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 한양의 진주류씨」展 기 간 : 2011년 7월 8일 - 2011년 8월 14일 장 소 : 서울역사박물관 기획전시실
전시명 : 한양의 진주류씨」展
기 간 : 2011년 7월 8일 - 2011년 8월 14일
장 소 : 서울역사박물관 기획전시실
1506년 9월 1일 저녁에 일어난 반정(反正)은 하루아침에 조선의 군주를 바꾸어 놓은 사건이었다. 연산군의 폭정을 보다 못한 신하들은 뜻을 모아 거사를 함께 도모하였는데 그 주도세력 중 한 명이 류순정(柳順汀)이었으니, 연산군~중종 대의 인물이자 당시 이조판서로서 명망이 높았던 그는 이후 정국공신이 되어 영의정에 오른다.
지금 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이 류순정의 가문인 진주류씨(晉州柳氏) 문성공파(종손:류원배柳原培)의 기증유물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중종 대(大) 반정공신 류순정과 그 아들 류홍의 영정, 그리고 집안 대대로 전해오던 전적류 등을 볼 수 있는 이번 전시는 한 가문의 전통과 역사를 통해 우리의 역사를 되짚어 보게 한다.
산거즉사(山居卽事)
4월 황매 비는 개이고 저문 빛이 밝은데
발을 열고 홀로 앉아 바위 문을 대한다
숲 사이 봉황꼬리 같은 고사리 순이 커가고
동산 속에 누에머리 같은 무씨가 익어가네
밝은 달이 창에 들어 촛불을 대신하는데
맑은 샘물 돌을 씻어 새벽의 생황 소리 같다
문을 닫고 흰 머리를 바람에 맡겨 두고
한가로이 송진 따며 마음을 닦는다
류순정,『속동문선』권8
류순정의 시에서 엿보이는 맑고 고매한 인품은 그의 초상화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또한 이번 전시에서 류순정의 초상화는 4점을 선보이는데, 조선전기에 한 사람을 대상으로 이 정도의 초상화가 남아 있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것이다.
류순정 초상화, 17세기, 176.0×103.3cm
아직 보존처리 과정 중에 있는 류순정의 전신 초상화이다. 얼굴과 신체를 약간 옆으로 틀어서 입체감을 살린 이 초상화는 굳게 다문 입과 단정한 자세를 통해 인물의 위엄과 지조를 보여준다.
류순정 초상화, 17세기, 71.2×57.8cm, 62.2×58.4cm
류순정의 반신 초상화이다. 전신상에 비하여 작지만 상대적으로 그리기 수월하고 후손들이 가정에서 곁에 두고서 보기 편하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한 점은 숙종 대 도화서 화원인 윤상익이 그린 것이고, 다른 한 점은 작자 미상이다.
그런데 위의 초상화에서 주인공의 얼굴에 병환으로 인해 생긴 듯한 붉은 반점이 보인다. 국왕, 공신 그리고 유명 사대부를 대상으로 하는 초상화 제작은 죽음 이후에도 영원히 그들의 업적을 기리고 기억하기 위한 후손들의 마음을 담고 있다. 때문에 초상화는 해당 인물의 고매한 성품을 담아내야 한다는 목적을 갖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의 얼굴에 생긴 붉은 반점을 그대로 묘사한 표현을 통해 우리는 ‘터럭 한 올이라도 틀리면 다른 사람이 된다.’는 초상화의 명제를 확인할 수 있다. 표정과 자세를 통해 인물의 근엄한 성품을 드러내면서도 흉터는 속이지 않고 그린 조선 초상화의 사실성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류순정 이래 진주류씨 문성공파는 대대로 가문의 전통을 유지하였는데 관직에 오른 인물이 끊이지 않았으며 영조 대에는 충신이자 효행으로 이름이 높았던 류엄(柳儼)을 배출하였다. 예조판서를 지낸 그는 국가에 충성한 명신이기도 하였지만 부모에게 효도를 다한 인물로도 널리 알려졌다. 또한 산문에 능하여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특히 조상대대로 살았던 서울의 공암(구암공원), 궁산 소악루, 선유봉, 잠두봉, 행호(행주산성 앞), 양화진 등 한강변과 주변의 경치에 많은 애착을 지닌듯하다.
공암의 다층탑
소상의 안개 낀 절에 울리는 종소리
팔경에서 아주 뛰어난 곳이네
시험 삼아 공암 위 탑을 바라보니
춘생과 박의 경치 하늘에 가득하다
류엄,『화악만록(花岳謾錄)』
화악만록, 18세기
류엄이 관직생활을 하면서 지은 시문들로 오은고(梧隱稿), 해서록(海西錄), 기영록(畿營錄), 북산록(北山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시(時), 부(賦), 만사(輓詞) 등이 실려 있다.
연행연구첩(燕行聯句帖), 18세기
류엄이 1737년 중국에 사신으로 가면서 읊은 시를 기록한 책이다.
1512년 12월 류순정이 54세의 나이로 돌아가신 뒤에 자리 잡은 땅은 조선시대에는 부평 관할이었는데 현재는 구로구 오류동이 되었다. 이후 많은 후손들이 이곳에 모셔졌으며 지금까지 수 백 년 동안 명당을 보존해오고 있다. 후손들은 조상을 찾아 경모하고 매년 가을이 되면 많은 종인들이 찾아와 예를 갖추어 술잔을 올린다. 진주류씨 가문이 보여주는 선조에 대한 예와 효는 우리로 하여금 나의 가족과 선조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한다.
이곳에는 조선시대 관리들이 평상시 집무할 때 입던 관복(官服)인 단령(團領)과 단령의 가슴과 등 양쪽에 달아 상하의 계급을 나타냈던 흉배(胸背)도 전시되어 있다. 주로 문관들은 공작이나 학을, 무관들은 호랑이 그림을 달았다.
쌍학흉배, 조선말기
조선시대 문관 당상관(정3품 이상), 왕의 종친과 부마 등의 관복에 붙였던 흉배이다.
쌍호흉배, 조선말기
조선시대 무관 당상관(정3춤 이상)의 관복 앞뒤에 붙였던 흉배이다.
또 흥미로운 것은 옛 초상화 복원 과정이 이해하기 쉽게 전시된 점이다. 복원에 필요한 재료와 도구 그리고 여러 단계를 거치는 복원 과정의 순서가 알기 쉽게 정리되어 있었고 무엇보다 영상을 통해 직접 보여준다는 점에서 유익할 것이다.
본격적인 무더위와 함께 여름 휴가철이 다가오는 요즘, 넓은 공간과 커다란 분수 그리고 아이들을 위한 교육실과 수유실이 갖춰진 서울역사박물관에서 하루쯤 가족들과 함께 진주류씨 가문의 유물들을 보면서 우리의 선조에 대해 그리고 가족에 대해 도란도란 얘기 나눠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