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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구를 넘어 하나의 예술로' - 「한국인과 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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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명 : 한국인과 인장 장 소 : 한양대학교박물관 기 간 : 2011.5.19~9.30

         
전시명 : 한국인과 인장
장   소 : 한양대학교박물관
기   간 : 2011.5.19~9.30

사람이 태어나 인생을 살면서 평생 함께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인장이다. 출생신고 때부터 시작되는 도장 찍는 일은 내가 누구인지 알리는 동시에 사람 사이의 약속이 되기도 한다. 오래전부터 인장은 한국인의 삶 속에 깊숙이 자리하였지만, 간단한 서명이 그 자리를 차지하면서 인장의 기능과 의미는 많이 약화되었다. 현대인의 인장에 대한 무심함에 경종을 울리는 전시가 있으니, 바로 한양대박물관에서 개최한 <한국인과 인장>전이다. 이 전시는 인장이 갖는 성격과 본질, 그리고 변천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도록 기획되었으며, 옛 사람들의 인장과 현대인들의 도장을 주제별, 쓰임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보여준다.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여러 번의 도장을 찍으며 살아간다. 도장을 찍으며 설레였던 기억, 후회했던 기억, 고민했던 기억은 추억이 되어 머리속에 자리한다. 그 중 “참~잘했어요”라는 선생님의 도장은 시대를 막론하고 어린마음을 들뜨게 했다.

 

현대에 들어서 어린이용 문구류로도 익숙해진 도장(스탬프), 즉 인장은 언제부터 사용된 것일까?..

     
<스캐럽>, 지름 0.8 ~1.6cm, 백석대학교 기독교박물관 소장.     <낙랑봉니>, 지름 0.3cm, 국립중앙박물관소장.

문자와 형태는 다르지만 인장이 등장한 최초의 형태는 봉인(封印)이라고 할 수 있다. 기원전 3000년경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사용된 스캐럽은 파피루스에 기록한 후 끈을 묶고 그 위에 진흙덩어리를 붙여 문양이 새겨진 쪽을 찍어 봉인하였다. 또, 한국인장의 시작점이라 볼 수 있는 낙랑의 봉니 또한 진흙 덩어리를 붙인 뒤 인장을 찍어 봉인하는 과정에서 생긴 진흙덩어리를 뜻한다.

                   
 <고려동인>,청동인,4.0x4.3cm,한양대학교박물관.   <사복시랑청인>,동인,6.8 x6.8x9.0cm, 고려대학교박물관.

 "인장을 위조한 자는 인장의 글자를 미처 다 새기지 않았더라도 참형에 처하고
영구히 각 고을의 노비로 부리며 붙잡았거나 고발한 사람에게는 범인의 재산을 준다."
                                                                               『경국대전』 권5 刑典 僞造

고려시대에는 청종으로 주조한 동인이 주류를 이루는데, 인장에 구멍을 만들어 끈으로 묶어 휴대하였으며, 조선시대 때는 품계에 따라 관인의 크기를 다르게 하고, 위조자는 참형에 처하는 등 법률이 마련되었다.


                          <대원수보>, 10.0x10.0cm / <제고지보>, 11.1x11.1cm, 국립전주박물관소장.
새보는 국가의 상징으로 외교문서에 사용하는것, 국왕이 통치에 사용하던 것, 그 밖에  왕실의 공식 인장으로 구분된다. 

도장은 쓰임에 따라 다양하게 불리는데, 임금의 권위와 정통성을 상징하는 새보(璽寶), 관청에서 사용하는 관인(官印), 보부상들이 각종 문서에 사용한 상무인(常務印), 편지가 수취인에게 전해지기 전에 개봉되는 것을 방지하는 봉함인(封緘印), 책․그림․글씨의 소장자가 소유임을 알리는 장서인(藏書印)등이다.


흥선대원군 사구인, <신본포의>, 석인, 6.6x6.5x21.1cm,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홍석구묘 출토 <인장과 도자합>                 <제일강산>, 석인, 3.0x3.0x3.8cm. 고려대학교박물관


<추사인보>, 24.0x7.0cm, 개인소장.
월전 장우성이 추사(秋史)의 종가를 방문한 후 추사의 인장을 찍고 이에대한 감상을 덧붙였다.

개인이 사용한 사인(私印)으로는 왕실 사람들의 인장과 조선 후기 문신의 인장, 그리고 인영(印影)을 모아놓은 인보(印譜)를 통해 볼 수 있다. 다양한 형태의 사인은 인장이 예술적 표현의 하나이기도 했음을 보여준다.

인장은 서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화가의 성명인(姓名印)이나 아호인(雅號印)을 통해 진위여부를 판단하기도 하며, 수장자가 찍는 수장인(收藏印)과 감정인(鑑定印)을 통해 제작시기 등을 알 수 있어 중요한 자료가 된다.

            

한편, 1914년 조선통독부령으로 발효된 인감증명 규칙은 국민 모두가 도장을 갖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는데, 법적 효력이 있는 인감은 한국, 일본, 대만 세 나라에서 만 시행되고 있는 제도라는 점에서 시사 하는바가 크다. 이후 도장은 공적, 사적인 거래관계를 비롯하여 사회생활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존재가 되었는데, 모든 사람이 도장을 구비하게되자 도장을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점포인 도장포가 등장한다.

            


(순서대로) 대한민국 인장공예 명장1호 최병훈, <인예>, 석인, 4.5x4.5x6.5cm.
대한민국 인장공예 명장 최병훈, <이백 시문>, 목인, 10.5x10.5cm.
대한민국인장공예 명장 이동일, 한용택 印稿 유태흥 刻

이와더불어 2001년부터 인장업 분야가 대한민국 명장제도에 편입되면서 6명의 명장들이 배출 되었다.


