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 김덕성 <괴성> 종이에 채색, 33.0x23.4cm, 국립중앙박물관 (덕수 1637)
우) 김덕성 <뇌공> 종이에 채색, 113.6x58.2cm, 국립중앙박물관 (덕수 2272)
근육질 남자 몸매의 두 그림이다. 18세기 조선시대의 그림인데 그라데이션으로 면을 칠하는 신식 음영법으로 근육과 옷주름의 입체감 사실감을 강조했다. 날리는 천자락들은 다소 부자연스럽고 딱딱하여 아쉬움이 있다. 두 그림 모두 도교에서 온 신선을 그린 것인데 탄탄한 근육 외에도 온 몸에 나 있는 찔릴 것 같은 털들, 잔망스러운 발놀림, 균형 감각을 자랑하는 자세의 표현 등이 보는 재미가 있다.
괴성
첫 번째 그림의 신선은 ‘괴성魁星’이다. <선객도> <용두선객도> 등으로 이 그림을 지칭하기도 하는데 손에 든 붓과 벼루가 말해주듯이 대체로 학문의 신, 시험의 신이라고 볼 수 있다. 중국이나 한국이나 과거 제도가 주된 출세의 길이 되면서는 시험을 잘 치르게 해 주는 도상들이 많은 인기를 끌었다. 중국에서 온, 도교에 근거를 두는 신들이 대개 그렇듯이 이분의 캐릭터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어서 문곡성, 문창성(문창제군文昌帝君)과 동일시되는 경우도 있는데 괴성, 문곡성, 문창성은 북쪽 밤하늘 북두칠성 근처의 별자리로 모두 ‘문(文)’ 즉, 문장과 관련된 것으로 여겨진다. 이 그림의 도깨비같은 신선을 ‘괴성(魁星)’이라고 부르는 것이 적절한 것은 다리를 쳐들고 있는 자세가 결정적이다.
괴성魁星이란 원래 별(자리) 이름으로, 북두칠성의 국자머리 부분 첫째 별에서 넷째 별까지를 말한다. (별자리 규수(奎宿)를 문장을 잘 짓게 해주는 별로 보았던 것이 어찌저찌 발음상 옮겨간 것이라고도 한다. 규수 혹은 규성은 안드로메다 자리) 괴성의 캐릭터를 도깨비가 다리를 쳐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내는 것은 ‘魁’라는 글자를 ‘鬼’와 ‘斗’로 나눠서 도깨비가 북두칠성을 발로 차고 있는 것으로 조합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의 설명 등 이 그림을 문창성 또는 문창제군으로 보는 경우도 있다. 문창제군은 밤하늘의 별자리 문창성의 현현으로 북두칠성 국자머리의 위/옆쪽에 있는 여섯 개의 그다지 밝지 않은 여섯 개의 별이라는 설이 가장 메이저이다. 이들을 연결하면 그릇 모양으로 우묵하게 보이며, 서양 별자리로 말하면 (큰곰자리의 뒷다리가 북두칠성이니) 큰곰의 앞다리와 머리를 연결하는 별들이 된다.
정리하자면 괴성과 문창제군은 과거 시험에 도움을 주시는 신이라 동일시되는 경우가 많으나 도상으로는 다르게 표현된다고 보면 될 듯하다. 문창제군은 베이징의 이화원 등 그를 모신 사당이 중국 내에 상당히 많은데 대개 붓이나 두루마리를 들고 앉아 있는 점잖은 신선의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괴성은 과거를 치르는 사람들에게 떠받들어 진 신 답게 붓과 벼루를 들고 있다. 다리 한쪽을 쳐 들고 서 있는 모습으로 괴성魁星임을 확인할 수 있다.
튀어나올 것같은 눈은 상대방을 압도하는 카리스마가 있는데 그에 비해 솟아 있는 광대와 살짝 올라간 붉은 입술의 입꼬리로 인해 표정이 조금 새침해졌다. 손가락의 표현에 대해서 사실감을 얻기 어려운 전통 수묵화에 비한다면 훌륭한 결과물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발받침대로 코가 붉은 용 같이 생긴 신수의 머리를 밟고 서 있는데 이는 최고의 자리에 올라선다는 의미다.
