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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명: 천년의 기다림, 초조대장경전 기간 : 2011년5월30일~2011년9월30일 장소 : 호림박물관 신림

전시명: 천년의 기다림, 초조대장경전
기간 : 2011년5월30일~2011년9월30일
장소 : 호림박물관 신림

우선 제목이 간단치 않다고 할 수 있다. 초조(初雕)는 어려운 한자이지만 처음 새겼다는 뜻이다. 대장경은 고려 대장경이란 말에 익숙해져서 ‘여러 경전을 모은 것’이라고 쉽게 생각할 수 있지만 역사를 보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이렇게 간단하지 않은 대장경을 처음 새긴 것이기 때문에 우선 초조대장경은 무엇보다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아비달마품류족론(阿毗達磨品類足論) 총 18권중 16권째 첫부분

대장경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모아 놓은 경전의 총집합체이다. 그런데 이 경전은 처음부터 경전 체제를 갖춘 것이 아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입적하고 나서 1-2백년 뒤 남기신 가르침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직접적인 교의(經)에서부터 수행이나 계율에 관한 원칙(律) 그리고 어려운 가르침에 대한 해설인 논(論)이 모두 경전에 포함하게 됐다.

경, 율, 논을 모았다는 의미의 장(藏)자를 붙인 삼장(三藏)은 처음에 중부 인도어인 팔리어로 쓰여졌다가 인도 전체로 확대되면서 산스크리트어로 정리됐다. 그리고 티벳에 전해져 티벳어로도 번역됐다. 그리고 2세기 이후가 되면서 불교가 중국에 전해지면서 이들 경전은 중국어, 즉 한문으로 번역됐다. 이때 중국에 전해진 불교 경전은 모두 제각각이었고 부분 부분이었다.

경전의 앞부분(『아비담비바사론(阿毗曇毗婆沙論)』 권11)

그래서 중국에서 불교를 신봉하게 된 왕들은 ‘도대체 전체 경전은 얼마나 되는가’를 알고 싶어 했다. 그래서 이들은 국가사업을 통해 경전의 목록을 만들게 하고 또 분류와 진위 조사를 시켰다. 이렇게 해서 목록이 만들어졌고 그 목록에 수록된 경정을 ‘대장경’ 또는 ‘일체경’으로 부르게 됐다. 그리고 마침내는 당나라때에 종합목록집인 『개원석교록(開元釋敎錄)』20권이 만들어졌고 그속에는 중국에 전래돼 번역된 모든 경전이 수록되게 됐다. 수록된 경율논은 모두 5048권이었다.

경전의 끝부분(『佛頂最勝陀羅尼經』)

이런 목록이 완성되자 북송 시대에 들자마자 목록에 따라 이들 경전을 전집으로 만드는 일에 착수했다. 북송은 세계최고의 목판인쇄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고 또 사대부 계층이 등장해 본격적인 독서층이 양성되던 시기였다. 북송초인 971년에서 977년에 제작된 대장경 목판인쇄본은 481개함에 넣어진 5018권이었고 이를 흔히 개보 연간에 시작된 사업이라 해서 『개보장(開寶藏)』또 칙명에 의해 만들어졌다 해서『勅版』이라고 한다.(국내에서는 개보칙판이라고 부른다)

당시 최고의 문화사업이었던 이 개보장에 대해 주변 모든 나라가 탐을 내, 고려는 물론 일본에도 전해졌고 요나라에도 전했다. 그리고 이들 나라에서는 송판 대장4경에 다소의 오자, 탈자가 있다는 이유로 온 국력을 기울여 자국의 대장경을 간행했다. 여진이 세운 금에서는 금판 대장경, 거란이 세운 요나라에서는 거란대장경이 발간됐다.

