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정(미술사가, 미술평론가)
스웨덴의 황태자 경주에 오다
스웨덴은 바이킹의 후손이 세운 나라답게 많은 신화와 전설이 존재하는 곳이다. 이러한 북구 신화의 주인인 스웨덴은 현재 사회복지가 가장 잘 된 나라 중 하나이다. 선사시대의 유적도 많아 근대 이후에는 고고학이 발달한 나라이고 디자인을 비롯한 서비스 산업이 발달하였고 세상에서 제일 먼저 안전한 3점식 안전벨트를 개발한 자동차 볼보를 생산하는 나라이다.
나폴레옹이 위대한 유럽을 꿈꾸며 전쟁에 나섰을 때 스웨덴은 영국의 동맹국으로 나폴레옹 전쟁에 참여하였다. 당시 황제였던 구스타프 4세는 가면무도회에서 암살당한 구스타브 3세에 이어 등극하였지만 정치적 무능력으로 함께 다스리고 있던 나라 핀란드를 1808년 러시아에 양보해야만 했다. 이듬해 그는 퇴위하였고 나폴레옹 휘하에 있던 프랑스 육군원수 장 바티스트 베르나도트가 황태자로 임명되어 카를 요한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그는 1818년에 카를 14세로 등극하여 새로운 왕조를 열었다. 나폴레옹의 파혼한 약혼녀에서 스웨덴의 황비가 된 여인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 〈데지레〉에 등장하는 마르세이유 비단상인의 딸 데지레가 바로 카를14세의 황비이다. 이후 스웨덴 왕가는 이들의 자손들로 이루어져 있다.
경주 노서동 129호분은 일명 ‘서봉총(瑞鳳冢)’이라고 한다. 이 고분에는 기념비가 하나 서 는데 스웨덴의 황태자가 발굴에 참여하였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사실은 이렇다. 베르나도테 왕가의 여섯 번째 국왕 구스타프 아돌프6세가 되기 전 황태자였던 구스타프 공작은 첫 부인을 잃고 1923년에 재혼을 하였고 새로운 황태자비와 신혼여행을 겸하여 일본을 여행하였다. 그런데 마침 경주에서 조선총독부 주재로 고고학 발굴이 진행중이던 때라 일본은 고고학자인 그에게 발굴에 참여하여 추억을 만들라고 초청하였다. 일본에서부터 조선에 온 스웨덴 황태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고분에서는 금관이 출토되었는데 세 마리의 봉황장식이 있었다. 그래서 이 고분의 이름을 스웨덴을 의미하는 한자 ‘서(瑞)’와 봉황의 ‘봉(鳳)’자를 써서 서봉총이라 하였다. 북구의 나라 스웨덴이 우리에게 익숙해진 동기가 바로 이 서봉총 발굴이다. 흑백사진 속 멋진 외모의 황태자 고고학자가 들여다보고 있는 고분은 우리 고대 지배자의 무덤이었고, 그 발굴의 주체는 우리가 아니라 식민지 조선을 운영하던 일본이었다. 우리 의사와는 아무런 관계없이 이루어진 황태자의 발굴 참여와 서봉총이라는 고분 이름은 지울 수 없는 식민지의 상흔이다.
서봉총 발굴에 참여한 스웨덴 구스타프 황태자
나라와 나라를 잇는 다리
스웨덴은 여름이면 한밤중에도 해가 중천에 떠있는 백야에 시달리며 거의 잠을 잘 수 없는 나라이다. 하지만 스웨덴의 남쪽은 북구에서도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어서 쾌적한 공기와 밝은 햇빛을 즐길 수 있다. 스웨덴 최남단에 위치한 말뫼는 스웨덴 제3의 도시이다. 그야말로 날이 맑으면 덴마크 땅이 보이는 외레순 해협을 사이에 두어 덴마크에 인접한 도시다. 이 도시의 똑똑한 젊은이들은 아침이면 기차를 탄다. 직장에 가기 위해서이다. 기차 안에서 책이라도 들여다보려다 무심히 고개를 들면 차창을 지나는 풍경에 소스라칠 것이다. 오른쪽도 푸른 물, 왼쪽도 푸른 물이 끝없이 이어진다. 기차가 바다 위를 지나고 있는 것이다. 기차가 지나는 8킬로미터 길이의 다리는 덴마크의 코펜하겐으로 이어진다.
말뫼에 살면서 덴마크 코펜하겐의 IT 관련업체에 취직하는 인구가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이웃 나라에 있는 직장에 기차를 타고 40분이면 도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코펜하겐에는 많은 박물관과 미술관 그리고 디자인 전시장 등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주변 환경은 경관 좋고 날씨 좋은 스웨덴의 말뫼를 변화시키는 요인도 되고 있다. 신재생 에너지로 공급되는 ‘City of Tomorrow’ 공단은 아름다운 해변을 오염시키지 않고 쾌적한 환경을 유지하면서 건물도 조화로운 지역으로 이제 말뫼는 세계적인 주목의 대상이 되고 있다.
16세기에는 덴마크의 식민지였던 말뫼에는 덴마크 왕인 크리스티안 3세가 쌓은 붉은 벽돌의 성이 있다. 말뫼후스가 그곳인데 이곳에는 미술관, 박물관 수족관 등이 밀집되어 있고, 여름이면 세계적인 축제인 말뫼페스티벌이 열린다. 광장 곳곳에는 각 나라에서 온 뮤지션들이 공연을 하고 흥겨운 시간이 날에서 날로 이어진다. 이 축제의 성격은 흥겨우나 질서가 있고, 소박하다. 이러한 스웨덴적인 특징은 말뫼에 있는 미술관에서도 그 모습을 드러낸다.
