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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명: 유천리 고려청자-자연의 노래 기 간: 2011.04.05~2011.05.29 장 소: 국립중앙박물관

  전시명: 유천리 고려청자-자연의 노래
  기 간: 2011.04.05~2011.05.29
  장 소: 국립중앙박물관

물과 공기는 너무 흔해서 평소에 귀한 줄 모르고 지낸다. 고려시대 청자도 그렇다. 고려청자하면 너나할 것 없이 의례 두둥실 떠있는 구름 위에 학이 수도 없이 날아가는 모습의 상감 청자를 꼽는다. 하나 더하면 토끼가 메고있는 투각향로 정도. 그리고는 끝이다. 하지만 이같은 상감 청자가 얼마나 귀하고 또 만들기 힘든 것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귀를 귀울이지 않는다.

고려시대 470여년 동안 중국도 괄목상대(刮目相對)하게 한 비색(翡色) 청자와 상감 청자를 굽던 곳은 전국에 딱 두군데 밖에 없었다. 하나는 전라도땅 끝에 있는 강진이고 다른 한 곳은 부안이다. 부안이라고 해도 변산반도 아래쪽 곰소항에서 동쪽으로 20여리 떨어진 유천리 (柳川里) 일대에서만 고려를 대표하는 상감청자를 구웠다.

깨어진 잔과 잔탁

오늘날 강진을 가보면 뒷산을 배경으로 7,8백년 이전의 가마터가 남아있어 ‘산천은 의구하다’는 감개에 젖을 수 있다. 하지만 부안은 정반대이다. 버드나무 강가라는 이름을 가진 유천리는 원래부터 구릉지에 가마터가 있었던 터에 오랜 세월 속에 가마터는 논이고 밭으로 변했다. 특히 20세기 후반 들어서는 중장비가 동원되면서 그나마 몇 군데 남아있던 곳도 흔적도 없어졌다.

상감청자 운학문 매병(象嵌靑磁雲鶴紋梅甁)

말쑥한 비색 청자 주전자와 뭉실한 구름 사이로 학들이 날아다니는 정병(淨甁), 먼 옛날 천하미인 양귀비가 둘도 없이 즐겼다는 여지(荔枝)가 주렁주렁 달린 상감청자 여지당초문 발(象嵌靑磁荔枝唐草文鉢)은 바로 이곳 유천리에서 구워졌던 청자들이다.

유천리 가마에서 나온 상감청자 여지당초문 발(象嵌靑磁荔枝唐草文鉢)과 고려 명종 지릉에서 출토된 완전한 형태의 발
‘지천으로 있는 깨진 사금파리야 쳐다봐서 뭘 하겠는가’ 할 것이다. 하지만 도자기를 깊이 즐기고 또 교양학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금파리를 뜯어보는 취미가 필요하다. 박물관이나 미술관 진열장 속에 있는 도자기는 곱게 단장하고 조명을 받고 서있는 모델이라면 깨진 사금파리는 속살도 삐죽 보이고 성격도 그대로 드러내는 평상복 차림이라 할 수 있다.

유천리 발굴의 청자뚜껑들

청자 사금파리, 학술용어로 청자 도편(陶片)이라 부르는 이들의 단면을 보면 어느 것은 회색을 보이는 반면 어느 것은 조금 붉은 색을 띤다. 또 바짝 들이대고 단면을 보면 1mm의 반도 되지 않을 유약층이 덮여있는 것이 보인다. 단면의 색깔, 유약층 등등은 도편볼 때 주요 포인트가 되는 것이다.

유천리 발굴의 상감청자 화문 접시(象嵌靑磁花文楪匙)들

꼭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얇은 대접이나 다완, 접시가 깨진 도편에서 보이는 단면은 회색에 가깝다. 반면 또 꼭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주전자 깨진 것처럼 규모가 큰 기형의 도편에는 단면이 좀더 붉게 보이는 경우가 있다.

유천리의 상감청자 당초문 완(象嵌靑磁 唐草文 盌)과 문공유(文公裕) 무덤 출토라고 전하는 완전한 형태의 완

단면이 회색인 쪽의 도편은 좋은 태토를 사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좋은 태토란 높은 불에 구워도 원형을 유지하는 흙을 말하다. 거기에는 대개 도자기의 뼈대를 잡아주는 규석 성분과 불속에서 녹으면서 유리질이 되는 장석 성분이 골고루 잘 배합돼 있는 게 보통이다. 유천리 가마터에서 상감청자와 같은 최고급 청자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규석, 장석 성분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 좋은 태토를 주변에서 찾아냈기 때문이다.