북송시대에 간행된 개보칙판의 『불본행집경』제19권
(일본 난젠지 소장, 도록사진 참조)
고려의 초조대장 역시 이런 흐름 속에 간행된 것이다. 불교에서는 부처님의 명호(이름)만 외어도 극락왕생할 수 있다고 했다. 또 법화경 같은 대승경전을 보면 부처님의 가르침인 경전을 베껴 널리 알리는 일은 매우 큰 공덕 중 하나라고 했다. 따라서 불교를 국교로 삼아 국가의 수호와 왕실의 안녕을 도모하던 고려에서 사경과 경전 간행은 중요 국가 사업이기도 했다.
고려 초조대장경의 『불본행집경』권25(도록사진 참조)

고려 현종때인 1010년 재차 거란(遼)이 침입하자 이를 부처님의 가호로 물리치기 위해 경전 간행사업을 벌였다. 이 사업은 1011년 정식으로 시작돼 1087년까지 장기간 계속됐는데 이때 만들어진 경전들을 한데 묶어 고려에서 처음 간행된 대장경이란 뜻에서 새길 조(雕)를 써서 초조 대장경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초조 대장경은 당시 고려에 전해져 있던 여러 경전과 송나라의 개보칙판이 기본이 됐고 이후 제작된 거란판의 내용도 추가됐다. 초조 대장경은 전집(全集)처럼 처음부터 체제가 통일된 것이 아니라 여러 루트로 입수된 대장경을 수정, 복각한 앤솔로지에 가깝다. 따라서 전체 규모를 가늠하기 어려운데 기록에는 6,000여권이 판각되었다고 한다. 아쉽게도 경전을 새긴 경판(經板)은 개성 흥왕사에 보관하다가 대구 부인사로 옮겼으나 1232년 몽고군의 침입때 불타버렸다고 한다.

고려때는 경전 간행 이외에 경전을 직접 베껴스는 사경 공덕도 많이 이뤄졌다. 대방광불화엄경을 감지에 은물로 베낀 사경(寫經), 오른쪽은 경전 내용을 그린 변상도.

현재 확인된 초조대장경은 일본 교토 난젠지에 1,800여권, 쓰시마에 600여권 그리고 국내에 300여권이 전하는 데 그중 국내에서 100여권으로 가장 많은 초조대장경을 보유한 곳이 바로 호림박물관이다.

첫글자에서 마지막 글자까지 한문 경전으로 된 초조대장경은 읽고 이해하는 대상은 아니다. 애초부터 사경 공덕을 위해 ‘제작’된 것이므로 보는 입장에서도 눈을 마주치는 ‘공덕’만으로 족하다.

하나 덧붙이자면, 불경의 중요경전 중 하나로 손꼽히는 화엄경(원래 이름은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이 있는데 이 경전은 오랫동안 2가지 번역본만 있는 줄 알고 있었다. 즉 불타발타라(佛馱跋陀羅)라는 서역인이 번역한 60권으로 된 본과 당나라때 서역인 실차난타(實叉難陀)가 번역한 80권본이다. 그런데 호림박물관이 소장의 화엄경은 불타발타라 60권이 만들어지기 이전에 이미 50권본이 있었으며 이것을 증보한 것인 60권이라는 놀라운 사실을 알려주었다. 고려 초조대장경의 의미와 가치가 확인되는 대목이다 .

초조대장경 『무소유보살경(無所有菩薩經)』첫머리 부분.

그 외에 초조대장경을 만들면서 수기(守其) 법사라는 분이 엄격한 교정 작업을 벌였는데 이때의 작업은 재조 대장경(경판 해인사소장)의 밑거름이 됐다. 해인사 대장경은 20세기 들어 일본에 펴내서 현재까지 세계 각국에서 활용되고 있는 『대정신수대장경(大正新修大藏經)』의 원형이다.

불교에서는 부처님의 명호만 외어도 극락 왕생한다고 한다. 명호란 이름인데 이름을 염송하는 일은 그만큼 믿고 따른다는 것이기 때문에 그 공덕으로 극락왕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또 법화경에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적은 경전을 베껴서(寫經) 널리 알리는 일이 부처님 앞에 큰 공덕이 된다고 했다.

 

글/사진 스마트K
업데이트 2024.11.19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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