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제목: 삶과 죽음의 이야기 -조선묘지명 기 간: 2011.3.1-2011.4.17 장 소: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1층 특별전시실
전시제목 : 삶과 죽음의 이야기
-조선묘지명
기 간 : 2011.3.1-2011.4.17
장 소 :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1층 특별전시실
자신의 삶과 죽음, 이 두 가지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삶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순 있어도 죽음은 말할 수 없고, 죽음을 맞은 뒤에는 그 어느 것도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는 묘지명에는 이 두 가지가 다 기록되어 있다. 이는 다른 사람에 의해 남겨지기 때문이다. 묘지명(墓誌銘)이란 무덤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려주기 위해 무덤 내부 또는 그 부근 땅속에 남기는 기록이다. 주로 묻힌 이의 이름, 태어난 날과 죽은 날, 가족관계 등이 담겨있어 한 인물의 개인사를 알 수 있으며, 그 시대의 생활과 문화, 역사 등을 알 수 있다.
묘지명의 내용은 대개 제목-서문-명銘-작성일-매장일 순으로 적혀 있으며, 명銘에는 묻힌이에 대한 찬양 혹은 추념이나 추도의 내용을 시적인 언어로 남긴다.
안악 3호 무덤 널방 전실 서벽에 쓴 묘지
묘지명은 삼국시대에 처음 등장하는데, 고구려 안악 3호 무덤의 벽에 쓴 묘지명이 연대가 가장 빠르다. 백제 무령왕과 왕비의 묘지도 남아있는데, 왕비의 묘지 뒷면에는 토지신으로부터 땅을 매입한다는 내용의 글이 적혀있어 백제인의 도교적 관념을 살 필 수 있다.
무령왕과 왕비 묘지
독립된 형태로 제작된 묘지 중 가장 오래되었다.
묘지는 대개 아들이 짓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다른 사람에게 글을 청할 때에는 죽은 사람의 일생을 기록한 가장家狀이나 행장行狀을 전해준다. 묘지를 묻을 때에는 묘광墓壙 앞이 가장 많고 좌우측에 묻기도 하였다.
세종의 딸 정소공주 묘지명
대형 석재 묘지명으로 고려의 석제 묘지명 전통이 조선 왕실을 중심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조선시대의 묘지명은 다양한 모습으로 제작되었는데, 관료계층이 주로 제작하던 고려시대와 달리 왕실이나 사대부 뿐 아니라 하급관리나 부호, 중인 등 다양한 계층이 제작하였다. 또. 고려시대에는 보이지 않던 도자기 묘지명이 제작되며, 서책과 같은 크기의 작은 묘지명이 성행한다.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시인 정철의 묘지명 조선후기 문신 윤서적과 부인 박씨의 묘지명
서책 형태로 구성한 사대부 묘지명의 전형적인 모습 외곽선을 두르고 그 안에 글씨를 넣은 책 형태의 묘지명
도자기로 만든 묘지는 별도의 함을 만들어 담아 무덤에 묻었다. 우의정을 지낸 이후원의 묘지명과 함 조선 전기에는 석제, 토제, 목제로 제작, 후기는 백자 함이 나타난다. 함의 뚜껑은 결손 되었다.
문장이 매우 길어 책을 엮듯이 이어나간 서책書冊형태의 묘지명은 주로 왕족이나 사대부, 명문가 계층에서 많이 제작되었는데, 하급관료의 묘지도 제작되었다. 사대부가 중심으로 묘지명의 수요가 늘어나면서 조선후기에 들어서는 청화백자 묘지명을 볼 수 있으며, 원통형, 그릇형, 필통형, 벼루형 등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게 된다.
정몽주 7세손인 정귀응의 묘지명 장운행 묘지명
의릉지(경종 능지) 탁본 한글이 있는 묘지명
왕실의 묘지는 땅에 묻기 전 탁본으로 남겨져 전해지기도 한다. 벽돌에 한글로 새겨졌다.
이 외에도 아버지 영조와 부인인 혜경궁 홍씨의 글이 남아있는 사도세자의 묘지명과 화려한 부장품과 함께 전시된 천연군주의 묘지 등 을 볼 수 있다. 또, 왕실에서 제작한 묘지명도 여러 종류임을 알 수있는데, 그 정황을 살펴 볼 수 있어 흥미롭다.
천연군주의 묘지와 부장품
연산군의 후궁인 숙의 윤씨 묘지 영조가 지은 후궁 영빈이씨 묘지
후궁의 묘지명은 대부분 도자기로 만든 서책형이다.
효와 예를 중요시 하는 유교적 이념과 함께 하나의 장례문화로 자리잡았던 묘지명. 이 전시를 통해 묘지명의 변천과정을 살펴볼 수 있으며, 이제는 말할 수 없는 이들의 삶과 죽음에 대해 들을 수 있다.
* 전시 정보 : 관람료 무료, 도록은 발간되지 않았고 사진촬영 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