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제목: 탁본에 담긴 한국 고대·중세의 문양
-조동원 명예교수 기증전
기간:2010.12.16-2011.3.31
장소: 성균관대학교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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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제목: 탁본에 담긴 한국 고대·중세의 문양 -조동원 명예교수 기증전 기간:2010.12.16-2011.3.31 장소: 성균관대학교 박물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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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석학은 대중적인 학문은 아니다. 옛 비석 혹은 금속 기물에 새겨진 글자들을 판독해 역사적 내용을 고증하고 서예사적 의미를 찾아내는 그런 어려운 학문이다. 또 판독에 앞서 탁본이라는 중노동에 버금가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래서 지금도 비인기이지만 과거에도 마찬가지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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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신묘 12지신상(金庾信墓 十二支神像)중 토끼. 통일신라 674년 68x94cm 경주시 충효동 | |
이 전시는 그런 분야를 라이프워크로 붙잡고 살아왔던 한 노학자가 자신이 소장한 탁본 일체를 모교에 기증하자 모교에서 그를 일반에 소개하기 위해 꾸민 두 번째 전시이다. 후학을 위해 모든 것을 내놓은 분은 성균관대 조동원 명예교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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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암사 지증대사 적조탑 주악상(鳳巖寺 智證大師 寂照塔 奏樂像) 고려 40x39cm 경북 문경시 원북리 | | |
한국의 역사문헌 자료는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것이 사실이다. 통일신라 시대의 것은 한두 점을 제외하면 없다 시피하다. 고려에 들어서도 13세기 이전의 것은 거의 없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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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천사 지광국사 현묘탑비(法泉寺 智光國士 玄妙塔碑) 고려 강원 원주시 법천사 | |
반면 금석문은 작은 것까지 합쳐 통일신라시대 것만 250여종이 된다고 한다. 그리고 고려시대의 것은 전기에만 묘지명(묘주의 이력을 적어놓은 금속판이나 석판)이 330여건이 되며 고려 전체로 비문까지 합치면 700종 정도가 된다고 조교수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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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봉사 대각국사비(僊鳳寺 大覺國士碑) 장식 고려 경북 칠곡군 숭오리 | |
사정이 이런 것을 미리 알고 이 학문에 뛰어든 것은 아니다. 조 교수는 좋은 은사를 통해 금석문이란 학문의 존재를 알게 됐고 그의 훈도로 저절로 이 길에 발을 들여놓게 됐다. 1959년 청명 임창순 선생을 도와 경복궁 회랑에서 고려 묘지명 탁본작업을 도운 것이 금석학과의 첫 인연이 됐다. 당시 그는 대학 1학년생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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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사 원응국사비(雲門寺 圓應國士碑) 고려 경북 청도군 신원리 | |
그후 신륵산, 행주산성 등 여러 곳의 비문 탁본에 따라 다니게 됐고 1970년 성대의 박물관 학예원 시절, 체계적인 구상하에 본격적인 탁본 작업을 시작하게 됐다. 그리고 이 작업은 1974년 원광대학으로 옮겨가고서도 계속 이어져 1983년까지 전국을 돌아다니며 1,200여종을 탁본했고 그중 782종을 가지고 한국금석문대계 전7권을 펴내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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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덕대왕 신종(聖德大王神鐘) 통일신라(771년) 경북 경주시 경주국립박물관 | |
작년에 성균관대학교 박물관은 조교수의 기증 자료를 가지고 「조선전기 금석문 탁본전」을개최했다. 이번 전시는 그와는 달리 고대와 중세의 문양에 중심을 두어 정리한 것이다. 고대의 자료는 문헌 자료만 부족한 것이 아니라 조형(造形)자료, 미술 자료도 턱없이 남아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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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사 동종 보살상(玉泉寺 銅鐘 菩薩像) 조선(1701년) 경남 고성군 북평리 | |
통일신라시대나 고려시대 전기의 한국미술 자료는 찾기가 매우 힘들다. 회화 자료는 거의 남아 있지 않고 조각과 공예쪽 자료도 영세하기 이를 데 없다. 이 전시는 없다고 하는 통념에 대한 반론일 수 있다. 탁본의 미덕은 복제에 있다. 현장에 직접 가지 않아도 그 느낌과 맛을 느낄 수 있다. 나아가 학문적 자료로 활용이 가능하다. 고대와 중세의 문양이라는 비인기 장르의 마이크로한 탁본 세계는 그런 점에서 이제까지 감지하지 못한 또다른 빅 월드로 통하는 문이 아닐 수 없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