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쾌대, <운명>, 156x128cm, 천에 유채, 1938. 개인소장.
1938년은 일본이 중국대륙에서 중일전쟁을 시작한지 한 해가 지난 때로 전시체제 총동원령 체제가 본격화되던 시절이다. 이 때 이쾌대는 일본 제국미술학교를 갓 졸업한 26살의 청년이었다. 어쩌면 전선에 총알받이로 나가야 할지도 모르던 암울한 시절, 하지만 이 젊은이는 혼신을 다 해 자신이 상상하는 이야기를 화폭에 새겨나갔다.
<운명>은 한 여인의 운명을 연극의 한 장면에 응축시킨 걸작이다. 한 화폭에 등장하는 젊은 여인 세 명은 사실은 같은 사람이다. 다른 시간대의 상황을 한 화면에 표현하는 이시동도법(異時同圖法)을 사용한 것인데 가장 멀리 있는 한 사람은 진지하지만 안정된 표정으로 그윽하게 무엇인가를 응시하고 있고 중간 자리에 있는 한 사람은 옷마저 벗겨진채 비탄에 잠긴 표정으로 울고 있으며 가장 앞에 서 있는 사람은 무희의 옷차림을 한 채 전사의 몸짓으로 적을 향해 전진하고 있다.
한 사람의 운명을 세가지 시간으로 나누어 줄거리를 보여주는데 첫째 여인은 평화시대이고, 둘째 여인은 비극시대이며, 셋째 여인은 전쟁시대이다. 이것은 누구의 운명일까. 1938년이니까 아시아의 범위로 확대하면 중일전쟁 발발과 관련이 있고, 한반도 범위로 설정해 보면 전시체제 아래 동원당해야 하는 식민지 민족의 운명과 관련이 있다. 또는 식민지 조선인들의 겪어야 하는 상황일 수도 있으며 어쩌면 고통받는 식민지 여성의 운명일 수도 있고 그도 아니라면 이쾌대가 알고 있는 어떤 이웃 여인의 서글픈 사연인지도 모른다.
그러면 주변의 소품들을 보자. 먼저 비극시대의 여인 아래 방바닥엔 깨진 그릇들이 널부러져 있다. 이것은 살림살이가 박살났다는 뜻이다. 가족의 해체 또는 공동체로서 국가나 민족의 파괴를 상징하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여인의 뒤쪽에 등장하는 삼신할매와 저승사자다. 삼신할매는 탄생을, 저승사자는 사망을 담당하는 인물들이다. 탄생은 시작이고 사망은 종말이다. 탄생은 생명이고 사망은 죽음이다. 희망과 절망을 상징하는 저 두 인물의 등장은 아마도 주인공 여인의 운명과 관련되어 있는 듯 하다.
<운명> 부분
특히 이 작품에서 색채와 질감은 가장 눈부신 성취다. 무거운 전설과도 같은 소재 또는 주제에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저 색채와 질감의 어둠과 무거움은 한국미술사에서 이전까지는 못보던 것들이다. 이토록 우울하고도 강렬한 분위기와 억세고도 눈부시게 아름다운 형상은 없었다.
초현실주의 화풍과 고전시대의 제재를 절묘하게 결합시킨 1938년의 이 작품은 대동아 전쟁의 암울한 서막을 여는 동시대 최고의 걸작일뿐만 아니라 아시아와 유럽을 포함하는 세계 미술사상 한 획을 긋는 역사상 기념비라고 할 것이다.
(*지금 이 작품 <상황>은 덕수궁미술관에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