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증 코로나19는 일상을 바꾸었다. 대한민국 서울 강북의 조용한 대학가에 사는 나의 생활도 바뀌었다. 날씨에 잘 대응하지 못하면 도지곤 하는 인후염이 몸을 괴롭히기 시작했을 때, 어린 시절 택시이름이었던 ‘코로나’ 감염증 확진자가 불과 1.6킬로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발생하였다. 콧물과 미열로 시작한 인후염은 병원에 들러 항생제를 처방받고 약간의 휴식을 취하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인후통’이라는 증상이 의심을 살 수도 있을뿐더러 누군가 자신이 감염증에 걸린 것을 모른 채 방문하였을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고 병원에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서랍에 넣어둔 약봉지에서 찾아낸 항생제와 물 그리고 이불을 돌돌 말고 누워 있는 방법을 택했다. 충분한 수분과 수면 그리고 시간마다 체온계를 물고서도 손에서 놓지 않은 것은 핸드폰이었고, 자다가 깬 희미한 눈앞에도 포탈의 주요뉴스는 손 안에 있었다. 같은 내용을 다르게 말하는 ‘글’로 세상이 읽혀졌다. 매일 이용하던 아침식사를 책임져주던 새벽배송 식품이 완전 매진된 사이트를 들여다보며, 감염증이 가라앉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던 시기에 주문한 마스크가 열흘도 훨씬 넘도록 “배송준비중”이란 글씨로 박힌 주문 사이트를 들여다보며 분노하였다.
여기에 더하여 밖을 돌아다니기에는 기운이 없는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미술관을 갈 수 없다는 현실은 극심한 상실감을 경험하게 하였다. 마치 이제는 사라져버릴 궁궐의 마지막 손님이 되지 못한 것처럼, 휴관에 들어가기 전날 방문한 지인의 사진이 올라온 페이스북 화면을 뚫어지게 들여다보았다. 마음의 안식처이자 직업상 갖는 약간의 긴장감으로 흥분과 놀라움, 즐거움, 안온함을 느끼던 주요 미술관이나 갤러리는 ‘잠정휴관’이라는 팻말을 인터넷 창에 띄운 채 일제히 문을 닫아 걸었다. 꼭 참석하여야 한다던 중요한 회의는 기약 없이 미루어졌다. 반드시 마스크를 착용하고, 공공건물 내에서는 할 수 없으니 컨퍼런스가 자주 이루어지는 음식점에 오라는 회의도 있었다. 그런데 마스크를 쓰고 앉아 있으니 말하는 것이 번거롭다. 길게 다른 사람과 앉아 있는 일도 그리 즐거운 일이 아니니 모든 결정이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회의를 마친 모두는 자신이 가야 하는 곳을 제시하며 총총히 발걸음을 옮겼다.
학자인 친구들은 모처럼 회의도, 수업도, 집안 대소사도 없는 시간을 맞아 독서의 즐거움을 누리는 듯 했다. 저마다 집밖에 나가지 않은 가정은 함께 밥을 먹고 수다를 떨고 함께 뉴스를 보았고. 어딘가에 맡겨질 수 없게 된 아이들은 집에서 장난감과 몸으로 놀고 있었다. 피아노를 능숙하게 치지 못하는 아이가 우리 아파트에 위 어디쯤 거주할 것이라는 추정도 며칠 전에야 하였다. 아이가 집에 없었든, 내가 집에 없었든 우리는 시간을 비켜갔을 터이지만 이제 그 아이는 어제도 오늘도 건반을 마음껏 요리하고 나는 그 소리의 다채로움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외출이 없는 삶은 멋진 옷이나 구두의 무용성을 깨닫게 한다. 나는 뽀송뽀송하고 색이 좋은 수건을 인터넷으로 주문했다. 이미 넉넉히 갖추고 있음에도 새삼 얼굴에 닿는 부드러운 감촉의 세수수건을 욕망했다. 유투브를 통해 6년도 지난 드라마가 얼마나 흥미진진한 것이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핸드폰에 최적화되어 단순한 배경에 소수의 출연진, 사건 중심의 전개로 구성된 웹드라마는 다음 회를 기다리게 하였다.
