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는 산을 녹청색으로 채색한 공필의 청록산수 두루마리 그림이 한 점 있다. 가로 127cm, 세로 27.9cm의 비단에 알차게 그려진 산수도로, 수묵으로 그려진 산수와는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정순명 <산수도> 비단에 채색, 27.9x127cm 국립중앙박물관, 덕수 3245
너른 강가에 있는 누각이 중심이 되어 그리 높지 않은 산들이 여기 저기 배치되어 있는 풍경을 구성했고, 그림의 많은 면적을 차지하는 산과 나무 부분에 청록색을 사용했다. 강하지 않은 부드러운 색조의 채색에 필선은 우아하고 단정해서 현존하는 예가 많지 않은 고운 산수화로 남았는데 작자와 제작 배경에 대한 정보가 거의 남지 않아 아쉽다.
이 그림을 정순명鄭淳明이 그린 것으로 판단하게 된 것은 그림 우측 상단에 찍혀있는 인장의 ‘醒翁(성옹)’이, 16~17세기에 산수화를 잘 그렸던 것으로 알려진 정순명의 자(字)이기 때문이다. 정순명은 『근역서화징』에 ‘善畵山水’(동국문헌화가편), 즉 산수를 잘 그렸다고만 간략히 써 있는 미지의 인물이다. 그가 그린 것이 맞다면 조선 중기의 청록산수화가 어떤 수준으로 제작되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될 수도 있다. 17세기 중반에 제작된 조속의 <금궤도>와 비교하여 감상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청록산수 같은 채색화는 수묵으로 된 산수도에 비해 한참 낮게 평가되었기 때문에 후대의 기준에서 보자면 아깝게 사라진 명작이 많지 않았을까도 생각해본다. 청록산수가 가진 장식성이나 정교함이 고상한 문인정신이 맞지 않았거나 지나치게 기술에 매몰되어 창의성을 잃었다고 하더라도 그 명맥이 굳건히 유지되었다면 그 안에서 발전과 새로운 모습의 혁신이 있었을 가능성이야 많지 않았을까.
조속 <금궤도> 1636-1656 비단에 채색 105.5x56cm 국립중앙박물관
청록산수 같은 채색화는 수묵으로 된 산수도에 비해 한참 낮게 평가되었기 때문에 후대의 기준에서 보자면 아깝게 사라진 명작이 많지 않았을까도 생각해본다. 청록산수가 가진 장식성이나 정교함이 고상한 문인정신이 맞지 않았거나 지나치게 기술에 매몰되어 창의성을 잃었다고 하더라도 그 명맥이 굳건히 유지되었다면 그 안에서 발전과 새로운 모습의 혁신이 있었을 가능성이야 많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