유천리 출토의 상감청자 파초두꺼비무늬 매병(象嵌靑磁芭蕉蟾文梅甁)

태토에 힘이 좋으면 기물을 얇게 빗어 구워도 터지거나 일그러지지 않는다. 또 얇게 빗은 기물에 홈을 파서 무늬를 넣는 상감 기법을 구사한다 해도 좀처럼 상감한 부분이 들뜨지 않게 된다. 그래서 유천리 가마터에서 출토된 도편는 그냥 옆에 놓고 보고싶을 정도로 정교한 무뉘가 들어있는 것들이 많이 있다. 실제로 해방후 이화여대는 일본인 후카다(深田)이란 사람이 유천리 일대에서 발굴해 모아놓은 도편을 일괄 구입해 오랜 시간의 정리 끝에 1983년 특별전을 개최한 적이 있다.

상감청자 파초문섬문 매병(象嵌靑磁芭蕉蟾文梅甁)
파초 잎사귀 위에 앉은 두꺼비 문양이 앙증맞다

그리고 부안 유천리 가마터출토 도편의 또다른 특징은 문양 기법에 있다. 이는 유천리에서 구워졌던 청자의 성격과도 연관되는 부분인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자료 부족으로 아직까지 이렇다 할 연구 성과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유천리 가마의 상감청자에는 국화문이나 당초문 같은 장식성이 강한 문양 이외에 한 폭의 그림처럼 보이는 회화성이 뛰어난 문양이 많은 게 특징이다.

상감청자 포류수금문 완(象嵌靑磁)의 깨어진 일부와 완전한 형태
대표적인 것이 버드나무와 오리, 백로 같은 물새들을 표현한 물가풍경 문양이다. 이 문양은 물가의 버드나무와 물새라는 의미에서 포류수금문(蒲柳水禽文)이라고 불리우는데 요나라 시대 무덤 속에서 출토된 벽화에 이같은 내용이 그려져있다고 해 연원을 거기까지 거슬러 올라가 보인 연구가 있었다. 어쨌든 유천리가마의 포류수금문은 흑상감으로 물가의 버드나무와 이랑지는 물결을 새기고 그 사이에 한가롭게 떠다니는 백로같은 물새를 백상감으로 표현해 콘트라스트를 준, 귀엽고 사랑스러운 문양이다.
완전한 형태의 청자음각하엽문편구발(靑磁陰刻荷葉文片口鉢)과 유천리에서 나온 꼭같은 형태의 깨어진 뚜껑
가마터에는 깨진 사금파리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가마터는 오늘날로 말하면 자기공장이기 때문에 부근에는 당연히 저장 창고가 있었고 따라서 완성된 것들도 많이 나오는게 보통이다. 다만 유천리 가마의 경우는 산속이 아닌 평지에 있어 쉽게 도굴을 당했다는 불운을 겪었을 뿐이다.
   가마속에서 굽는 도중 주저앉은 상감청자당초문 매병(象嵌靑磁唐草文梅甁)
   굽지름 23.7cm
유천리 청자가마의 도편들이 말해주는 또다른 고려청자 정보는 현재 전하는 것보다 훨씬 다양하고 수많은 청자들이 과거에 구워졌고 또 시도되었다는 사실이다. 굽는 과정에서 주저 앉은 것으로 보이는 매병의 경우 밑지름이 무려 23.7cm이나 된다. 완성되었다면 매병의 비례로 보아 높이는 무려 7,80cm은 충분히 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만한 크기는 현재 전하는 매병이 대개 30cm 전후에, 크다고 해도 40~50cm 정도이므로 도저히 상상만으로는 짐작이 되지 않는 사이즈이다. 사금파리를 보는 또 다른 흥미는 이처럼 상상력을 자극해준다는 데에도 있다.

1966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실시한 유천리12호 가마터의 발굴조사 모습

참, 이 유천리 청자가마터는 『고려도자의 연구』라는 저서로 유명한 일본인 학자 노모리 켄(野守健)이 1929년 3월 발견해 1934년 학계에 처음 보고했고 국내 전문가들의 손에 의해서는 1966년 국립중앙박물관이 정식 조사를 시작했다. 이 전시는 5월29일까지 열린다.

글/사진 스마트K
업데이트 2024.10.30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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