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복 <계명곡암溪鳴谷暗> 종이에 수묵담채 47.7x59.4cm 간송미술관
산뜻한 채색과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한 뛰어난 묘사로 인기 높은 풍속화가 혜원의 특기 분야이지만, 화원 출신으로 기본기를 갖춘 그는 산수나 영모화 같은 다른 화목도 조금씩 남겨 전해지고 있다. 혜원의 풍속도 중에서도 배경의 산수 요소들이 눈길을 끄는 경우도 꽤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신윤복 풍속도(부분)
혜원 신윤복의 풍속도화첩 중 산수의 요소가 많이 표현된 그림들. 순서대로
주유청강, 상춘야흥, 청금상련,
납량만흥, 단오풍정, 쌍육삼매,
임하투호, 표모봉심, 계변가화
위 그림 <계명곡암>은 같은 크기인 두 폭의 산수화 중 하나로 시적 감흥을 가득 담고 있는데, 어떤 이는 그의 풍속화에 비해 섬세하지 못하고 거칠다 할 수 있겠으나 엷은 먹과 짙은 먹을 적절히 섞고 담채로 표현한 나무와 원산, 절벽의 일부를 강조하거나 산등성이를 그리는 몇 가지 준법들, 김홍도보다는 이인문의 영향이 조금 더 느껴지는 터치, 리듬감 있는 요소들의 배치, 내려다보거나 올려다보는 시각의 다양함 등 흥미로운 요소들로 가득하다. 그러다보니 다소 안정감이 떨어져 보일 수도 있다. 그가 조금 더 많이 산수를 연구하고 더 많은 그림을 그렸다면 자신의 스타일을 세우고 명작을 남길 수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이 그림에는 두 명의 선비가 있다. 푸릇푸릇한 나무와 대나무숲으로 둘러싸인 집 안에서 아마도 책을 읽고 있는 선비, 그리고 절벽 아래 냇가에서 물을 내려다보는 선비. 두 사람이 같은 쪽 옆모습을 보이고 있고 양쪽 중 어느 곳에 주된 무게를 두었는지 애매하다.
상단에 있는 제는 ‘계명풍박수 곡암우연산(溪鳴風薄水 谷暗雨連山, 시냇물 소리 바람이 물 위을 스치고, 골짜기가 어두워지니 비가 산과 잇닿았네)’으로, 중국 금나라 때의 시인 마혁(麻革, 생몰년 미상)의 시 중 한 구절과 비슷하다. 원시의 해당 구절은 ‘계명풍탕수 곡암우함산(溪鳴風蕩水 谷暗雨含山, 바람이 물을 쳐 시냇물 울어대고, 비가 산을 머금어 골짜기 어둡구나)’이다.
신윤복 <송정관폭松亭觀瀑> 종이에 수묵담채 47.7x59.4cm 간송미술관
앞 그림에서는 건물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시각이었지만, 세트인 이 <송정관폭>에서는 모정(茅亭, 띠풀 지붕을 이은 정자)을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아 천장이 보일 정도의 시각이라 흥미롭다. 멀리 골짜기에 폭포가 보이고 절벽 아래 언덕에 지어진 정자에서 시회라도 여는지 몇 사람이 모여 있다. 앞의 그림과 달리 계곡을 채운 것은 짙은 침엽수림이다. 산등성이는 우모준(牛毛皴)을 써서 멀어져 가는 느낌을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두 그림 모두 명암대조가 큰 편이지만 선명하고 맑은 느낌으로 채워져 있다.
화제는 ‘성벽거환정 인한서불침(性僻居還靜 人閒署不侵, 성품이 치우치니 거처가 도리어 고요하고, 사람이 드무니 더위가 침범하지 않는다)’이다. 이는 손승은(孫承恩, 1485-1565)이라는 명나라 사람이 지은 『동교별업용전운東郊別業用前韻(其五)』의 일부와 조금 비슷하다. 원문 해당 구는 '性僻違時好 居閒愜賞心(성벽위시호 거한협상심, 성품이 치우쳐 유행과 맞지 않고, 한가한 곳에 거하니 즐기는 마음이 상쾌하구나)'이다. 화제를 정확히 쓰지 않고 대강 자기 마음대로 썼던 혜원의 스타일이 여기서도 드러난다.
또 한점 모정에서의 아회를 그린 혜원의 산수도를 덧붙인다.
신윤복 <송정아회松亭雅會> 종이에 수묵담채 32.6x37.8cm 간송미술관
이 그림에서는 커다란 소나무 네 그루가 주인공이고 그 뒤로 정자가 보인다. 뒤쪽의 대숲도, 나무도, 토파와 절벽 표현도 모두 좀더 거침없고 호방하다. 세련된 서체로 쓴 '혜원' 관서와 <와간운(臥看云)> 백문방인이 있다.
몇몇 논문과 도록에 이 인장 좌하단의 글자 '云'을 '人'으로 해독해 ‘와간인臥看人’으로 적어둔 것을 볼 때가 있는데, 云은 전서(篆書)에서 ‘구름 운(雲)’과 같은 의미로 쓰는 경우가 많으므로 '운云(雲)'으로 보는 것이 옳다. '와간운'은 여유롭게 누워서 떠가는 구름을 본다는 뜻이다. 이 인장은 혜원의 풍속도 등 다른 그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