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득만, <심양송객>, 《만고기관첩》, 종이에 색, 38×30cm, 삼성미술관 리움
참여한 화원은 한후방과 한후량 형제, 장득만과 장계만 형제, 그리고 양기성 이렇게 총 5명이다. 맑은 청록의 채색을 쓰고 다소 도식적인 선묘라서 전형적인 궁정의 화풍임을 보여준다.
화첩은 일관된 주제로 엮어진 것이 아니라 여러 종류의 그림들이 모아져 있는데, 명시나 잘 알려진 문장 등 문학과 관련된 그림, 효도나 충절 같은 덕목을 강조하기 위한 감계도, 성현이나 은자의 일화를 다룬 고사도 그리고 신선도 같은 것들이다.
이 그림은 화원 장득만(1684~1764)이 당나라 백거이白居易의 시 「비파행琵琶行」의 이야기를 담았는데, 『만고기관첩』 내에 있는 이런 문학작품 주제의 그림들은 당시 조선에 큰 영향을 끼쳤을 『천고최성첩』(명나라 사신 주지번朱之蕃이 1606년 조선에 와서 선조에게 바친 서화합벽첩)에서도 볼 수 있다. 『만고기관첩』은 왕의 명령에 의해 도화서 화원들이 당시 유행하던 천고최성첩이나 삼강행실도, 군신도상, 열선전전 등 각기 다른 성격의 화첩들 중에서 선별해서 하나로 묶은 것임을 알 수 있다.
장득만의 그림이 화원 중에서 특별한 개성을 드러내는 것은 아니지만, 화첩 내 다른 그림들에 비해 보다 완성도 높고 세련된 채색 감각을 보인다. 후에 영조가 ‘장득만의 설채는 나라에서 최고’라고 인정한 적도 있다고 한다.
「비파행」이야기는 대강 다음과 같다. 백거이가 벽촌에 좌천되어 있을 때 찾아왔다가 돌아가는 손님을 배웅하려고 심양강에 가서 배를 타고 환송연을 열었다. 음악이 없어서 아쉬워하는 차에 놀라운 솜씨로 비파를 연주하는 소리를 듣고 일행이 연주자가 탄 배에 다가가 나와달라 한참을 부탁했다. 얼굴을 비파로 가린 여자가 나와 백거이네 배로 옮겨 타더니 자리에 앉아 비파를 연주한 뒤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데, 자기는 한때 장안에서 이름난 기녀였으나, 나이 들어 상인의 아내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백거이는 한동안 음악이라곤 못 듣다가 훌륭한 비파 연주에 감동하고 여인의 처지에 안타까워하고 슬퍼한다. 그리고는 여인에게 '비파행이란 이름으로 시를 쓸 테니, 다시 연주해 달라'고 부탁하니, 그 여인이 감격하여 다시 자리에 앉아 더욱 애절한 곡조로 연주했는데 이를 듣고 배 안의 청중들이 듣고 모두들 흐느꼈다는 내용이다.
그림 속에서 비파행의 정서를 느끼려면 상상력을 한참 발휘해야 한다. 기녀도 비파 연주의 모습도 없고 강에서 손님과 배를 타고 술 한잔 하는 장면 뿐이니 말이다. 임금이 볼 그림이라서 기녀의 모습을 자진 삭제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