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가 어느새 또 저물어가고 있다 보니 정신없었던 시간들을 정리하러 훌쩍 떠나고 싶어진다. 제대로 된 일출이나 일몰은 보지 못하더라도 그저 아무도 없는 바닷가에서 잔잔한 물결을 보면서 어지러운 마음을 청소하고 한해를 마무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인문 <창파학명(滄波鶴鳴 찬 물결에 학이 울다)> 종이에 수묵담채, 41.0x30.8cm, 간송미술관
정조 때의 규장각 자비대령화원인 이인문(1745-1824)이 남긴 두루미 그림이다. 고송유수관도인 이인문은 소나무와 학 그림을 그린 적도 있는데, 이 그림은 색다르게 산 속 솔가지 위가 아니라 바닷가 바위 위에 앉은 두 마리의 학이다. 일렁이는 물결을 바라보며 울고 있는 학들은 날씬한 몸과 긴 목의 우아한 모습으로, 군더더기 없는 붓질로 간략하게 표현했다. 파도에는 푸른 담채를 쓰고 수면 위에 안개가 가득히 깔린 모습으로 조용하게, 그 외의 배경 또한 절제되게 표현했다.
이 그림에 제시를 쓴 이는 간재 홍의영(1750-1815)으로 "머리 들어 강과 바다 생각하니, 다시 구름과 더불어 길이 멀구나矯然江海思 復與雲路永"라는 것인데, 두보 시의 일부를 가져다가 쓴 것이다.