대한민국 국새

   
유해발굴현장에서 출토된 도장은 전사자의 유골이 누구의 것인지 알려주는 증표가 되어준다.

                      

   백범 김구 <관화(寬和), 김구지인(金九之印), 백범(白凡)> ,     도산 안창호의 성명인, 목인, 0.6x3.2cm,
   석인, 1.4x3.0x6.0cm, 백범기념관 소장.                                독립기념관 소장.

               
 

            <김수환추기경 압인>, 금속, 27.0x31.0cm,         <한경직 목사의 성명인>, 플라스틱인, 1.5x6.0cm,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 소장.                           영락교회 사료관 소장.

        

    청담 대종사, <순청절점(純淸絕點), 순호(淳浩, 청담(靑潭)>    소태산 대종사의 고무인, 1.0x3.9x6.0cm
    도선사 청담기념관 소장.                                                      원불교역사박물관 소장.

종교인의 인장에는 종교인의 의식까지 내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박정희 대통령, <문화장조>, 78.4x38.0cm, 한양대학교 박물관 소장.
한글로 새겨진 간결한 인장이 눈에 띈다.

              
                  <우체국 도장>, 우정박물관 소장.                                  <대조선국한성은행 도장> 복제품, 
   일부인은 일자인(日字印)또는 날짜도장으로 불린다.   1897년 한성은행이 영업을 시작하면서 사용한 최초의 인장. 

또, 도장은 신분을 증명하고 신원을 확인시켜주는 도구이자 기관에서는 직인(職印)의 용도로도 사용되었는데, 실용적인 기능 외에 조각까지 포괄하는 종합예술품으로 승화되었다. 인장이 종합예술품으로 발전하는데는 위창 오세창과 성재 김태석을 선두로 한 근현대 전각가들의 노력이 크게 작용했다.

            
                        위창 오세창의 인장                                 <신본포의(臣本布衣)>, 석인, 2.7x5.7cm, 개인소장.
     오세창은 3.1운동 민족대표이자 서화감식가이기도 했으며         "나는 원래 벼슬이 없는 선비이다"라는 뜻. 
     전각분야에도 뛰어나 전각의 근간을 다졌다.

                    
                           성재 김태석의 인장                                         <김태석인(金台錫印>, 성재(惺齋)> , 석인,
  김태석은 오세창과 더불어 한국 근형대 전각계의 쌍벽을 이룬 인물이며,        3.3x3.3x9.8,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중화민국의 원세개(袁世凱)로 부터 인정받아 국새(國璽)를 새기기도 하였다.

  

운여 김광업, <색즉시공공즉시색(色卽示空空卽示色)>              검여 유희강, <소완재주인(蘇阮齋主人), 석인,
목인, 11.2x14.9x9.5cm, 최효삼 소장.                                    2.5~4.0x5.3cm, 유신규 소장.
" 모든 유형의 사물은 공허하며,                                            "동파 소식과 완당 김정희를 존숭하는 사람의 집"

공허한것은 유형의 사물과 다르지 않다.

근현대 전각가들에 의해 예술의 경지로까지 발전한 전각은 현대에 들어 변용되고 활용되며 대중과 소통하기에 이르렀다. 그저 어렵고 익숙하지 않게 느껴지지만 전각은 어느새 우리 일상생활속에서 다양한 형태로 자리잡고 있다.

                                          
             고암 정병례, <지수화풍(地水火風)>                                              고암 정병례, <세종대왕)>           
  전각의 영역이 설치미술작품으로 까지 확대되어 다양한 장르에           
  접목시킬수 있으며, 변용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전각은 로고에도 사용되어 광고 전달에 도움을 주며, 심미적인 기능까지 담당한다. 자! 그럼 이 우측에 있는 전각은 어디에서 본 것일까?,, 길에서 볼 수 있는 상점의 간판에도 전각이 자리잡고 있었다는 사실! (정답은 맨 끝에)


고암 정병례, <까치호랑이>   새김 애니메이션을 통해 전각이 다양한 장르에 접목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살펴본 바와 같이 인장은 방촌(方寸)의 작은 공간속에 집약된 예술이며, 많은 것을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초기 봉인을 목적으로 사용된 인장은 느낌을 형상화하는 수단이자 증표나 신표의 기능을 하며 현재까지 이어져왔다. 도장은 하나씩 다 갖게되는 물건이 되었고 전각은 예술품으로 발전을 거듭하였다. 재해석된 전각 작품들은 앞으로 선보여질 인장의 변화에 많은 기대를 갖게 한다.  

* 간단한 설명 하나*  인장 꼭대기(손잡이)에 있는 조각은 무엇인고?
인뉴(印紐)라고 칭해지는 부분이며, 허리에 차기 쉽게하는 기능과 관직이나 신분을 나타내는 기능을 한다. 

이 전시를 보기에 앞서 인장의 서체를 몰라도, 문자를 읽고 해석할 수 없어도 걱정할 것 없다. 오래전부터 우리 삶 속 깊숙히 자리잡고 있는 인장에 대해 인식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롭고 알차기 때문이다. 참 잘했어요~!" 라는 도장을 찍고 싶은 이 전시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인장 그리고 도장에 대해 재인식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본다.  

  

한양대 박물관 가는길 : 지하철 2호선 한양대역 하차  - 2번 출구로 나온 후  우측.
기타사항 :  전시는 1, 2층에서 진행되고 있다.

 

문제의 정답 -

 

 

 

 

글/사진 스마트K
업데이트 2024.11.21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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