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의 종로공립보통학교 동창이었던 화가 김병기(金秉騏 1914-)는 이중섭이 세상을 떠나버린 뒤 이중섭과 소의 관계를 다음처럼 표현했다.
“소에 미치다시피 했다”
이중섭, <소 02–서 있는 소>, 유채, 1940. 제4회 자유미술가협회 동경전, 경성전 출품.
실제로 동경 유학시절 작품 가운데 남아있는 소묘 3점 전부와 도판만 남은 유채화 7점 가운데 5점이 소를 그린 것이다. 이 정도면 소에 미쳤다고 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김병기는 자신의 증언에 믿음을 주려는 듯, 오산고등보통학교 학생 이중섭의 모습을 아주 실감나게 묘사했다.
“틈나는 대로 들에 나가 소와 더불어 생활하며 소의 동정을 샅샅이 살펴 갖가지로 표현해보았다”
그 뒤 조정자는 자신의 석사학위논문 <<이중섭의 생애와 예술>>에서 마치 이중섭과 함께 생활하고 있던 사람의 증언처럼 아주 상세하게 기록했다.
“기숙사에 있는 그의 방은 소를 에스키스(esquisse)한 종이들이 가득 찼고, 그 위에서 잠을 자곤 했다”
시인 고은(高銀 1923-)은 한 걸음 더 나갔다. 이중섭 평전으로 아주 오랫동안 독자들을 사로잡았던 예술가의 평전 <<이중섭 그 예술과 생애>>에서는 이중섭이 원산 송도원(松濤園)에서 하루 종일 소만을 그려왔다고 했고 또 이중섭의 부인 야마모토 마사코(山本方子 1920-)는 흥미로운 일화를 들려준다.
“해방 후 원산에서 그이가 소를 그리려고, 남의 집 소를 너무나 열심히 관찰하다가 그만 소도둑으로 몰려서 잡혀간 일까지 있었답니다.”
이토록 소에 미친 이중섭이었기에 일본 유학시절 내내 소를 미친 듯 그렸을 것이다. 그 때 그린 여덟 장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그도 그럴만 하다, 소에 미쳤다고 할만 하다는 느낌이 절로 든다. 세 점의 소묘는 아주 세심한 관찰 과정을 보여주는데 소라는 짐승의 특징을 사로잡기 위해 이중섭이 얼마나 철저하게 긴장하고 있는가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무엇보다도 먼저 생김새에 눈길을 주었고 다음으로는 그 움직임을 그리고 세 번째로는 소만이 갖고 있는 그 미묘한 표정을 완전히 포착하고 있는데 이 세가지를 바탕삼아 도달한 지점은 소의 내면이다. 그러니까 외형에서 시작해서 내면으로 파고들었던 것인데 그것을 지켜 본 이들의 눈에는 ‘미친’ 행동이었던 셈이다.
그 수련 끝에 도달한 최종 단계가 바로 <소 02-서 있는 소>다. 동료 화가 진환(陳瓛 1913-1951)은 제4회 미술창작가협회전람회장에 걸려 있는 이 작품을 직접 보고서 ‘다소 지적(知的)이며 구성력(構成力)이 뛰어나다’고 했다. 냉정하게 관찰한 결과를 화폭에 적절하게 배치하는 기술이 뛰어나다는 것인데 이러한 평가는 이중섭이 감성 보다는 이성을 발휘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작품을 볼 수 없어 그렇다고 손뼉을 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적어도 <소 02-서 있는 소>는 잘 짜맞춘 구성물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건축을 연상시키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러니까 지적인 재능이 돋보이는 것이다.
정면에서 마주본다. 심지어 왼발을 내딛고 있어서 거침없이 나에게로 다가온다. 코뚜레조차 없는 야생의 들소가 심상치 않은 표정을 하고 닥쳐 오는데 넓은 이마와 경쾌하게 열린 귀, 날카로운 뿔과 하늘로 치솟아 오르는 등에 이르기까지 어디 하나 당당하지 않은 곳이 없다. 어두운 배경을 뚫고 나서는 들소의 기세를 완벽하게 표현한 것이다.
그렇다면 저 짙은 어둠의 정체는 무엇이고, 또 어둠 속을 헤치고 나오는 들소는 누구인가. 모를 일이다. 다만 소에 미친 화가가 소의 비밀을 훔쳐버린 순간 소도둑이 느낀 희열같은 건 아니었을까 그렇게 짐작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