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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가운 물속에서 다시 태어난 고려의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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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명 : 800년전의 타입캡슐 - 특별전 태안 마도 수중문화재 발굴성과 기 간 : 2010년 11월 23일- 2011년 2월 6일 장 소 : 목포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전시명 : 800년전의 타입캡슐
        - 특별전 태안 마도 수중문화재 발굴성과
기 간 : 2010년 11월 23일- 2011년 2월 6일
장 소 : 목포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그 배는 1207년 찬바람이 일기 시작하는 음력 10월부터 엄동에 걸쳐 전라도 남해안 일대, 예컨대 나주, 해남, 장흥 등지를 돌면서 개성에서 부탁받은 물목들을 차곡차곡 챙겨 실었다. 아마 해가 바뀌어 1208년 2월 하순 무렵이 되자 뱃전에 하나 가득한 짐과 함께 뱃머리를 북쪽으로 향해 항해길에 나섰던 것 같다.

마도1호선의 항로와 침몰지점

그리고 개성을 향해 연안의 섬을 따라 조심스레 나아가다가 아직도 바닷물이 차고 바람이 매섭기만 한 2월말과 아니면 3월초 그 험난하다는 난행량(難行梁)에서 험한 파도인지 아니면 세찬 물살인지를 이기지 못하고 그만 바닷 속에 가라앉고 말았다. 이 고려 조운선의 배 이름은 미상이며 船頭를 비롯한 몇 명인지도 모를 배꾼들은 그 이름 조차 전하지 않는다.

마도에서 본 안흥량
(난행량이란 이름은 안전 항해을 위해 안흥량(安興梁)으로 바뀌었다)
그로부터 799년이 지난 2007년 7월. 태안군 마도 앞바다의 한 고기잡이 어부 그물에 청자가 걸려 올라왔다. 이를 계기로 다음해인 2008년에 본격적인 조사가 시작됐다. 이 난파선은 태안 앞바다의 섬 이름을 따 마도 1호선이라고 이름 붙여졌다. 이 배에서는 곡식에서 생활 용구, 당시의 화물 수취관계를 말해주는 목간, 죽간 등 수많은 자료가 인양됐다. 그래서 전시 제목을 800년 만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타임 캡슐이라고 했다.
마도 1호선에서 인양된 죽간

죽산현에서 개경의 교위 윤방준 댁에 보내는 게 젓갈 4말 1항아리」
(竹山縣在京校尉尹邦俊宅上蟹醢壹缸入四斗)
「김순영 대장군 댁으로 보내는 토지 소출의 벼 6섬」
(金大將軍純永宅上田出租陸石)
「최낭중 댁으로 보내는 고등어젓갈 1항아리」
(崔郎中宅上古道醢壹缸)
「별장 권극평 댁으로 보내는 메주 20말, 송춘 보냄」
(別將權克平宅上末醬入貳拾斗 長宋椿)

이런 글귀가 적힌 죽찰(竹札)과 목간(木簡)이 이 배에서는 69점이나 발견됐다. 내용은 위의 글처럼 전라남도 나주, 해남, 장흥 등지에서 개성으로 보내는 화물의 내용, 즉 출항 날짜, 발신지, 수신지 화물 종류 등이 자세히 기록돼 있다. 특히 놀랄만한 일은 거기에 보이는 대장군 김순영, 별장 권극평, 동정 송수오 등이 모두 실존 인물이란 사실이다. 이들은 고려사에 등장하는데 모두 무신정권의 관료들이었다. 난파선에서 역사상 실존 인물의 이름이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별장 권극평 집으로 메주 20말을 보낸다는 목간,
마도 1호선 출토, 길이 29cm

