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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덴마크 루지아나미술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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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조은정(미술사학자, 미술평론가)


바닷가로 난 길을 따라

안데르센은 세계 어린이들에게 동화의 나라를 보여준 사람이다. 인어공주의 슬픈 사랑이야기에서부터 사치와 허영, 어른들의 비열한 의식을 풍자한 벌거벗은 임금님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도 수많은 이야기로 어린들이들에게 꿈을 심어주었다. 오덴세 안데르센 기념관에서는 이 동화작가가 그림을 그리고 종이를 오려 이야기 극을 만든 작품들을 볼 수 있는데, 그 뛰어난 실력에 깜짝 놀라게 된다. 안데르센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동원된 이미지의 역사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안데르센의 나라 덴마크는 아직도 한밤중에는 아들에게 복수를 부탁하는 햄릿 아버지의 망령이 돌아다닐 것 같은 햄릿성이 있고 바닷가에는 비록 조각상이지만 인어공주가 앉아 있는 그런 곳이다. 여왕이 있고 왕자가 결혼하는 동화 같은 나라 덴마크는 불과 100년 전만 해도 유럽에서 가장 못 사는 나라 가운데 하나였다. 그 가난의 흔적은 그들의 검소하기만 한 식탁에 차려진 음식에 남아 있다. 헌데 덴마크는 오늘날 디자인의 나라로 일컬어진다. 가장 멋진 가구를 디자인하고 세계적인 디자인 스쿨이 있는 나라다. 더불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술관이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휴렌백이라는 작은 마을은 휴가철이나 주말이면 정기적인 시간에 북적댄다. 바로 기차가 들어오는 시간이다. 기차 하나 가득 있던 사람들이 모두 이 작은 역에서 내려 모두가 무엇이 이끄는 것도 아닌데 한 방향을 향해 걷는 것은 정말 특이한 일이다. 작은 오솔길을 지나고 꽃들이 피어있는 누군가의 정원도 지나면 네모난 마당이 있는 단아한 집 한 채를 만난다. 이곳이 누군가의 개인 집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마당에 있는 조각 작품 때문이다. 무어의 거대한 와상이 월터 드 마리아의 조각이 그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마당 가장자리에 누워 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입장료를 지불하는 카운터가 있고, 책이며 예쁜 그릇을 파는 뮤지엄샵으로 연결된다. 이곳이 미술관이 맞나 하는 생각을 갖고 입구를 지나 마치 방에서 방으로 이어지는 듯한 작은 문을 지난 벽면에는 조금은 꾀죄죄해 보이는 그림이 몇 점 걸려 있다. “흠, 이건 세계적으로 가장 비싼 그림의 주인공인 로스코의 작품?”. 
  
  늪지와 바다가 있는 미술관

루지아나 미술관을 찾는 재미는 바로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들어선 공간에서 시작된다. 이곳은 거대하고 지나치게 건축적으로 아름다운 건물의 위용에 눌려 발걸음도 조용조용, 표정도 경건하게 하는 곳이 아니다. 지나치게 높거나 지나치게 비싼 재료로 발라진 건물이 아니라 그저 마실 나선 이웃집처럼 담쟁이덩굴이 벽을 감싸고 자연과 어우러져 있는 지붕 낮은 그런 곳이다. 그런데 정작 벽에 걸리거나 누워있는 미술품 하나하나가 주옥같은 그런 곳이 또한 루지아나 미술관이다.

루지아나 미술관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덴마크 출신의 미술가들의 콜렉션이 바탕이 됐다. 야콥 요한센과 그 친구들의 작품을 수집하고 전시하기 시작한 것이 현대미술사에 등장하는 여러 작가들의 주요 작품을 컬렉션하면서 거대한 현대미술의 보고가 되었다. 피카소, 아르퉁, 슈나이더 등 현대추상작가부터 무어, 칼더 등 들어봄직한 이름의 세계적인 작가 작품이 무궁무진,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 흔한 바리케이드 하나 없이 관객을 맞고 있다.


이들 작품을 보려면 긴 복도를 걷기도 하고 가끔 엘리베이터를 타기도 하고 또 오솔길을 걷기도 한다. 이렇게 건물이 연결되는 특성은 한 번에 거대한 프로젝트에 의해 완성된 미술관이 아니라 꾸준히 지어지고 지금도 자라나는 곳이기 때문이다. 1958년에 문을 연 미술관 건물은 1966년, 1971년, 1976년, 1982년, 1991년, 1994년, 1998년에 이르기까지 계속 확장되고 덧붙여 지어졌다. 그리고 2003년부터 2006년까지는 전체를 다시 현대화하였다. 

