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측메뉴타이틀
  • 한국미술 전시리뷰
  • 공예 전시리뷰
  • 한국미술 도서리뷰
  • 미술계 이야기
  • On View
  • 학술논문 브리핑
타이틀
  • [김세린의 전통공예 이야기 ] 2. 입사마구의 세계
  • 2186      

말은 고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사람들의 중요한 운송수단 중 하나였다. 빠른 속도와 민첩성을 갖추고 있어서 일상에서는 물론 전쟁에서까지 현재의 자동차와 같은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하지만 사회 내에서 통용되던 높은 가치로 인해 사용할 수 있는 계층은 전시(戰時)를 제외하고는 상류층과 고위 무관으로 제한되어 있었다. 자연스럽게 말을 꾸미는 장식은 지금 우리가 자신의 자동차를 꾸미는 것처럼 꾸밈에 대한 개인의 미적 욕망과 사용할 때 편리함을 추구하는 편의성이 동시에 내재되었다.
여기에는 사회의 법식과 규범을 상징하는 표상, 당시 유행했던 문양소재, 재료, 신분을 상징하고 과시하는 위세가 모두 포함된다. 입사는 고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말을 꾸미는 기물인 마구(馬具)의 장식에 가장 많이 사용된 기법 중 하나이다. 마구는 사람들이 실제 타고 다닐 때 사용하기 때문에 내구성이 담보된 동, 철을 주요 재료로 사용했다. 또 신분과 지위에 따라 용이나 기린과 같은 성스러운 동물, 식물 등을 표현하거나 당시 귀한 재료로 인식되었던 금과 은을 기물의 표면 장식에 적극 활용했다. 그렇기에 이 재료를 기물의 제작과 장식에 모두 활용하는 입사는 당시 상류층의 마구 제작에 최적의 기법이었다.
오랜 시간 사람들의 삶에서 폭넓게 활용된 입사장식 마구의 세계는 굉장히 다채롭다. 앞으로 3주 동안 고대에서 조선시대까지의 대표적인 마구를 소개해보고자 한다.


<철제금은입사발걸이>, 통일신라시대 8-9세기, 황해도 평산 출토,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황해도 평산 산성리 통일신라시대 유적에서 출토된 <철제금은입사발걸이>(8-9세기, 국립중앙박물관) 한 쌍은 말안장에 사람이 앉을 때 발을 걸치는 용도로 사용된 마구이다. 말안장 양쪽 밑 중앙에 가죽끈을 단 다음 그 가죽끈의 끝에 발걸이를 연결해 사용하는 발받침대로 안전용구에 속한다. 말을 탈 때 발을 디디기도 하고 기수가 말 위에서 몸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말의 움직임을 제어할 때 사용했다. 발걸이는 통상적으로 형태를 통해 두 종류로 나뉜다. 사람의 발 중간에서 끝까지 모두 감싸 걸칠 수 있게 하는 주머니 형태의 호등(壺鐙)과 발만 걸칠 수 있게 골격만 있는 등자(鐙子)가 있다. 장식할 수 있는 표면이 넓은 호등은 화려하고 의례와 일상에서 많이 사용되었고, 등자는 일상은 물론 격렬한 기마전이나 사냥 등 실용성과 효율성이 강조되는 때에 주로 사용되었다. 공통적인 것은 입사를 통해 두 종류의 발걸이 모두 실용성은 물론 장식을 통한 상징과 위세, 꾸밈을 표현했다.


(호등 사례) <철제은입사도금운용문호등>, 조선 15-17세기, 가평출토, 국립중앙박물관


(등자 사례) <철제금은입사등자>, 고려 12-13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철제금은입사발걸이>는 이 중 호등에 속한다. 철로 제작된 이 발걸이는 안장과 연결하는 연결부가 위에 달려있고, 몸체는 주머니와 같은 형태이다. 표면에는 당시 성스러운 동물로 여겨졌던 천마(天馬)와 구름이 입사기법으로 장식되어 있다. 전에는 이 문양이 기린(麒麟)으로 추정되었으나, 현재는 천마라는 설이 지배적이다. 천마의 몸은 은으로, 구름의 선과 천마의 윤곽은 금과 은이 함께 감입되어 표현되었다. 또 주변에 용의 비늘도 함께 표현해 성스러운 분위기를 강조했다. 표현된 문양 전반적으로 경주 천마총(天馬塚)에서 출토된 천마도와 유사한 형식을 하고 있어, 신분이 매우 높은 사람이 사용한 마구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철제금은입사발걸이> 천마 문양 부분

이 유물은 통일신라시대 마구의 장식문화와 함께 통일 이전부터 이어진 신라의 공예문화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글/사진 관리자
업데이트 2024.11.13 07:50

  

SNS 댓글

최근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