유복열의 『회화대관』, 일제강점기 사진자료 등에 첫 번째 그림을 김덕성의 <뇌공도>로 기록하고 있어서인지 이 그림을 <뇌공도>라고 하는 경우도 있는데, 두 번째 그림이 김덕성이 그린 확실한 <뇌공도>이다.
유복열의 『회화대관』, 일제강점기 사진자료 등에 첫 번째 그림을 김덕성의 <뇌공도>로 기록하고 있어서인지 이 그림을 <뇌공도>라고 하는 경우도 있는데, 두 번째 그림이 김덕성이 그린 확실한 <뇌공도>이다.
뇌공
뇌공雷公은 뇌제雷帝의 명에 따라 악행을 저지른 인간을 벌하는 집행관이다. 뇌제는 천둥과 관련된 최고 신으로 도교의 최고신 천존 셋과 비등비등한 권력을 가진 탑4에 드는 신이고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아버지이며 재난과 행복과 생명을 주재하는 신이다. 인간을 고뇌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지옥에 떨어진 인간을 천계로 구해오기도 한다. 뇌제의 직속부대의 총사령관을 왕령관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머리 위로 칼을 치켜들고 부릅뜬 세 개의 눈으로 사람들을 노려보고 있는 무서운 모습으로 표현된다. 그런데 이야기 속에서의 집행관 뇌신은 다소 멍청하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표현되는 경우도 많다.
뇌공도에 써 있는 제에는 “힘이 산을 뽑고, 기개가 세상을 덮을 듯하여, 고금에 하나라고 하겠으니, 이처럼 웅건한 신장이 과연 누구일까. 저 옛날 힘이 센 孟賁, 夏育으로도 미치지 못할상 싶다”(회화대관)이라고 써 있다(제를 단 이는 조선 후기 여항문인인 약오(藥塢) 엄계응(嚴啓膺 1737~1816)). 회화대관에서는 이 작품에 대해 ‘형상은 고괴하나 필력이 불급하여 애석하다’라고 평했다.
이 두 그림을 그린 김덕성(1729-1797)은 유명한 화원 김두량의 조카뻘이다. 자는 汝三, 호는 玄隱이다. 숙부 김두량, 아버지 김두근과 마찬가지로 그도 도화서 화원으로(그의 아들(김종회), 손자(김명원), 증손자(김안국)도 모두 화원이었다) 이 같은 도석인물화로 유명했다. 1783년 11월(정조 7) 두 차례 실시된 자비대령화원 선발시험에서 두 번 모두 수석으로 선발된 이래 1787년까지 5년동안 자비대령화원으로서 활동한 기록이 있다. 강세황은 김덕성의 뇌공도에 대해 “필법과 채색법에서 모두 서양화법의 묘의를 얻었다”라고 평가했다.
괴성은 학문을 잘 하고 시험을 잘 치르게 해주고, 뇌공은 나쁜 것을 물리치게 해 주는 것이니 필요한 사람들은 재미삼아 이 두 그림을 출력 및 소지해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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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회화사에서 김덕성이 언급될 때가 한 군데 더 있는데 1762년(33세) 영조의 아홉째 딸 화완옹주의 명을 받들어 『중국소설회모본中國小說繪模本』 에 그림을 그렸다는 것이다. 『중국소설회모본』은 삼국지연의, 수호전, 서유기 등 중국에서 전래되어 온 명청대 소설의 삽화나 고사 등 총 128폭을 그린 것으로 소설 삽화는 99폭이고 나머지는 대개 중국의 고사나 전해지는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의 맨 앞에는 사도세자가 직접 쓴 서문이 있는데, 수많은 이야기책 제목을 일일이 나열하고 그러한 책들 중 귀감이 될 만한 것과 웃음을 주고 사랑할 만한 것을 뽑아 이 책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사도세자의 소설 사랑을 알 만하다. 반면 정조는 소설을 매우 싫어했다고 한다.
중국소설회모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