비연시사(斐然詩社), 직하시사(稷下詩社). 칠송정시사(七松亭詩社)등으로 계승되었다.
옥계십이승첩, 삼성출판박물관
옥계십이승첩 中 <등고상화登高賞花> 옥계십이승첩 中 <설리대적雪裏對炙>
옥계십이승첩 中 <가교보월街橋步月> 옥계십이승첩 中 <산사유약山寺幽約>
장지완, 비연상초(斐然箱抄)
비연시사 동인들 중 가장 활동이 활발했던 사람은 장지완이었는데,
비연시사라는 명칭도 그의 호인 '비연'에서 비롯되었다.
한편, 중인들은 자신들의 이야기가 사라지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전기집을 간행하여 후세에 전하고자 했는데, 선대 중인들이 쓴 시가 잊혀지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공동시집인 『소대풍요昭代風謠(1737)』를 간행하기도 했다. 이후에는『풍요속선風謠續選(1797년)』과 풍요삼선風謠三選(1857년)』등이 간행되면서 중인 문학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
소대풍요昭代風謠
풍요속선風謠續選
풍요삼선風謠三選
사명자시집(四名子詩集)
촤촤일은 선조대 이름난 문인이었던 차천로의 6대손으로 서얼출신으로 추청된다.
옥계시사 동인으로 활동하며 많은 시를 남겼고, 후손들에 의해 사명자시집으로 묶어졌다.
중인들은 자신들을 신분적 제도적으로 얽매이는 구체제에 반발하여 신분향상 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통청운동이다. 중인은 관직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청직(淸職)에 오를 수 없었는데, 이에 불만을 품은 서얼계층에서 통청운동이 시작되었다. 통청운동은 1724년 영조 즉위 후 시작된 후 18세기에 지속적으로 전개되었고 서얼출신인 이덕무, 유득공, 박제가 등이 규장각 검서관에 등용되었다. 그러나 통청운동은 계속되었고 1851년 “서류의 허통을 명하노니 모든 사환에 있어서 각별히 수용하라” 는조처가 내려졌다. 이처럼 중인들은 자신들의 신분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
상원과방(象院科榜)
기줄직 중인들의 통청운동 자료가 실려있다.
전시의 말미에는 오늘날의 웃대를 살펴볼 수 있는데, 중인들이 활발히 활동했던 웃대는 도로 정비로 인해 사직로 북쪽 지역으로 한정된 모습을 보이며, 백운동천과 옥류동천의 물길은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도 뒤덮여 옛 지형에서 변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로써 옛 웃대의 지형은 변화되어 볼 수 없는데, 다만 이 전시를 통해 웃대의 옛 경관과 웃대에서 활동했던 중인들의 활약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 전시는 양반의 업적에만 초첨을 맞췄던 시각에서 탈피하여 조선후기에 활발한 활동을 한 중인에 대해 다시한 번 생각해볼수 있는 시사점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된다. 다만 이 전시에서 중요시되는 옥계시사, 즉 송석원시사 장면을 그린 여러화가의 작품을 볼 수 없었다는 점에서는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중인에 초점을 맞춘 전시, 웃대라는 명칭을 알게 해준다는 점에서 그 타이틀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롭고 의미있는 전시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