감염증이 바꾼 일상. 하루에 영화를 몇 편씩 보아도 ‘영화를 보고’ 싶었다. 곰곰 생각해보니 영화관에 가고 싶은 것이었다. 영화관보다 미술관에, 갤러리에 가고 싶었다. 누워서 체온계를 물고서 핸드폰 안에서 세계의 명화들을 불러모아 들여다 보았다. 좋아하던 작품들을 들여다보면서 새삼 깨달았다. 내가 열망한 것은 단독의 멋진 작품이 아니라 전시였다는 것을. 작품이 걸린 그 벽을 사랑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고백을 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작품을 재배열하고 여기저기 복선을 던져 의미망을 형성하는 그 바다와 같은 공간, 던져진 작품들 속에서 그물을 던져 끌어올린 개념의 맛을 그리워하고, 정갈하지만 진미가 잘 어우러진 정찬과 같은 전시장에서의 그 발걸음을 그리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미술관 휴관은 전시의 풍요로움을, 확산하는 감염증 소식 속에서 죽음 앞에서 예술이란, 미술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였다. 그런데 전시를 보고 싶다면… 만들면 되지 않을까?
웹 전시 “The Peaceful warriors in Museum”이라는 제목은 노트북을 끌어안고도 펼칠 기운이 없던 그 시간에 저 멀리, 35년 전 기억에서 솟아난 책의 제목에서 따온 것이다. 체조선수인 화자(話者)가 사고를 이기고 육체와 정신의 균형을 맞춘 행복을 찾아가는 여정인 『Way of the Peaceful warrior』는 밥 먹는 행위마저 일종의 정신수련이라는 것을 알려준 책이었다. 우리의 일상은 어떻게 대응하는가에 따라 다른 삶이 펼쳐지는 것이다. 그 소설과 같은 실화에서 건져올린 진리의 생생함이 30년을 넘어서야 솟아오르다니.
감염증은 A.카뮈의 「페스트」도 소환하였다. 그 책은 청소년기의 기억 속에서 걸어 나와 장면장면이 눈앞에 영상처럼 펼쳐졌다. 로마시대 전염병으로 죽은 시신을 처리하던 도시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노예청년부터 병색이 드러나기 시작한 가족이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던 중산층의 모습 등이 영화처럼 눈앞을 지났다. 포비아를 만들어낸 병은 어느 순간 지나고 우리의 일상은 다시 시작될 것이다. 하지만 일상은 미미할지언정 더 이상 ‘회복’이 아닌 다른 생활을 지칭하는 것이 될 것이다. 물리적인 변화를 넘어서게 하는 도구를 가진 인류는 물질을 넘어선 다른 세상을 구축해나갈 것이다.
〈The peaceful warriors in museum〉은 코로나19의 시간에 조성된 전시장이다. 이 전시에는 4명의 작가를 초대하였다. 서울에 거주하는 김홍식, 뉴욕에 거주하는 박유아, 런던에 거주하는 신미경, 파리에 거주하는 윤애영이 그들이다. 내가 아는 이들은 지상 어디에서나 다를 바 없는 모습이고 어느 전투에서나 삶의 법칙은 유사하겠지만, 그 전장에서 결코 물러선 적이 없던 이들이다. 생의 전투, 고양된 삶을 위해, 상투적인 망에 걸리지 않기 위해 치열한 전투를 벌이는 작가들은 자신의 충만한 전장터인 삶을 조망하는 작품을 내곤 하였다. 이들은 모두 한국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교육받고 서울, 뉴욕, 런던, 파리라는 대도시에서 작가로서 살아간다. 이들은 숨을 고르며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에 미소를 보내곤 한다. 마치 평화의 전사(a peaceful warrior)처럼 목표를 향해 가는 길 자체가 행복임을 알기 때문이다.
