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정(미술평론가)
화상에서 콜렉터로
미술작품이 지고지순한 감상적 예술만이 아님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비엔날레가 미술가들의 경연대회라면 아트페어는 작품을 사고파는 시장판이다. 아트페어에는 이른바 팔리는 작품들이 나오기 때문에 현재 어떤 미술작품이 사람들에게 호감이 가는지 알 수 있는 좋은 장소이기도 하다. 주변 관광지와 별반 연관이 되지 않는 스위스의 중소도시 바젤에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은 단순히 미술작품을 보고, 구입하기 위해서이다. 2007년도에는 스위스 바젤아트페어, 이태리 베니스비엔날레, 독일 카셀도큐멘타와 뮌스터조각프로젝트 등이 거의 동시에 개최되어 많은 수의 세계인들을 유렵으로 불러들였다. 이들 중 순수한 예술진흥 프로그램이 아닌, 이른바 그림시장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 것은 그만큼 미술계에 바젤아트페어의 위력이 대단함을 증명한다. 그리고 2017년 그 장은 다시 한번 재현된다.
단순히 바젤아트페어를 보기 위하여 스위스에 들르게 만드는 이 행사가 시작된 것은 1969년이었고 그 탄생과 전개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이는 에른스트 바이엘러(Ernst Beyeler, 1921-2010)였다. 그는 대학에서 경영과 미술사를 정식으로 공부하였는데 1945년 자신이 근무하던 서점을 인수받아 개조하여 갤러리로 만든 뒤 굴지의 화상이 되었다. 스위스의 '왕위에 오르지 않은 황제'라 불리는 에른스트 바이엘러는 바이엘러갤러리를 운영하며 바젤을 국제적인 미술도시로 자리매김하였다. 뿐만 아니라 작품을 사고 파는 중에도 팔지 않았던 자신의 소장품을 위하여 재단을 설립하고 건물을 만들어 미술관을 운영하였다. 그의 정밀하고도 상업적인 직관력은 미술관이 없다면 아무도 찾지 않을 작은 도시 리헨(Riehen)에 바이엘러재단 미술관을 건립하게 했다. 미술관을 찾아 시골길을 달려가며 사람들은 말한다. “이런 곳에 별장 하나 있으면 정말 좋겠다!”
하나하나 상상을 초월하는 가격의 작품들을 즐비하게 늘어놓은 그의 갤러리와 미술관에서 황제 바이엘러를 눈으로 찾곤 했었다. 사람들이 북적이며 담소하는 오프닝파티가 한창인 미술관의 한 구석 소파에서 카탈로그를 읽고 있는 90이 가까워보이는 노인을 본다면 그가 바로 바젤의 한 철도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미술계의 황제가 된 이, 에른스트 바이엘러가 아닌가 의심해볼 일이었다. 그렇게 소박하게 자신의 갤러리에서 삶을 즐기던 그도 2010년 평생을 함께한 반려자이자 콜렉션의 기쁨을 함께 한 힐디(Hildy, 1922-2008)의 곁으로 갔다.
Ernst and Hildy Beyeler
작품에 맞는 집
바이엘러재단 미술관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건축 자체에 있다. 프랑스 퐁피두센터와 미국의 메닐컬렉션을 설계한 렌조 피아노가 지은 또 하나의 미술관 건물로 규모는 앞의 것들에 비해 대단하지 않지만 두 건물의 특징을 모두 겸비한 것이다. 건축주 바이엘러는 메닐콜렉션에서 보여준 힘이 있지만 고요하며, 퐁피두센터처럼 도심 속에 있지만 결코 웅크린 것이 아닌 펼쳐진 이미지의 미술관이 지어지기를 희망했던 것이다. 건축가 렌조 피아노는 건물 안에 담길 미술작품이 자신의 가치를 최대한 살릴 수 있는 절제되고 세련된 미술관을 짓기 위하여 외부 환경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평온한 공간구성을 표현해내려 하였다. 그리하여 전시장 전체는 고요하며, 전시작품의 특징을 반영한 개념적인 공간인 동시에 전시작품과 외부와의 관계가 명료히 드러나게 되었다. 보는 경험보다는 보여지는 경험을 창출하려는 의도이므로 건축 자체가 예술성을 드러나게 하기 위한 도구로 자리잡은 것이다. 즉 작품을 방해하지 않는 단순성, 예술성을 잘 드러내기 위한 재료와 공법의 사용 등이 바이엘러재단 미술관 건축의 특성이다.
미술관 진입로
자동차가 오가는 대로변에 있는 입지를 고려하여 벽을 둘러 개인 저택처럼 공간을 은폐함으로써 관람자를 유도하여 자못 번잡할 수 있는 단점을 보완하였다. 정문을 들어서자마자 정면에는 넓은 잔디밭이 한눈에 들어오고 오른쪽으로 폭이 좁은 출입구로의 동선을 유도하여 사선벽을 따라 경사로로 내려가며 작품감상을 위한 마음의 준비를 하게 하였다. 관람자가 땅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주어 작품을 겸허한 마음으로 만나게 하는 장치인 것이다. 커다란 유리로 된 현관 안에 들어서면 왼쪽은 전시공간, 오른쪽은 미술관에 관계된 책이나 예쁜 물건을 살 수 있는 뮤지업샵이나 가방이나 옷을 맡기는 서비스 공간을 두어 엄격히 미술을 위한 공간을 구분하였다. 이러한 공간구성은 미술관의 주인이 미술작품이라는 사실을 강하게 드러낸다.
