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재 정선(1676-1759) <설평기려(눈 쌓인 들에서 나귀를 타다)> 견본채색, 29.2x23.0cm, 간송미술관
산수를 보는 눈이 남달랐던 대화가 겸재 정선은 눈이 오는 풍경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1741년 신유년 겨울은 눈이 많이 온 해였던 것 같다. 그해 사천 김병연이 양천 현령으로 있는 친구 겸재 정선에게 보낸 편지에는 눈이 많이 온 것에 대한 인사가 많다고 한다. 이 그림도 그 해 겨울 그려진 것으로 나귀를 탄 선비가 너른 들판을 건너가고 있는 장면이다. 양천도 비교적 들판이 넓은 편이니 눈이 많이 내린 아침 아마도 설경을 즐기기 위해 밖으로 나서는 인물에 자신의 심상을 투영한 그림일 것이다.
이 그림 옆의 화제는 사천 김병연이 쓴 것으로 내용은 다음과 같다.
"길구나 높은 두 봉우리, 아득한 십리 벌판이로다. 다만 거기 새벽 눈 깊을 뿐, 매화 핀 곳 알지 못하네"
설경과 나귀타고 가는 선비가 그려진 그림을 보면서 눈 오는데 매화 찾으러 가는 그 사람, 파교심매의 맹호연을 자동적으로 떠올린 사천은, 매화가 있음직한 높은 산은 아득한 십리 벌판 너머에 있는 데다 눈도 깊어서 이 나그네 선비가 '매화를 찾으러' 나간다는 것, 인생을 살아나가는 구도자 같은 그 마음이 그저 쓸쓸한 일일 뿐임을 이해하고 시로 표현했다.
절친이 잘 이해했던 것처럼 화가 자신의 심상이 그림에 드러나고 있기는 하지만 인물의 도상은 고씨화보 등에서 나오는 기려상을 벗어나지는 못했다.
『고씨화보』 중 장로 그림본
왜 그림 속 선비들은 왜 말을 타지 않고 나귀를 타는 것일까?
중국 북송대 사람 곽희의 화론서 『임천고치』에는 이와 관련된 실마리가 있다. 그가 <서산주마도>라는 그림에 대해 설명하는 과정에서 말을 탄 사람이 떨어진 것을 가리켜 조급하게 앞으로 나아가려는 사람은 이와 같다고 하고, 검은 두건을 쓰고 망아지를 타고 오는 널판 다리를 건너는 사람은 벼슬을 사직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즉 그림에서 말타고 달리는 사람은 벼슬과 명예에 연연하는 사람이며, 망아지나 나귀를 타는, 명예나 이익 출세에 뜻이 없는 은일 처사가 더 격이 높은 사람이라는 인식이다.
정선이 눈 온 뒤 파교를 건너는 인물을 그린, 원전에 더 가까운 다른 그림과 비교하면 앞 그림의 들판은 더욱 쓸쓸해 보인다.
겸재 정선 <파교설후도灞橋雪後圖> 91.5x59.3cm 국립중앙박물관 동원기증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