말뫼의 City of Tomorrow @@Malmö City of Tomorrow
넓고도 넓은 미술관
자연을 수용하면서도 커다란 공간에서 마음껏 호흡하고 즐길 수 있는 곳, 바로 Malmö Konsthall이다. 이곳의 레스토랑은 아름다우면서도 음식이 좋은 곳으로 미술관과 레스토랑이 조화된 곳으로도 유명하다. 물론 이곳은 옆집 예술의 이름으로 터무니없이 비싼 음식 값을 자랑하는 곳들과는 다르다.
말뫼 미술관의 레스토랑 @Malmö Konsthall
1975년에 문을 연 미술관은 1994년에 대대적인 수리를 거쳐 완성된 스칸디나비아에서는 가장 큰 규모의 미술 전시장이 되었다. 미술관 전면에 획일적으로 빛이 들어오고 일정하게 새로운 공간을 파티션하여 이용할 수 있다. 미술품 보호를 위하여 건물 전체를 두껍게 둘러싸는 권위적인 미술을 위한 미술관 건물이 아니라 미술을 생산하고 즐기는 사람들을 위한 미술관 건물인 것이다. 최대한 노출된 실내는 유리를 통해 광선이 투사되고 전시실의 벽은 끝없이 이어지고, 천장은 방형격자의 연속으로 인해 모눈종이를 보는 듯 하다. 이 천장으로부터 자연광과 인공조명이 어우러져 실내를 비춘다. 건축가인 Klas Anshelm은 환상적인 빛과 유연한 공간 그리고 엄청난 크기의 현대미술을 위한 장소를 창안해내었다. 건물 전체는 아주 단순한 재료로 건축되었는데 콘크리트, 유리, 나무와 알루미늄 그리고 빛이 전부였던 것이다. 파리에 있는 콘스탄틴 브랑쿠지의 아틀리에를 방문하고 영감을 받았다는 건축가의 작품답게 단순하면서도 북구의 백야를 건물 안에 끌어들인 현대적인 건물이 되었다.
유리 파사드 @Malmö Konsthall
전시장은 크게 세 영역으로 구분된다. 주요 전시장과 작은 전시가 이루어질 수 있는 공간 그리고 비디오와 영화, 음악, 시, 강연 등에 이용되는 C홀이 그것이다. 말뫼 미술관의 콜렉션은 근, 현대미술에 집중되어 있어서 이른바 모더니즘의 고전적인 작품부터 현재진행형의 동시대 미술까지 소장되었다. 소장품전은 주로 주요전시장에서 이루어지는데 세계적인 작가들과 스웨덴 작가의 작품들이 있다. 어느 나라나 세계적인 작품과 자국의 작품을 함께 소장하여 세계미술사에 편입시키는 작업이 미술관을 통하여 공공연히 이루어지고 있는데, 말뫼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결국 세계적인 작가의 작품을 구입할 수 있는 경제적인 능력과 안목은 자국의 미술가를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오르게 하는 지름길인 셈이다.
천장 조명 @Malmö Konsthall
전시실의 마루바닥 @Malmö Konsthall
근현대미술의 수장고
말뫼 미술관의 가장 큰 콜렉션은 스췰(Schyl)부부의 수집품이다. 유럽 유수의 전시에 작품을 빌려줄 정도인 이 콜렉션은 안목높은 개인 수장가의 열정적인 세계를 보여준다. 자국의 전도유망한 작가에서부터 동양의 작가에 이르기까지 선택된 작품들은 무조건 작가의 명성만으로 선택된 것은 아니다. 이들은 수집가의 눈에 든, 그들의 인생관을 드러내는 작품들인데 일견하건대 고요하고 철학적인 북구 특유의 사유체계가 녹아 있거나 자신을 성찰하는 작품에 많은 애정을 기울이고 있다.
로버트 야콥슨의 유머 넘치지만 철조에서 아주 중요한 미술사적 의미를 지니는 인체조각, 바바라 크루거의 비닐에 실크스크린으로 인쇄된 광고물처럼 보이는 거대한 초상, 기대주의자인 르 코르뷔지에의 서정적인 작품, 리처드 롱의 조각난 돌로 구성된 원 등은 물론 스웨덴 출신 작가로 세계적으로 이름난 올덴버그의 튜브로 만들어진 작품도 있다. 리처드 세라의 철판 작품, 신디 셔먼의 사진 등 세계적으로 이름난 작가의 작품에다가 폴란드 출신 미로슬라브 발카의 개념적인 작업도 있다. 현대인의 무거운 존재의식이 강조된 레온 골럽의 <죄수들>(1989)은 이 작가 특유의 황금빛의 배경과 마티에르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일찍이 작품 수집자가 작품 보는 눈이 얼마나 뛰어났는가를 자랑하는 듯하다. 그런데 이 작품들은 현재 말뫼현대미술관이 지어질 것을 기다리며 수장고에서 잠자고 있다. 지금의 말뫼미술관은 대규모의 성공적인 전시들을 끌어들여와 보여주는 전시장의 역할에 치중하고 있다.
너무나 현대적인 건물이 위압적이 않은 것은 스웨덴의 사회복지 시스템처럼 인간을 염두에 두기 때문이다. 미술관은 작품을 가두어 놓고 돈을 지불하는 이에게만 고아한 모습을 드러내는 인형의 집이 아니다. 미술작품을 위하고 그보다 인간이 미술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 그리하여 작가의 세계가 관람자들에게 충분히 전달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말뫼의 미술관은 건물에 단순하고 쾌적한 공간과 하늘을 끌어들임으로써 우중충한 이미지의 스웨덴을 벗어버리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