한 걸음 한 걸음 서서히 진행하는 자세만큼 나무로 지어진 곳, 시멘트로 지어진 곳 등 기능과 장소에 맞게 충실히 지어졌다. 루지아나 미술관에는 멋진 건물을 지어 개막행사를 가지려는 야심찬 계획도, 많은 돈을 들여 세계적으로 이름난 미술관을 자랑하려는 허세도 없다. 그저 바닷가의 야트막한 구릉에 지세에 맞게, 미술작품을 감상하기에 적합한 환경을 주기 위해 최소한의 인공을 기울여 임시건물이라도 지은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자코메티의 방에서는 푸른 물이 넘실대는 바다가 한눈에 보인다. 한쪽 높은 벽면 앞에 서 있는 휘적거리는 길고 길게 늘어진 인물들과 커다란 창에 드러난 바다는 인생을 생각하게 한다. 미술작품을 전시한다는 것은 작품 하나에만 집중하게 하는 강요나 압박이 아니라 때로는 그 작품의 주제를 마음으로 느끼게 하는 것, 바로 그런 것이다. 따라서 갤러리의 흰 벽면은 그저 흰색이면 된다. 굳이 값비싼 마포를 대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그래서 루지아나 미술관의 벽면은 때로는 벽돌에 흰색 페인트가 칠해진 경우도, 시멘트에 흰색이 발린 경우도 있다. 

삶을 위하여

루지아나 미술관은 창의적이며 열린 어린이 미술교육이 이루어지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별도로 어린이를 위한 건물이 있는데, 물론 모든 건물과 연결되어 있다. 이곳에서는 전문적인 직업 미술가들이 어린이를 대상으로 함께 작업한다.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조각을 하기도 하는데 모든 재료는 덴마크의 기업체에서 무상으로 제공한다. 기업이익의 사회 환원의 한 방식이다. 


크레파스, 종이, 심지어 모빌을 만들 수 있는 플라스틱까지 다양한 재료가 제공되고 아이들은 미술작품을 제작하는 방식을 배울 수 있다. 창의적인 생각을 이끌어내는 법, 그것을 교육받기에 아이들의 작품은 완결된 형태를 지향하기보다는 색깔을, 감각을 표현해낸다. 이들이 만든 모빌은 우리 아이들이 만든 것처럼 닭이나, 강아지, 또는 네모, 세모 등 구체적인 형태가 없다. 단지 그곳에는 바람에 움직일 수 있는 색깔들이, 감각이 있을 뿐이다. 이러한 탄탄한 미술교육이 오늘날 덴마크의 산업의 힘임은 물론이다.

루지아나 미술관을 가장 인상적인 곳으로 만드는 곳은 바로 자연의 공간들이다. 어린이미술관 앞마당은 우거진 열대림 사이로 밧줄이 늘어져 있기도 하고 높다란 외나무다리도 있다. 마치 놀이공원 모험의 나라 같은 공간은 아이들이 놀이와 미술을 함께 경험할 수 있게 한다. 노는 것과 창작의 경계가 없는 것이다. 조각미술관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아주 널따란 잔디 구릉인데 이곳에 칼더의 엄청나게 큰 작품도, 헨리 무어의 산을 닮은 인체도 잔디밭에 누워있다. 거대한 조각이 선 잔디밭은 출입금지의 공간이 아니라 아이들이 뛰어놀고 음료도 마실 수 있는 그런 곳이다. 


좌대 위 높은 곳에서 인간을 굽어 내려다보는 비싼 물건의 조합으로서의 조각이 아니다. 이리저리 다른 각도에서 마음껏 볼 수도 있고 만져볼 수도 있고 심지어 기대어 그것의 힘을 경험하는 것이다. 마음만 내킨다면 하나의 작품이 시시각각 변하는 빛에 어떻게 변화하는지 하루종일 관찰할 수 있다. 샌드위치를 씹으며, 주스를 넘기면서 그리고 잠든 아이의 유모차를 밀면서도.

사람들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술관이라 말하는 것은 지형학적인 이유도 있다. 바닷가에 자리잡아 육지와 바다의 아름다운 자연풍광을 함께 볼 수 있고 마음만 내키면 겉옷을 벗어던지고 바다로 뛰어들어 수영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미술관이 아름다운 이유는 삶과 함께하는 문화를 실현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작품이 있지만 인간 위에 예술의 이름으로 군림하지 않고, 미술관이 있지만 폐쇄된 공간의 공포가 없으며, 경건한 곳이지만 마음대로 먹을 수 있는 맛있는 음식을 파는 카페가 있고,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잔디밭이 있고 마음이 휘돌아갈 수 있는 바다와 하늘이 모두 한 장소, 미술관에 있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작품인 자연을 거부한 여타의 미술관과 달리 이 모든 것을 수용하여 자기 것으로 만든 루지아나미술관을 아름답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인간이 생산한 작품을 수용한 공간인 미술관은 궁극적으로 인간을 위한 공간이어야 하는 것이다.  

LOUISIANA MUSEUM OF MODERN ART
주소  Gl Strandvej 13, 3050 Humlebæk, Denmark 

글/사진 관리자
업데이트 2024.11.15 0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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