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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중섭 <소 01> 상처받은 시대의 슬픈 전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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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살의 청년 이중섭(李仲燮 1916-1956)이 동경에 처음 나타났을 때 모두들 외마디 비명을 질러댔다. 

  “루오처럼 시커멓게 뎃상하는 조선 청년이 나타났다” 

  루오(Georges Rouault 1871-1958)는 세상으로부터 능욕당한 예수 그리스도의 고독이 스며든 시선을 지닌 화가였다. 붓을 잡으면 비참과 고뇌로 가득한 세상만이 떠올랐다. 그런 까닭에 작업실에 들어서면 언제나 의사가 수술할 때 입는 하얀 수술복을 입었다. 그랬다. 루오는 인간 심연을 파헤치는 영혼의 주술사였다. 그런 루오를 지독히도 좋아했던 조선 청년. 
  두 해가 지난 1938년 5월 자유미술가협회 공모전 회랑에 그의 입선작품이 내걸리자 관객들은 놀라움에 휩싸여야 했다. 

  “설화와 환각적 신화 그로부터 신비한 악마가 탄생했다” 

  비평가들은 식민지 조선 청년의 작품을 “영웅적인 기념비와 같은 구도의 초현실주의 작품”이라고 분석했고 또 그 당시 전시장에서 이중섭의 ‘소’ 그림을 보았던 와세다대학 법학과 학생 이경성(李慶成 1919-2009)은 아주 뒷날 다음처럼 기억했다. 

  “그림은 회색 주조의 화면에다 중앙에 서서 몸부림치는 황소였던 것이다. 그것은 그 때 한창 일본을 휩쓸던 야수파 계통의 화풍이었다”    

  이 시절 최고의 작품은 <소 01>이다. 1940년 제4회 자유미술가협회 공모전 입선작품이다. 이 때 작품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다만 소묘 3점, 판화 1점이 남아있고 나머지 유채화 7점은 한결같이 흑백사진 도판뿐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7점의 유채화 모두가 걸작이라는 사실이다. 원작이 남아있었다면 말이다. 


이중섭, <소 01>, 1940, 제4회 자유미술가협회전 동경전, 경성전 출품. 


  그 가운데 <소 01>은 단 한 번의 붓놀림으로 형상을 완성해 버리는 조선 문인화의 기법인 일필휘지(一筆揮之)를 구사했다. 또 굵고 억센 테두리 선으로 모든 것을 사로잡아 버리는 루오 특유의 화풍을 따랐다. 그리고 당시 동경의 전위화가들이 밀고나갔던 기하추상 및 표현추상과 초현실주의를 완벽하게 소화했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대동아전쟁기를 대표하는 시대양식의 절정에 도달한 최고의 문제작이다. 
  천황은 아시아 전역에 군대를 침투시켜 살육과 착취를 일삼고 있었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이 참혹한 시대에 직면한 전위화가들은 인간 영혼의 무게에 짓눌려 있었고 그 질식할 것만 같은 어둠의 심연에 선 한 식민지 조선 청년은 영혼의 깊이를 탐색해 나갈 수 밖에 없었다. 
  온 몸으로 두려움에 맞서다보니 스스로 두려운 존재가 되어 버릴만큼 강렬한 이 소의 기운은 그러므로 상처받은 시대를 견뎌나가고자 하는 인간 영혼의 힘을 상징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의 주인공 소가 두렵기만 한 존재는 아니다.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는 것은 스스로 어떤 두려움 앞에 망설이고 있음을 말한다. 굵은 선이 워낙 거칠어 처음엔 강렬할뿐이지만 차분히 들여다 보고 있노라면 잔뜩 움츠린채 굳어버린 것은 아닌지, 오히려 공포에 질려 있는 것은 아닌가 싶은 것이다. 그러고 보니 눈동자의 표정도 휑하여 슬픔이 배여있는 것같다. 그렇다. 공포에 몸부림치는 순간의 이 <소 1>은 상처받은 시대의 슬픈 전율이요, 영혼의 저 깊은 곳까지 파고드는 아픔이다. 

최열(미술평론가) 관리자
업데이트 2024.11.22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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