건물의 중앙이 되는 현관 좌측에는 동양적인 정취가 물씬 풍기는 연못을 두어 유리로 된 자코메티의 방에서 내다보면 연못이 하나의 그림처럼 느껴진다. 전시장은 추상표현주의방, 몬드리안방, 자코메티방 등을 중심에 두었고 서쪽 갤러리는 전면이 유리이며 윈터가든에는 아프리카조각을 배치하였다. 기다란 직사각형의 평면으로 구성된 셈인데 외부에서 지루하게 보이지 않은 것은 다층의 지붕의 높이를 이용한 탓이다. 미술관 건물의 지붕은 가히 첨단인데 자연채광을 위하여 내부에서 빛의 양을 조절하는 기능까지 갖추고 있는 것이다.
책 속의 그림들
화상인 힐디 바이엘러와 에른스트 바이엘러 부부는 50년 동안 현대미술작품을 수집하였다. 그들은 작품을 구입하고 또 다시 팔고 하는 화상이었으므로 다양한 그림들을 만났다. 그리고 그 중에 그들의 취향에 맞는 것을 구입하여 소장하였는데 얼마나 많은 작품을 가지고 있는지 세상에 알려진 것은 바이엘러재단을 설립한 1982년 이후인 1989년 스페인 마드리드의 레이나 소피아미술관에서 전시를 했던 때였다. 그동안 바이엘러는 작품을 아주 ‘효과적으로’ 관리했는데, 그 방식은 미술관에 작품을 대여해주는 것이었다. 개인이 소장한 작품은 분실이나 도난의 우려도 있었고, 채광과 습도 등 물리적인 환경도 개인 차원의 공간보다는 더욱 좋은 미술관을 택함으로써 작품의 안전을 기한 것이다. 나아가 소장자가 누구인지를 작품의 이름표에 붙임으로써 스스로 세계적으로 소장가로서의 바이엘러가 홍보되는 셈이었다. 가히 화상다운 합리적이고도 실리적인 처분이었다.
바이엘러재단 미술관의 콜렉션은 개인 소장치고는 미술사에 등장하는 화가들의 대표작이 즐비하기로도 유명하다. 서양미술사의 대표적인 주자들과 이와는 상반되게 아프리카, 알라스카, 오세아니아의 조각 등 다채롭다. 현대작품들은 회화작품이 주를 이루는데 소장자의 기호가 회화에 있는 탓이지만, 한때 인기가 떨어졌던 회화가 세계적으로 다시 주목받는 상황을 인지한다면 역시 화상의 안목이 다르긴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바이엘러미술관 피카소의 방 전경
작품을 위한 미술관인 만큼 관객이 가장 쾌적한 상태에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하는 배려가 곳곳에서 발견된다. 그러한 배려는 또한 작품을 이해하게 하는 기초가 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모네의 그림은 연못에 연꽃과 연잎과 물과 빛이 어우러져 형태가 사라지고 빛과 찰랑임만이 남아 ‘어느 게 물이고 어느 게 꽃인가’ 하는 무아지경을 경험하는 작품이다. 그런데 그러한 경험을 하려면 작품 앞에서 주시해야 할 것이다. ‘주시’의 기회를 주기 위하여 모네 작품이 있는 방은 길고도 아주 푹신한 백색의 소파가 작품을 향하고 있다. 앉아서 편히 작품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아주 유사한 두 작품을 나란히 배치하여, 서로 어디가 어떻게 다른가 하는 숨은 그림찾기 식의 재미도 느낄 수 있다.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사람들만을 위한 공간만이 아닌 친절함을 갖춘 곳이 바로 바이엘러재단 미술관인 것이다. 이 정도면 세계적인 화상이 어떤 마음으로 고객을 대하였고 작품을 어떻게 생각하였는가 짐작할 수 있다.
앙리 마티스 <파랑 1> 1952
연못을 바라보는 자코메티의 인간상들은 햇빛 아래 흐느적거리며 걷는 현대인의 자화상을 보는 듯하다. 푸른색의 색종이를 잘라 붙인 듯한 마티스의 누드는 인체가 단순히 면으로도 표현됨을, 그 단순함의 아름다움을 일깨워준다. 바이엘러의 소장품 중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피카소의 작품은 입체주의가 어떻게 가능한지를 일러주는 기초적인 그림에서부터 그 해체된 형태의 아름다움을 맘껏 드러내는 작품까지 있다. 로드코, 폴락 등 현대 미국 작가의 작품들과 뭉크의 정신적인 작품들은 이제 막 미술사 책에서부터 밖으로 나와 관람객에게 말을 거는 듯 생생하고도 가깝게 그곳에 있다. 이러한 생생함의 가장 큰 이유는 자연 채광 아래 작품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일 때문일 것이다. 그림이 상하지 않는다는 엄청 비싼 전구 아래서가 아닌 자외선을 제거한 자연광 아래서 화가가 그리던 그때 그 방식으로 보는 방식을 통해 그림을, 자연을 본다. 비록 붉은 자켓 입은 자원봉사자들의 감시 눈길이 살벌할지라도 작품을 애지중지 가두어 놓는 다른 미술관에서는 느낄 수 없는, 작품을 대면하는 자유를 맛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