그뿐 아니다. 죽간 자료에는 나락을 비롯해 조, 메밀, 메주 등 이름이 보이며 고등어젓, 게젓 등의 이름도 나온다. 개성의 존귀한 집안에서의 먹거리가 얼마나 풍성했고 이들이 어디에서 조달되었는가를 말해주는 자료가 아닐 수 없다.
청자철화 초화문 병 높이 27.8cm 청자 병 높이 24.9cm 청자철화 초화문 항아리 높이 13.7cm

어느 나라든 물속에 가라앉은 난파선은 ‘보물선’이란 낭만이 담겨 있다. 이 마도 1호선 역시 마찬가지이다. 실제 이 배에서 나온 청자는 무려 836점이나 된다. 하지만 바닷 속에서 인양된 청자라고 해서 모두가 ‘국보’는 아니다. 이 조운선은 국보급 청자보다는 대부분 생활자기를 싣고 있었다. 물론 개중에는 특별한 주문에 의한 것인지, 상감 모란꽃 문양이 곱게 새겨진 주전자와 음각으로 연꽃무늬를 하나 가득 새겨 넣은 매병같은 1급품도 약간 있었다.

청자상감 모란연꽃문 표주박형 주전자 높이 24cm
특히 잘 생긴 매병 하나에는 비스듬하게 죽간 하나가 꽂혀 있어 발굴팀의 눈을 놀라게 했다. 이 죽간은 갯벌 제거과정에서 글자가 씻겨 나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실험실로 옮겨져 정교하게 세척한 뒤 명문을 확인했는데 여기에 기막히게도 「중방 도장교 오문부 댁으로 보내는 상품 꿀을 가득 채운 단지(重房都將校吳文富宅上精蜜盛樽奉)」라고 쓰여 있었다.

청자음각연화문 매병 높이 39cm, 좋은 꿀이란 글귀가 보이는 죽찰

글귀대로 라면 고려 매병에 대한 몇 가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다. 즉 매병은 당시, 항아리를 뜻하는 준(樽)이라고도 불리웠다는 것 그리고 매병의 용도가 꿀과 같은 귀한 식재료를 담는 항아리였다는 점이다.

고려청자 외에 마도 1호선에서는 백자와 분청사기도 각각 3점과 1점이 발견됐고 도기도 50여점이 인양됐다. 그외에 당시 뱃사람들의 선상 생활에 사용되었음직한 국자, 망치, 숫돌, 청동 숟가락 대나무 젓가락 등도 발굴됐다.

마도 1호선 출토의 청동 숟가락과 대나무 젓가락

망치, 숟가락, 젓가락은 아무리 살펴보아도 낭만은 될 수 없다. 그리고 국보, 보물과도 거리가 멀다. 이들은 수 백년 전의 생활을 말해주는 자료일 뿐이다. 하지만 역사책 속의 고귀한 글자속에는 담겨 있지 않는 또다른 역사 자료이다. 비바람 속에 울렁대는 배와 함께 살았던 사람들, 그 주변의 장사꾼들 그리고 별미로 일 년에 한 번 밖에는 맛볼 수 없는 남도의 진한 젓갈을 기다렸던 개경 사람들의 살아있는 생활 역사자료인 것이다.

지금까지 국내에서는 십수 차례의 해저 유물의 조사 및 발굴 작업이 이뤄져왔다. 유명한 신안 보물섬이 있는가 하면 일반인들로서는 이름도 생소한 무안 도리포, 군산 비안도, 십이동파도, 보령 원산도 등의 해저유물 발굴도 있었다. 해저유물 조사라고 해서 언제나 낭만이나 보물을 연상시키는 난파선과 마주치는 것은 아니다. 해저 조사에 배를 건져 올린 것은 몇 번 되지 않는데 신안선 이후에 달리도, 안좌도, 안산 대부도 등지에서는 중국 배가 인양됐다. 고려 배는 완도의 목선, 태안 대섬의 고려청자 배 그리고 이번의 마도 1호선(부근에서 2호선도 나중에 함께 발견됐다) 정도이다.


글/사진 스마트K
업데이트 2024.10.29 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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