작가란 때로는 영적인 고양된 삶을 위해, 일상의 상투적인 망에 걸리지 않기 위해 모든 것을 거는 이들이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4인의 작가는 치열한 생의 전장에서도 결코 용기와 관용 그리고 앞으로 나아감을 거두어들인 적 없는 이들임을 알고 있다. 그들과 나 또한 결코 비켜갈 수 없는 전장(戰場)인 미술관에서, 갤러리에서 내가 아는 이들 작가는 결코 물러선 적이 없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고, 학교를 다니며 공부를 하고, 인생의 고난 속에서도 작가임을 포기한 적이 없다는 말이다. 어둠 속에서 빛이 생명을 얻고, 죽음 앞에서 생의 의미가 강해지듯 하루하루를 전쟁처럼 지내온 이들 작가는 어려움이 밀려올 때 그 무게만큼 강해지고, 욕심을 떨치는 만큼 가벼워진 마음을 지닌 이들이다. 이제 이들은 손금을 돌아보던 눈을 들어 세상을 둘러보는 것 같다.
미술관 안에서 비켜가는 시선, 이미지를 채집하는 인간의 욕망을 포착해온 김홍식은 미술관 안의 <대화>를 통해 사람과 사람이, 과거와 현재가, 물질과 정신이 만나는 지점을 보여준다. 이를 테면 마네의 <피리부는 소년> 앞에 선 교복 입은 소녀들과 그림 속 소년은 마치 하이틴 소설 속 주인공처럼 낭만적으로 보인다. 시간을 넘어 사람을, 감정을 그리고 물질을 넘어선 세계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불화 앞에 앉은 이들, 청년을 바라보는 깨진 뒤통수의 불상은 누추한 삶의 이면에서도 강하게 빛나는 정신의 힘에 마음을 두게 한다.
동양화를 전공한 박유아의 드로잉은 매혹적이었다. 조각적 설치는 마음을 훔치는 미장센이 넘치는 작품들이었는데 그런 그가 고기 피를 손에 바르고 던지고 피범벅을 하며 악을 썼었다. 그리고 얼굴 없는 부부들, 그들의 관계를 그리던 그가 새로이 보여준 작품은 <위버멘쉬>이다. 자기를 초극하는 힘에의 의지라는 뜻을 지닌 위버멘쉬는 초상화 작품이다. 이들은 어린 시절 한국을 떠나 외국에서 생활하는 입양아들의 성장한 모습이다. 그 힘든 시절을 지나온 그들의 얼굴을 그대로 드러냄으로써 ‘살아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영국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서울에서도 작업하는 신미경은 비누를 작품재료로 사용하여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그의 조각은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보는 오래된 조각상에 기초한다. 그는 서양에 살며 동양인이 자신이 처한 상황은 ‘번역’이란 언어에 해당하는 것만은 아님을 알았다. 문화란 결코 번역될 수 없는 것임을 아주 똑같이 조각한 비누조각을 통해 투영한다. 똑같이 주조한 조각상이 화장실에서 비누로 쓰였을 때 다른 모습이 되는 과정을 조망한 ‘화장실 시리즈’에는 불상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성과 속을 넘는 그 경계에는 ‘비움’이 관건인 것이다.
윤애영은 미디어와 퍼포먼스 작가이다. 그의 반짝이는 전구 앞에 있노라면 어린 시절 크리스마스의 추억부터 깊은 심연의 고독까지 우리를 무한한 공간으로 쏘아 올린다. 차가운 전구들은 갈래갈래 전선으로 이어져 있다. 그 선들은 빛나게 하는 힘이자 관계를 의미할 것이다. 아무 것도 쓰여있지 않은 책에 이어진 차가운 불빛은 왠지 쓸쓸하다. 잃어버린 추억은 과거의 상처에서 기인하지만 비록 소 안에 없더라도 결국 삶을 형성하는 일부임을 말한다. 푸른 전구로 가득한 그의 정원을 서성이노라면 장자의 꿈처럼 인생은 참 별 것 아니다란 소리가 귀속에 쟁쟁하다.
〈The peaceful warriors in museum〉은 미술관에 가고 싶은 마음들이 만든 전시이다. 자리에 누워 생각한 말들을 메신저로, 카톡으로 쏟아냈을 때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은 한결같이 “가슴 뭉클함”이란 표현으로 답했다. 그 뭉클함과 연대감의 탄생은 실지 물질로 제작한 작품으로 채우든 이미지로만 채우든 변함없는, 전시(展示) 덕이었다.
온라인 전시 사이트 https://www.sixshop.com/bluec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